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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Jan 20. 2016

기억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는다

느낌으로 기억하는 모든 순간

어렸을적 어려운 형편에도 난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 소풍을 다녀오는데 , 버스기사 아저씨와 우리 달나라반 선생님이 이야기 하면서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계속 달나라반 선생님을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무슨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 그냥 어른들 사이에 흔히들 하는 농담 이었던 것 같고, 데이트 신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어떤 좌석인지 기억도 안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달나라반 선생님과 운전기사 아저씨끼리 서로 목소리가 오고갔던 기억 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도 생생하다. 기억은 하나도 나질 않는데 오히려 생생하다. 


한달전에 공부했던 내용도 외우려고 열심히 했던게 아니라면 금새 까먹는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이다. 기억을 잘하면 계산도 빠르고 , 똘똘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지능지수가 높지도 않고 , 창의력도 좋지 않았다. 당연히 기억력 또한 평범 그 이하 였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는데 꽤 많은 애를 먹었던 것 같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 했는데, 유독 나는 상황에 대한 기억은 잘한다. 그것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 기억을 잘 한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닌가 싶다. 나도 생각해보니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건 분명한데 기억을 잘하는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 내서 개념화 하는 능력도 그다지 좋지 못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력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 해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보통 '기억' 이라고 하면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좀 더 구분해서 이야기 하자면 memory의 성격의 기억을 보통 기억이라 한다. 하지만 , 나는 그와 다른 기억의 종류를 기억하는 능력이 발달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remember 의 성격을 지닌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기억 그 자체가 아닌, 감정과 내가 느꼈던 당시의 공기를 간직하고 끄집어 낼 수 있는 기억이라 할 수있다. 이런 기억은 실질적인 편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실용성이 높은 능력이 아니다. 되레 능력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감정과 경험 속에 있는 느낌을 상세히 기억하는 건 상당히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또 나를 지탱해 준다. 어쩔땐 지나치게 피곤하기도 하지만, 불치병 처럼 이내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젠 굳이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홀로 있어도 혼자이지 않다. 외로워 보여도 정작 나는 외롭지 않다. 그리움도 하나의 또 다른 나의 자아이다. 사랑했던 모든 순간이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지금 이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나만의 기억에 저장되는 순간이다. 더욱더 풍요롭다. 때로는 슬픈 기억에 마음 아파 하지만, 이 또한 내가 누리는 나만의 공간이다. 이렇게 하나 둘씩 모인 나의 기억들은 언제 소멸될지 모른다. 아마도 나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느낌으로 떠다니는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조금은 다른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통로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기억이 아닌, 느낌만이 생생한 기억으로 ....


언제나 그랫듯, 지금 이 순간도 기억은 곧 사라질테고, 기억만이 내게 남아 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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