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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Jan 08. 2016

두가지 세월

친구와의 옛 앨범을 끄집어 내다.

친구들과 메신저를 하면서 오래전 싸이월드 사진을 꺼내서 공유했다. 신나게 여행 다니던 그때 , 우리는 이제 어른이라는 해방감에 들떠서 갔던 여행도 있고, 나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여행도 있었다. 동네에서 거하게 술을 먹고 붉어진 얼굴로 찍은 사진 속에는 술기운도 어쩌지 못한 앳됨이 서려있다.


즐겁게 웃고 떠들고 옛날 이야기를 하는 사이, 우리 모두는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때가 좋았지',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 과 같은 일차원적인 감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세월이 단순히 벌써 10년이나 흘렀냐는 의문의 시선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딱 하나로 찝어서 표현 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다른 친구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고군분투 하고 있다. 마냥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 그때가 그리운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지 조금더 스스로를 납득 시킬 수 있을지 종일 생각 해 봤다.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걸 알면서도 때때론 영원함을 약속한다. 자기최면 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영원함을 약속하면서 현재를 전부로 보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넘어서서 ,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한 나 스스로의 최면술과도 같은 영원의 약속.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스레 영원할 것 같던 약속은 빛바랜 기억으로 변하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 야속해 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자연의 순리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나와 우리 또한 그 상황이 영원할 것 이라는 거짓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최백호의 '낭만의 대하여'에 나왔던 도라지 위스키 만큼이나 싸구려 양주를 앞에두고, 오징어를 가지고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이야기 하던 모습. 앞으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을지 생각도 못하고, 당시가 너무 힘들어서 좌절하는 모습. 이 모든 모습들이 당시에는 전부이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했다. 그런데 문득 서랍을 열어보니 영원성을 다짐하던 예전의 기억은 그냥 흘러간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걸 발견하고 처음에는 마냥 반가웠지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모습이 어느덧 너무 많이 변해 버린걸 알게 되고 서글퍼 졌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보고 있는 모습에는 , 콕 집어 이야기 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을거라 생각한다. 지금 모두 보고 있는 것은 작은 휴대폰 창이지만, 같은 표정과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는 우리는 사뭇 진지했다. 변한다는 게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과, 마주했을때 감정이 격해지는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믿었던 하나의 믿음이 속수무책으로 세월앞에 무너진 다는걸 보면 속상함이 얼마나 클까. 아마도 오묘하다고 생각했던 감정 근원은 영원함을 믿었던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때 참으로 어리고 순수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서 , 회사가 가까운 친구 한명에게 전화가 왔다. 술을 한잔 하자는 전화였다. 나 또한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상사의 눈치는 내일로 미루고 발길을 옮겼다. 작은 선술집에서 만난 우리는 , 유심히 보았던 옛날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는 또다시 지금의 영원함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는 술잔을 연신 부딪혔다. 달이 꽉 찰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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