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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Mar 22. 2020

미대생 딸내미

COVID19

" 야 딸, 이리 좀 와 봐 ~~.  

이 그림들 좀 봐봐.  아빠가 며칠 동안 그린 거야.  솔직히 어떤지 한번 평가해봐.  "


딸내미는 잠깐 매의 눈으로 쳐다보더니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낸다.   "아크릴릭을 쓸 때가 아니다, 오일을 썼어야지. 웬만해서는 흑백으로 그리지 마라, 이건 칼라가 문제가 많다...  "  


아니 이 가시나가..  이제 진짜 미대 다닌다고 제법 그럴싸한 비평을 사정없이 해된다.  그런데.. 내가 딱히 할 말이 없다. 잘 들어보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 이 C.. )  아쭈구리.. 제법 많이 늘었는데.. 이제 진짜 좀 미대생 같은데..?  칭찬을 기대했다 급실망하는 내 얼굴을  보면서 한마디 더 한다. "You wouldn't survive in our school.  We do criticise our works in the class and everyone is so cruel and nasty.. 




Corona Virus 때문에 주정부에서 무조건 집에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때다 하며 난 종일 집에 처박혀 그림을 시작했다.  딸내미가 있는 뉴욕도 마찬가지.  학교는 물론 기숙사도 폐쇄가 되어 뉴욕에서 딸내미를 데리고 오는 Turnpike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딸내미는 뉴욕에 있는 Cooper Union 이라는 학교를 다닌다.  미국 내에 Art School 뽑으라 하면 늘 1, 2 등 하는 학교인데 정말 쪼그만 학교다.  전 세계에서 문을 두드리는데  Acceptance Rate 이 15% 밖에 되지 않는다.  이 학교가 정말 들어가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뭐냐면..   이 학교는 다른 곳과는 달리 과제 시험을 따로 보는데, 그 과제가 어마 무시하다. 나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맞는 작품을 다섯 점을 만들어 내는 과제였다. 대부분은 그 과제에 지래 겁을 먹고 지원을 포기한다.   


딸내미는 고2 때 나랑 이 학교 투어를 왔었다. 다른 학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 학교 수업방식이나 지향하는 목표가 특이해 이 학교에 나도 딸내미도 꽂혀버렸다. 이 학교는 전공이 없다.  그냥 모두가 ART라는 하나의 졸업장만 받는다.  학생들이 모든 ART에 관한 수업을 들어야 하고 모든 분야를 다 거치는데. 


그 입학 과제를 할 때 내가 살며시 물어봤다.. 혹시 아빠가 좀 관여해도 되겠냐고.  나름 평생을 ART에 관심을 두고 산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딸내미는 단호했다.  한마디로 Stay Away ! 라는 선언을 해버리고 한 달을 두문불출하더니 과제를 시간 안에 완성했고. 난 그 딸내미의 작품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학교는 입학하자마자 우리가 흔히 아는 ART에 대한 기장 기본 상식부터 철저히 파괴해 버린다.  선하나의 의미도 새로이 배운다.  그러니 나의 input 이 들어갔으면 이건 독이 될 뻔했었다.   





기숙사 짐을 차에 싣고 내려오는 길에 딸내미가 이야기한다.  아직도 impressionism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냐고. 그래서 과감히 받아쳤다, " 야 임마, 그래도 impressionism 은 졸업하고 post impressionism 정도 가 있어.  무시하냐? "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슬쩍 부끄러워진다.  내가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난 아직 인상파 이야기나 하고 있고. 그것도 미술사에 대해서 뭘 좀 안다고 자부하던 내가.

멋쩍어하는 나에게 딸내미가 위로한다. "아빠, It's OK.  You are fine.  I understand you." 그러자 내가 얼른 받아쳤다,  "그렇지?  임마, 그래도 난 후기 인상파에 가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마시대 조각상이 예술의 전부인 줄 알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 시대 조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많아.. 그렇지? "  She laughs. 


그렇다.  우린 아직도 그림을 이야기하면 인상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사조가 지나가고 미술에 대한 개념이 강산이 열두 번 바뀐 것처럼 그렇게 변했는데, 우린 모두 화석이 되어버려 움직이질 않는다.  피카소로 대변되던 현대미술에서부터 사람들은 길을 잊어버리고, Contemporary Era 로 접어들면서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조차 감이 오지 않는다.  그 모든 급격한 변화의 시작은 우리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에서이다.  이름도 들어도 좋은 모네, 고호, 르느와르, 세잔, 피사로, 그 뒤로 나온 피카소. 


그 다음은?


포스터 모더니즘, 다다이즘, 아방가드로는 피카소와 무슨 관계며 마네하고는 또 어떻게 연결되지...?  이게  말이야 빵구야  .... ?   전시회에서 변기를 들이밀던 마르셀 듀샹은 왜 우리가 사는 필라델피아 뮤지움에 제일 큰 방을 차지하고 자랑스럽게 그 깨진 유리조각들을 전시하고 있는 거지..?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미술이라는 예술 자체가 가지는 의도의 변화이다.  인상파 이전의 미술의 주제는 Reproduction 이었다.  사실의 묘사라는 과제를 실천하기에 예술가들은 정신이 없었다, 보다 사실적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그러다 정신을 차린 예술가들은 미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것을 생각했다.  선, 면, 색채, 캔버스.  똑같이 재생산하는 것 말고, 미술세계에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십분 발휘해 의미를 새로이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순수미술이라 부른다.) 거기에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Reproduction 의 leash 를 끊어버리고 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 신비를 캔버스에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캔버스의 의미조차 새로인 해석하기 시작하면서는 엄청난 변화의 또다른 시작이였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작가들의 작품에 맘을 빼았긴 우리들은 그것이 그림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어버리고 우리의 시간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이런 후기인상파 화가들이 개인적으로 발휘한 천재성을 시작으로 의미 전환의 새로운 물꼬가 터지자마자 홍수처럼 새로운 시도, 새로운 미술가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시도가 생겨난지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정신 차릴 틈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ART는 급물살을 타고 있고 우리 딸내미는 지금 그 제일 가운데 들어가 숨 가쁘게 노를 젓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바위에 부딪혀도 깨지지 않는 Polymer로 만든 배를 타고 GPS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딸내미한테 구구절절한 잔소리, 튼튼한 배를 잘 만들려면 좋은 나무와 대패질을 잘해야 하고 북극성을 구별해야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외치는 셈이다.  딸내미는 시작부터 ART에 대한 완전히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이미  Contemporary 미술의 메카가 되어버린 뉴욕 한가운데 있다.  MOMA는 그 최전선에 서 있고 나 같은 사람들한테 무수한 욕을 바가지로 듣고 있다, 저런 그림 내 발가락으로도 그리겠다고...  난 마치 파리의 전시실에 처음 걸린 마네의 그림을 지팡이도 부쉬고 무조껀 옛것을 숭상하던 높은 모자 쓴 고집불퉁이 노신사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당분간 딸내미의 훈계와 잔소리를 기쁜 마음으로 들으련다.  



 



 



   





무자비한 비판을 들어야 했던 내 그림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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