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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Mar 22. 2020

다섯 가지 구멍

귀, 코, 눈, 입, 마음

2009 년에 썼던 글이지만 잊어버리기 싫어서 브런치 지면을 빌어본다. 





1. 귓구멍


어젯밤에 귀가 너무 가려워서 아내에게 귀지 좀 파달라고

했습니다.  무르팍에 자리 잡고 누웠는데 울 아내가 하는

말이...  내 귓구멍이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구멍은 작은데 그 안은 왜 이렇게 큰 거야? " 

내 귓구멍이 그렇게 생긴 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귀지가

쌓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커져서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나오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쓰레기를 내 안에 두고 살아갑니다. 




2. 콧구멍


며칠 전에 저의 아들이 코를 너무나 열심히 파고,

후비고 있길래 제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You better stop picking your nose right now !"

그랬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 Daddy, you pick yours, too ! "

..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아차.. 안 들켰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바람직하나 방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 꽁꽁 숨어서 했어야 했는데.. ㅋㅋ 



참 . . .  아이들은 우리가 보여주는 그대로 살아갑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귀신 같이 따라 합니다.  지금

성장한 우리의 2세들을 생활, 가치관을 보면 숨길 수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그들의 미덕으로 인하여 뿌듯하게

느끼는 부분은 코딱지만큼이고, 책임을 동감해야 하는

부분은 너무나 많음을 느낍니다. 



제가 지금 오버하나요?



콧구멍을 보면서 절실히 느낍니다.  내 아들을 위해 더

똑바로 정신 차리고 올바로 살아야겠구나...  우리들의

아들 딸들은 우리들의 거울이구나..





3. 눈구멍


눈구멍도 입구멍처럼 평상시 쓰는 말은 아니지만  technically

구멍이니..  


몇 주 전 뒤뜰에 있는

deck을 청소하다가 chemical 이 눈에 튀어 아주 큰일 날 뻔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오른쪽 눈 안의 흰자에 화상 흔적이 역 역할

정도로 대형사고였다.  급히 응급실로 뛰어가고 금방 치료가

가능했던지라 다행히 작은 상처로 수습이 되었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아주 무서운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실명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가득 밀려왔다.



그러고 보니 나의 절친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지독한 약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내 친구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많이 주려

왔었다. 잘 보지 못한 체 그렇게 평생을 지내는 친구도 있는데.. 


시각장애자였던 그 친구, 그리고 그 친구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했던

오랜 추억을 나누고 싶어 졌다.  거의 15년 전쯤.. 델라웨어주의

Sandy Cove 수양관에서 수양회를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마지막

날 자유시간에 수양관 앞 큰 호수?  Chesapeake Bay으로 그 친구와

둘이서 보트를 몰고 나갔었다.  망망한 물 위에 떠 있으니 번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이 친구에게 운전을 맡겨보자.. 그리곤 모터보트의

운전대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키를 움켜쥐고 속도를 올리며.. 바로 그때 이 보트를 몰던 그 친구의

환한 미소를 난 잊지를 못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너무나 환한

그의 미소..  평생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 이 시간  '운전'을

하고 있는 그 친구의 즐거움,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  옆에서 바라

보고 있는 나도 감격이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그 친구는 그때의

기억을 너무나 생생히 가지고 있었다..




..  얼마 전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가 하나 생겼다.. 요즘은 이 친구에게

어떻게 음악을 선물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4 입구멍


보통 입을 입구 멍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의학용어로는

입을 oral cavity라고 표현하니 직역을 한다면 '입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입구멍... 나의  밥줄이다. 입구멍이 없다면

입구멍 고치며 사는 나는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 베드로에게

그물이 손에 들려 있었다면 나에게는 사람들에게 있는 입구멍이다. 

내가 이 입구멍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물을

내려놓고 떠난 베드로와 그 친구들처럼.



난 단기선교를 갈 적마다 내가 끼어 있음으로 의료선교라는 타이틀이

늘 붙어 다녔고 모든 사역이 그렇게 맞춰졌었다.  올해 C국 사역은

나에겐 조금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먼 곳까지 가는데 내가 그곳

사람들 입구멍을 고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내가 해야 할 일보다는

동행하는 내 아들의 임무가 더 크고, 난 그 아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예전 같아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름 변화를

즐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예수 믿지 않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얼마 전 무르팍 도사에 나온 “안철수”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도전과 교훈을 주었다.  잘 나가던 의사를 그만두고, 전 국민을

상대로 엄청난 도움을 주었던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사업가로, 이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그의 올바른 신념과 철학은 개신교 특히

the reformed church에서 너무나 강조하는 믿는 자의 세상 속에서의

갖추어야 할 자세들을  너무나 투명히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었다. 

정작 그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주위 사람들이 그가 기독교인이라고 

오해를 한다, 그가 보이는 삶의 정직함과 결과 때문에.



그가 이야기한다.. “삶의 효율성으로 이야기하면 자기는 빵점이다..

내가 일을 바꿀 때마다 그 바꾸는 일들이 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말이다.  그는 브레인도 있고, 의지도 있고,  순수성도

갖추었다.  다만 예수님이 없으니 우리가 접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우리의 꼴은 우습기만 하다…  슬픈 현실이지만 사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더 많다. 



입구멍..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 여태까지 힘들게 왔지만 여기가 시작이고

구석구석 숭숭 뚫어져 있는 다른 구멍들을 찾아서 떠나는 일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를 느낀다. 





5. 마음 구멍


얼마 전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 후배가 꼭 패스하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했다.  애타는 그의 마음에 내가 한 말은..

 
".. 붙는 것도 그분의 뜻이고, 떨어지는 것도 그분의 뜻이고..." 

순간 이 후배의 마음에 뻥.. 하고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쉽게 말해서 산통 깨진다고나 할까... 얼굴에 비치는 실망스러운
표정이 고맙다고 말하기보다는 원망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듯..

마음의 구멍...  살면서 우리의 마음엔 무수한 구멍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마음속 깊이 담아 두어야 할 것들은 알게 모르게
다 빠져나가고 흉하게 남은 찌꺼기들의 잔재들.. 

얼마 전부터 난 다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열심을 다시 내기 시작했다.  기본적 이론부터 다시.  내 마음속의
구멍과 허함을 메우는 첫 번째 몸짓이다. 

언젠가 비슷한 글을 쓰면서 이런 경우 내 마음속의 구멍을 메우는
유일한 길은 '복음'이라고 쓴 기억이 있다...  마치 patch처럼 구멍을
메우는 수단.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복음을 근사하게 포장한 싸구려
제품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손에 잡히는
복음, 그것이 나타날 때 비로소 그 구멍이 메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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