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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Sep 21. 2020

틀리 이야기 II

지난달 덴포 라인에 틀리에 관한 글을 기재하고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미국식 표현에 ‘open a can of worms’ 이란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감당할 수 없는 진짜 문제가 터져 나온다는 관용구인데, 지금의 내 마음을 맞게 표현하는 것 같다.  문제점을 들어낸다면 나름의 해결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라 생각하는데, 이 ‘틀리 치료’에 관해서는 묘책이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은 Dentistry의 본질에 접근할 수 밖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이 일을 하는 한인의사가 두 명 있는데 최근 나 아닌 다른 의사가 틀리 치료하는 것을 가까이서 동시에 볼 기회가 있었다. 둘 다 치대학원을 졸업한지는 10년이 넘었으니 초년병(?)은 아니고 나름 이젠 그 지식과 기술이 수준급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중 한 명은 Nursing Home (양로원? 노인 복지 센터?)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편의상 Dr.A 라 부르자. 거기서 흔하게 하는 치료 중의 하나가 바로 틀리 제작이다.  그래서 Dr.A가 우리 병원에 조인하기 전에 인터뷰를 하며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제부터 이 친구에서 모든 틀리 치료를 부탁하리라 기뻐 (?)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가며 틀리 환자는 자꾸 내 스케줄에 채워지는 것을 보며, 내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관심 있게 Dr.A가 하는 틀리 치료를 자세히 보니, 그 친구는 일단 틀리가 완성이 되면 환자들에게 Delivery를 하고 그게 전부다.  


환자분들이 불편을 호소에 예약을 해서 찾아오면 다시 본을 떠서 그 틀리와 함께 기공소에 보내 adjust를 한다.  Chairside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음에도 그런 procedure 들은 편하지 않아 다 기공사에게로 보낸다고 한다.  그런 획수가 잣아지면 환자분들도 지쳐 더 이상 오피스로 오시지 않으니, 정작 그 틀리를 쓰시는지 포기를 하신 건지 알 길이 없다. 왜 Follow up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무수히 보았던 Nursing Home 환자들은 대부분 치매끼가 있어 틀리를 만들어도 잘 사용하지 않고, 그러니 follow up 하는 의미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심 나를 많이 화나게 하는 대답이었다.


다른 의사, Dr.B라고 부르자.  이 친구는 환자에 대한 성의와 열의가 대단한 친구다.  잇몸이 너무 좋지 않은 한 환자 전체 발치를 다 하고 틀리 제작을 했는데 그 결과는 역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환자분은 결코 만족할 수 없고, 치료를 책임진 Dr.B 의 실망도 커갔다.  Dr.B는 새로운 틀리 제작을 선언하고 처음부터 이것보다 저 훌륭한 수 없을 것 같은 한 단계 한 단계 작업을 거치고, 새로이 만들어진 틀리를 부분 기대와 함께 Delivery 했는데 …  환자분은 계속 불평만 늘어놓으신다.  결국 Dr.B 는 두 손 다 들고, 그 환자분은 내 스케줄로 자리 잡는다.  


한참 산업 4차 혁명이 이야기되고, 의료계에도 A.I. 가 자리 잡는다고 할 때,  “모든 분야들이 A.I.로 인해 상상하지 못하는 발전을 한다고 해도 절대 치과만은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여러분들의 직장은 영원히 보장될 겁니다.”라고 내가 농담 서린 이야기를 스태프들에게 한 적이 있다.  치과분야야 말로 A.I. 가 접근하지 못하는 독보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Computer 가 계산한 첨단의 Guide로 예전엔 불가능했었던 임플란트 수술이 가능해지고, 의사들의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섬세한 Diagnosis 기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장에 나오고, Fiber Optic에서 LED Light 이 첨가된 Loupe 기술에, Digital Scanner까지 기술발전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치과에서 가장 기본적인 간단한 충치치료가 치과의사의 섬세한 손놀림 없이 가능하겠는가?  그것보다 더 간단해 보이는 틀리 치료는 과연 Technology 가 대체할 수 있겠는가?  틀리를 제작한 후 그때서야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살피고, 실망한 환자분들을 불평을 다 들어주고 어우려 가며, 결국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것이 모든 치과의사가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 아닐까?  그것이 Dentistry라는 분야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오래 참고, 책임감 넘치는 하얀 가운.  거기에 채 초심을 확인하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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