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Nov 25. 2015

경계의 문턱에서

보내는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문턱이 높다' 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이 때의 문턱의 의미는 단순한 문턱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보자. 그러면 문턱은 일종의 경계가 된다. 경계를 넘어 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을 뒤에 남겨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보통 우리는 '변화' 라고 지칭한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가을비가 첫 눈이 되는 순간 경계를 마주한다. 보내는 것은 가을비에 떨어진 처량한 은행잎 들이고, 새로이 맞이하는 건 차가운 날씨와 하얀 눈송이다. 계절의 경계는 순환을 동반한다. 지나 갔던 것들이 다시 찾아오고 , 다시 찾아왔던 것들이 다시 지나간다. 익숙할 법도 하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다. 보내는 것과, 새로이 받아 들이는 건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이별이기 때문이다. 이별은 스쳐가는 인연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이별은 사람과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이별은 '익숙함과의 결별' 이다. 내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별이다. 익숙함은 일부 우리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을 테고, 습관을 버린다는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익숙함과의 결별은 꽤나 큰 용기를 요한다.


너무 서글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보내는 마음과, 익숙함에 이별을 고하는 행동이 서러울 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 이런 수순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은 평정을 되 찾는다. 우리는 끊임없니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과정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내 습관이나 익숙함이 더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 대신, 새로운 것이 그 공허함을 채워 주기도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라 생각한다.


어제를 보내는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 바로 앞 문장을 쓰는 순간 - 순간 또한 내가 보낸 나의 생각의 편린들이며 작은 일부였다. 이렇게 연속선상에 있는 삶의 여정은 끊임없이 보내고,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슬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경계의 문턱에서 보내는 마음을 잘 다지는 사람은 추억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미련과 추억은 같으면서도 너무나 다르다. 미련은 경계점에 서서 보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반면 추억은 경계에서서 좋은 마음으로 잘 보내고 ,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욱더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젊음도 저 멀리로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젊음에만 있는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젊은에 감사하고 그 젊음을 아름답게 보내고, 또다른 인생의 과정을 잘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득 계속되던 가을비가 겨울비가 되려는 찰나 우리의 삶 또한 보내고 받아들이는 경계에 끊임 없이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돈주고도 못사는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