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Feb 11. 2016

익명성 뒤에 또다른 익명성

가상공간의 실재하는 주체와 뒤틀린 악랄함

요즘 젊은이들은 흔히 "너 커뮤니티 활동 뭐해?" 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곤 한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든 , 그냥 눈으로만 글을 보는 사람이든(이를 '눈팅'이라고 한다)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중에 인터넷 게시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비중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명한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 때로는 댓글을 달며 의견을 짧게나마 이야기 하기도 한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닉네임이 존재한다. 자신이 글을 올리고, 혹은 커뮤니티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 일종의 ID를 부여 받는 것이다. 글을 쓸때는 자신의 닉네임을 걸고 글을 쓴다. 한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유저를 소위 '네임드(named)'라고 이야기 한다. 모든 게시판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게시판은 익명글을 게재 할 수 있도록 한다. 말 그대로 닉네임 조차 숨겨서 '익명' 이라는 통일된 장막으로 글을 올리는 셈이다.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가 오고갈 때도 있고, 거친 언사나 민감한 이야기를 쓸때도 많이들 사용한다. 이런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게시판'은 많은 비판에 직면한다. 특히나 '어차피가 익명의 공간인데 왜그렇게 익명을 또 사용해야 하는가' 라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는 듯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익명의 공간인데 불구하고, 익명게시물은 필요가 없는 것일까? 장단점은 차치하고, '익명 공간' 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의가 필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사이버 공간은 현실에 종속된 공간이 아니다. 이미 온라인 게임으로 증명되었듯이, 그 곳은 새로운 인격체를 하나 더 부여하는 서로 다른 평면의 공간이다. 이를테면 내가 사이버 공간에서 닉네임을 하나 정했다면, 그것은 현세와 다른 또다른 거대한 사이버라는 세계속에서 하나의 완연한 객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닉네임 (혹은 아이디) 라고 부르는 것은 , 자판을 치고 있는 지금 나 스스로가 숨어있는 익명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자판을 치고, 생각을 개진하는 것은 현세의 본인 이지만, 그러한 의견이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닉네임을 통해서 나아갈 때는 그 닉네임 자체가 하나의 주체가 되어서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좀 더 쉽게 도식화 해서 생각해 해보면 다음과 같다. A라는 사람이 동그라미커뮤니티(가칭)에서 '꼬마' 라는 닉네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글도 올리고 , 소위 말하는 네임드가 된 셈이다. 동그라미카페의 수많은 유저들은 A가 쓰는 글과 의견에 열광 하고 토론을 한다. 하지만, 결국은 A가 사이버 대리인으로 내세운 '꼬마' 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한다. 때론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꼬마' 라는 사이버공간의 가상주체와 이야기를 한다. 결국 '꼬마'는 동그라미커뮤니티 에서 또다른 실체가 된 셈이다.


우리가 처음 사이버 세계를 접했을때, 익명성 뒤에 숨어서 수많은 주제에 대해서 설왕설래 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1차 사이버 세계는 보편화 되었고, 새로운 세상의 층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 대리인인 사이버상의 주체 를 하나씩 가지고 있게 되었다. 결국 이 사이버상의 주체는 가상의 주체이긴 하지만, 마냥 익명의 가장이 아닌 엄연한 인격체가 되었다. 동그라미커뮤니티 에서 A가 올린글에 악플러들은 닉네임 '꼬마'를 공격한다. A는 사이버 대리인인 '꼬마' 또한 주체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어쩔때는 민감한 사항에 익명글을 올린다.  물론 대담한 자라면 당당히 글을 쓰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상공간의 인격에 실체성을 투영하는 성향이 다분하다. 그래서 사이버 게시판 이지만, 익명게시판을 또 사용한다. 이것이 가상공간에서 익명글이 점점 득세하는 심리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세상이 하나씩 만들어 질 때마다 , 인간 본연의 인격을 각각 세계마다 대리인으로 세우려고 한다. 마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는 하나이지만, 이를 전달하는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를 여기저기에 심어 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이버공간 도 이와 같은 맥락속에서 새로운 가상 주체를 만들게 되고 , 이 가상 주체를 보호하기 위해 또다른 익명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 가진, 보통의 마음이라면 상처받기 싫다. 서로 다른 층위의 세상이 펼쳐졌지만, 새로이 만들어진 주체 또한 본인이 만들어낸 엄연한 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호하고 싶어 하려는 심리를 가진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뒤집어 보면 튀틀린 인간의 공격성이 사이버 세상에서도 고스란이 복사되어 있는 모습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 게시판이 어차피 모두 익명인데 왜 또 그 안에서 익명을 사용하느냐' 라고 항상 소리치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이버 공간 이지만, 엄연히 그곳에서는 그 세계에 존재하는 주체적인 존재 이기에 , 이를 익명성 그 자체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계속된 익명의 무한퇴행은 악랄한 이기심이 초래한 것이라는 것과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험의 굴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