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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Jan 04. 2016

멀리서 바라보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유명한 희극인 찰리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멋지다는 판단은 내가 한 것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참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 해 , 두 해 시간이 흘러갈 수록 찰리채플린의 말이 더욱더 마음에 와 닿는 까닭은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너무 많은 부분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해야한다', '할 시점이다' 를 비롯해서 지나치게 삶이라는 부분을 생활계획표 짜듯이 그려놓으려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이때는 뭘 해야 하고, 이때 뭘 하지 못할 시에는 인생이 꼬인다. 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쫓기듯이 살아왔고, 그 와중에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안해 했던 것같다.


경쟁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전적으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였으며,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된다 손 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을 바꾸지 않는 한 영원히 쫓기는 인생을 살았을지 모르겠다. 우주적인 시각이 허무주의로 연결되는 맹점을 가지고 있어서 비난 받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주속에 작은 점 이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도 한다.


고민이 너무 많고 , 욕심이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고민과 늘 씨름하면서 고군분투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칼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 이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만큼 우리의 삶은 고민과 문제 속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되었다. 욕심이 많아지는 만큼 여유는 없어진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니, 나 자신의 모습의 혼돈을 초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러시아 인형중에 '마트로시카'라는 인형이 있다. 인형속에 인형이 있고, 또 인형속에 인형이 있다. 꿈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트로시아 인형화 하는 경험을 했다. 온통 고민과 잡생각으로 가득찬 내가 알을 깨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을 하는 내가 보이고, 그것을 또 깨고 나니 , 또다른 내가 움츠리고 있었다. 내 모습속의 내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있었다. 하나의 점이 된 나는,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괴로워 하는 모습은 점 이되어 보이지 않았다. 악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나는 희한한 감동을 느꼈다. 마치 칼로 찌르는 듯한 괴로움의 연속인 내 모습에서, 점점더 멀어져가니 '나' 밖에 보이지 않았고 세상속에 나의 실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심각한 꿈을 꾸면 다음날 피로도가 훨씬 크다. 그런데 그날만은 그렇지 않았다. 잠을 잔것 같다는 느낌보다는, 밤새도록 명상을 하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만큼 꿈속에서 반복되는 나의 모습은 당장 아침부터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문제점을 이런식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태도는 문제점이 있다. 지나치게 관조적인 태도는 오히려 염세주의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좀더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용기는 나에게 여유를 가져다 주고 나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주는건 분명한 것 같다.


일을 처리하는 데에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을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본다면 , 시각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고, 달라진 시각 만큼 새로운 해결책이 생길 것이다. 꽁꽁 싸매고 있던 고민거리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야 말로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인 셈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 단순화는 의도치 않았던 용기를 안겨 줄 것이다.

찰리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는 말 또한 유사한 맥락이 아닐까 라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병신년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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