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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Feb 04. 2016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재료들

위인동화를 통해 배운 것

어릴적 우리는 위인전을 많이 접하곤 한다. 훌륭한 사람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의 발화 라고도 할 수 있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미화 혹은 왜곡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모른다. 그래서 때론 잘못된 역사 관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지한 역사적 고찰은 뒤로하고 우리들에게 뇌리에 박혀 있는 위인들은 한명씩 있다. 좋아하는 역사속 인물이 있는 사람은 은근히 그 인물에 대해서 추종하게 된다. 그 사람이 가졌던 능력을 따라 하고 싶어하고, 무의식으로나마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인물이 두명이 있다. 역사적 평가는 뒤로하고 그 인물 둘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직업을 따라 가졌다거나, 능력이 같다는건 아니지만 그 당시 받았던 느낌은 지금 나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첫번째는 한석봉이다. 명필 한석봉의 이야기 중 '나는 떡을 썰테니 , 너는 글을 쓰거라' 는 많은 방송 소재로도 차용될 만큼 친숙한 에피소드다. 실제로 한석봉이 명필이었음에도 , 상당히 게을러서 많은 사고를 쳤다는 것을 어렸을적에 나는 알 턱이 없었다. 명필 한석봉의 이야기에 감명받으면서, 나는 '손글씨' 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서예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그런 형편이 못되어서 대신에 경필교본을 들고 다녔었다. 제일 부러운 애들은 글씨를 잘 쓰는 애들이었다. 나는 나만의 글씨체를 찾기 보다는 , 이쁘고 멋있어 보이는 글씨체를 따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잘쓰는 애들의 샤프도 같이 똑같이 써보고, 연필 쥐는 법도 바뀌보고, 글씨도 여러번 써가며 마음에 드는 필체가 나올때까지 썼었다. 공책 첫장의 글씨가 마음에 안들면 항상 찢어버렸고 , 그런 집착은 도무지 없어지질 않았다. 


글씨를 잘 쓰고 싶어 하는 나의 집착은 일종의 필기 도착증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종이위에 내 생각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도식화 하려는 노력은 편지, 메모를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나쁜 습관같은데, 사실 글씨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버릇은 여러모로 내게 큰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우선 , 서면으로 대화하는 순간이 오면 난 좋은 인상을 받곤 했다. 글씨를 말끔하게 쓴다는 것이 새로운 영역에서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는 깐깐하고 명석한 성격이 아님에도, 말끔한 글씨와 정리는 나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안겨다 주었다. 


또한 손으로 직접 써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메모를 하는 것에 익숙해 진것 같다. 내 기억력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메모는 나의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과 창의력을 붙들어 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쓰고 다시 도식화 하고, 또 쓰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내 나름의 사고방식 패턴을 가졌던 것 같다. 


한석봉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사 박문수의 위인전도 즐겨 읽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 권성징악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용 위인전 이었지만 난 그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생성했던것 같다. 내가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이거나, 탐관오리는 숙청하는 정의의 사도라는 말이 아니다. 난 어사 박문수에서 남들이 업신여기는 것을 단 한번에 뒤집는 그런 호쾌함에 항상 감동을 받곤 했다. (어떻게 보면, 어사박문수를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는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는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통쾌한 한방을 항상 즐겨 찾는 나는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보거나, 혹은 실제 상황에서도 통쾌한 한방에 집착하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성격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마냥 나쁜것은 아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결정적인 한방을 위해서 발톱을 숨기는 인내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같다. 

명검은 칼 집 에 있을때 그 빛을 발한다는 것 처럼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내 스스로를 제어 할 수 있는 명분을 가져다 준 것 같다. 


훌쩍 커서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나는 제2, 제3의 한석봉과 박문수를 찾고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 새로운것이 추가되고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질료를 찾아서 나에게 덧 붙이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을 하다보면 꼭 새로운 것을 창조 해내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자기것으로 재 소화 할 수 있는 흡수력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지니스에서는 좋은말로 벤치 마킹 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끊임없는 벤치마킹이 필요할 것 같다. 단,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적절하게 변용되어 '나'를 이루는 것으로 훅 들어어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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