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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Oct 27. 2016

우체국을 다녀왔다

그곳은 언제나 따스하다.

    종종 회사일로우체국에 갈 일이 있다. 요즘처럼 날씨가 청명한 날에 오후 우체국 볼일은 그야말로 나에겐 해방감을 주는행복한 시간이다. 거들떠 보지도 않던 길가에 잡초들 까지 너무 반가워 보이고 , 신호 대기하는 자동차들이 질서정연한게 귀여워 보일 정도다. 우체국에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시간은 사람들 구경으로 정신이 없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급박하게 뜯고 , 자르고, 붙이고, 부치고한다. 행위는 유사해도 마음과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우체국은 참으로 사람냄새 나는 곳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우체국은그렇다. 나의 첫 우체국은 우표수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구나한번쯤 해봤음 직한 취미 우표수집. 새로운 기념우표가 나오면 그걸 사기 위해 꼬깃꼬깃 모았던 돈을 털어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셀 형식 우표있어요?” 

7천원이라는 직원의 말에 아까워하는 마음없이 내 용돈을 털어 넣었던모습을 생각하면, 영락없는 열정 소년이었으리라. 


우체국은 사춘기 소년에게 잊지못할 설렘을 선물해 줬다. 난생처음 글을쓰는게 어렵다고 느낀건 펜팔을 시작 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글로 시각화시킨다는게 그토록 어려운 건줄 몰랐다. 단 한장을 쓰면서 , 정지영의스위트 뮤직박스를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이 걸려 편지를 쓰면, 또 기다리는 시간이 일주일이다. 광고지만 가득했던 우편함에 알록달록한글씨로 내이름이 적혀있는 편지를 발견하는 날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랴. 고향집으로 가서 오래된 보물상자를열어 옛날 편지를 다시 보니 그렇게 유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또박또박쓰려고 화이트를 쓰고 , 또 쓰고, 결국엔 새로 편지지를사서 편지지 세트가 오합지졸인 걸 보니 참으로 따뜻했던 소년시절이 떠올랐다. 


우체국은 20대 청춘에 내 고향을 담아줬다. 신림동 고시촌 쪽방에 갇혀 공부한답시고 웅크려 있던 나에게 우체국은 고향집으로 내 마음이나마 보내는 작은 통로였다. 열심히 공부는 안하고 , 공부하는 척만 하던 나에게 부모님은 언제나든든한 후원자였다. “지익아 , 겨울이불 새로 보낼테니까, 지금 있는 얇은 이불 집으로 보내라. 귀찮다고 안보내지 말고 꼭보내라. 엄마가 씻어서 다시 봄에 올려다 주께” 이불 덩이를움켜지고 택배 보내러 가는 길은 귀찮았지만, 내 마음이나마 고향집에 보내는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회사 근처에는 중국동포들의 자치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좀 험악한풍경도 연출된다. 나도 밤에는 거리를 다니기가 무서울때가 있다. 그래도햇살밝은 날 찾은 우체국은 참으로 따스했다. 어렵사리 타국에서 돈을 모아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사서 보내려는마음들은 누구나 다 똑같은가 보다. 상자속에 꾸역꾸역 담았지만, 테이프와상자 밖으로 삐져나오는 그리움과 사랑을 봉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였다 

“아주머니 이거 이렇게 보내시면 안됩니다.” 라는 직원의 말이 들리든지 말든지 , 아주머니는 소포를 부치니꼭 잘 받으라고 전화를 거신다. 그 사이 직원은 포장용기를 새로 구해서 아주머니의 마음이 새어 나가지않고, 깨어지지 않도록 다시 꽁꽁 싸 메어 준다. 등기서류를부치고 나오는 내 마음도 왠지 목적지로 사뿐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우체국은 내 가슴속에서 따뜻함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을길 코스모스가불그스름한 우체국 담벼락에 그득 피어있던 외갓집 동네 우체국이 유독 더 생각나는건 왜일까. 세월은 흘러버렸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것만 같다.가을바람처럼 청아한추억이 현재의 나와 함게 하기에 다가오는 세월이 두렵지 않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오만가지 상상을하며 우체국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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