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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Dec 28. 2015

동창회의 비극

호수같이 깊은 사람, 파도같이 부서지는 사람.

동고동락.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과 나눈 정은 훗날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함께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 힘들어 했던 친구들은 평생의 추억이 된다. 친했든 친하지 않았든, 어른이 되었을때 다시 만나면 친밀도는 더욱더 크다. 그 당시에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훗날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공유할 추억이 생길 수 있다. 학연이라는 나쁜말도 있지만, 학연 보다는 그냥 동기라고 부르면 좀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동창회. 동창회는 어느새 큰 행사가 되었다. 친구들을 보고싶어서 찾아간 동창회. 남중남고를 나온 나에게 동창회는 첫사랑을 만나는 낭만적인 자리가 아니다. 그냥 , 어떻게 사는지..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는 자리다. 걔중에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한 친구도 있고,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있다. 어릴적에는 항상 같이 붙어 다녔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수년간 얼굴한번 못보고 연락도 못한 친구도 있다. 그래도 만나서 악수하고 얼굴을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서 참 좋았다. 


동창회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술잔이 오가니 나에게 반가웠던 동창회는 마냥 불편한 자리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동창회에 큰 기대감과 낭만을 가지고 왔었던 것일까? . 친구라는 테두리로 묶인 우리들은 , 옛추억속에 순진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곁에 있기만해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 나의 너무 큰 기대였나 싶다. 


온통 자랑 천지다. 한놈이 자랑을 은글슬쩍 하면, 그 자랑에 약이 잔뜩 오른 다른놈이 자기 자랑을 더 크게 한다. 그러면 또 다른놈은 자기 이야기도 아닌데 지기 싫어서 더 큰 자랑을 한다. '내 아는 누구가 어디서 무얼 하는데 어떻고 저떻고." . " 와 대박. 근데 우리 집안에 누구가 이번에 어떤걸 했는데 진짜 꿈도 못꿀거 같던데" 등등 어느새 본인들 이야기가 아닌, 주변사람 인맥자랑에 직장 자랑을 하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와 친구 하나는 술잔만 연신 들이키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학창시절에도 정신적으로 그렇게 존경 하던 친구는 어느새 약이 잔뜩 올라 한마디라도 지기 싫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함께 늘 어울려 다니며 독서실다니고 축구하고 통닭시켜먹던 친구는 자기차가 고급 외제차인걸 계속 자랑한다. 모두의 자랑은 그야말로 은근슬쩍 하는 것들이라 서로의 자존심 싸움에 나는 여간 불편했던게 아니다. 남의 자랑을 듣기 싫어서 , 극성스러운 자랑거리를 꺼내고, 또 이걸 받아치기 위해서 또 다른 자랑거리를 쥐어짜고..그러다 보니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서로들 부글부글 끓고 있는게 보였다. 


한잔 더 하자는 친구들의 말에 일이 있어 먼저 일어선다는 나를 붙잡고 한 친구가 이야기 했다. "요즘 우리 나이도 구조조정 많이 하던데 , 너는 괜찮냐? 어떡하냐 , 이래서 전문직 전문직 하나봐. ", 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지만 그런 걱정을 들으러 동창회에 나왔던건 아니다. 그냥 보고싶어서 나온자리에 , 자랑섞인 걱정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만 더욱더 아팠다. 내가 한때는 제일 치켜세웠고, 존경했던 친구들이 안보던 사이에 이렇게 독이 바짝 오른 사람들이 되어있다니 ..씁쓸함이 너무 커 추위도 잊게 만들었다. 


동창회 이야기에 담아서 말 했지만,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자랑으로 남을 짓 이기려 한다. 그렇게 이겨서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일까. 마치 몸에 공기를 넣어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동물처럼 , 때론 인간도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굳이 그렇게 남들 앞에서 스스로의 면면을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참된 능력자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가 풍기는 법인데 , 왜 그토록 하나라도 지기 싫어서 이를 꽉 깨물고 웃는 모습을 억지로 지으며 달겨드는지 모르겠다. 훗날 그런 자존심을 가장한 자랑들을 했던 시간이 너무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땐 늦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것을 뽐 내는 것 자체가 잘못된건 아니다. 그런데 굳이 우리끼리도 그렇게 못이겨서 안달이어야 하는지 의문 스러웠다.향기 그윽한 사람이 넘쳐나는 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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