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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Mar 30. 2020

조그만 예배당

난 개신교의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구교의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하는가.. 누구에게 깔대기를 들여대서 외치고 싶지도 않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는 동안에는 이 세상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며, 나는 혼란과 갈증과 답답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평생의 돌부리를 마주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일단락처럼 정리를 해 놓아야  ..  그래야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 반복하지 않고, 고칠 것이 있으면 발전 시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둔다.


개신교는 일말의 타협이란 없다.  진리는 하나이기 떄문에 오직 길은 하나뿐이다.  오직 하나 뿐이다, 무엇이던 간에.  죽어라장창 그 진리만을 외친다.  강요하고 억압으로 초지일관이다.  그것이 맞기 때문에.  그것이 신이 피로써 물려준 유산이기에 절대 틀리지 않는 진리이기에 !!     죽어라 복종하면.. 그러고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너들너들 주눅들거나 아니면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이중생활을 배우게 되면 또한 자유로와진다.  가면이 두터워지고 그것이 결국은 자기의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만다.  누가 자기의 정체성을 정확히 말할 수있으리요.  정체성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모습을 보고 정의하는 것이다.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구멍게가처럼 터를 잡은 개신교 교회는 절대 돈에서 자유로와질 수 없고,  또 그것이 거대한 뒤틀림으로 모든 것을 한번 더 뒤집어 놓는다.  아니라고 부인하지 말자.  눈가리고 아웅이다. 


난 성당을 가본지가 별로 없어 말 할 자격은 없지만 .. 느낌은

구교는 방지턱이 엄청 낮다.  턱이 없이 그냥 바닦에 페인트 칠 했을 뿐이다.



조그마한 예배당, 화려하지 않은 격식, 

그리고 거기에서 잔잔히 전해지는 말씀이 내가 그리는 그림인데... 


내가 틀린것인가?




Vik, Iceland









누군가 내 오랜 질문에 대답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엘에에이 있는 제일 큰 한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파킹장이 컸었는데, 입구와 또 다른 구석에 ‘경비실’이 있었고

Typical 경비 아저씨 두분이 들어오는 차마다 굽신굽신 인사를 

하고 있었고 젊어 보이는 분들은 그 인사에 신경쓰지 않고 지나치고

있었다.  교회 스탭처럼 보이는 분들이 나와서 뭔가 열심히 지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그림…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만역 그 경비하시는 분들이

그 교회 장로님, 집사님 이라면?  아니 목사님 이라면?

형재애?  이웃사랑?  

설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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