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우는 할머니

100살이 되면

by 새벽종 종Mu

(*사실은 이 글이 시간적으로 제1화임.)

여름에 우리는 모두 치열했다.ㅡ연지공원게시물

고맙다.
걸핏하면 울기부터 하는, 아흔세 살 우리 엄마가 변했다.

딸인 나를 화풀이 대상쯤으로밖에 여기지 않던 그 질긴 히스테리를 버리고, 2-3분도 안 되는 통화에 고맙다는 말이 벌써 몇 번인가.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안기길 잘했다!

조카가 보내준 11월11일의 단풍ㅡ남산

지난 토요일 휴대폰 대리점으로 들어가기까지 내 마음은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긴장 상태였다.

엄마가 필요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면 어쩌나?

그렇게 되면 다시는 엄마 휴대폰 만들자고 의견을 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긴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궁핍한 시대를 헤쳐온 앞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 엄마는 당신에 대한 소비에 대해서는 버릇처럼 거절부터 하는 분이다. 예의와 염치로 한두 번 사양하고 보는 그런 거절이 아니라, 완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를테면 황소고집이 따로 없는 그런 수준의 고집을 보인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이 그렇게 해야 자식들이 편할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지만, 또 덕분에 아무것도 안 하고도 엄마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 살기 고만고만한 자식들로선 내심 그게 좋기도 했으련만, 어쩌다 진심이 우러나서 엄마한테 뭐라도 사주고 싶어질 때가 되면, 며칠 전부터 많은 경우를 예상하고 대비하며 나름의 전략을 짜야한다.


지난 토요일이 바로 그랬다.

엄마것으로 화면이 큰 쪽을 골랐다ㅡ휴대폰 대리점

올케가 점심에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막상 엄마까지 모시고 나와 준 것은 일단 좋은 시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올케와 의견만 나눌 뿐, 다시 기약 없이 실행이 미뤄졌을 터이니 말이다.


밥을 먹어야죠. 근처에 새로 생긴 설렁탕집이 있는데.

그래요? 그럼 그리로 가죠.

창가에 자리가 남아 있어서 셋이 앉았다.

내 옆에는 엄마, 내 맞은편에는 올케, 메뉴판을 넘길 것도 없이 셋 다 설렁탕을 시켰다.


뜨거운 탕을 앞에 두고, 엄마는 식탁까지 팔을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해, 밥그릇을 손에 들고 몇 술 뜨다 마는데, 그 몇 번의 수저질 사이, 식탁에 국물 방울을 떨어뜨리고, 국에 말고 남은 밥을 바닥에 흘리고, 시어머니로 함께 산 지 30년이 넘은 올케는 그런 엄마를 신경 쓰기에 바쁘다.

엄마, 의자를 당겨서 밥그릇을 식탁에 놓고 먹지.

엄마가 밥 먹으며 자꾸 흘리는 게, 내 생각엔 엄마 상체가 식탁에서 떨어진 탓인가 싶어서 하는 얘기였다.

어머니가 식탁 위로 팔을 뻗기 힘드세요. 어깨 양쪽 연골이 다 닳아서 많이 아프시대요. 수술하면 안 아프다는데, 연세가 있으니 병원에서 수술을 해 주나요?

며느리인 올케의 설명이다. 어깨뼈가 아프다는 얘긴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딸은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어렴풋한 감지만으로 사뭇 걱정만 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며느리는 시모에 대해서 아는 게 자꾸 늘어간다. 그에 따라 실제적인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 마음이 피로하다. 시어머니가 어째서라기보다, 며느리 입장이 되어 무관심할 수 없는 어떤 부담이, 스스로도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십 갱년기를 지나 육십을 넘기는 나이인데, 모시는 시부모가 없다 하여도, 생활을 위해 짊어지는 무게가 뭔들 안 무거우랴. 세상만사 다 짜증 난다 하여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이다.

올케가 보내준 파리바게트 이용권으로 특별한 브런치를 ㅡ11월10일

그렇다고 뭐 많은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게, 시누와 올케 사이이다.

적정 거리를 지키며 몇 마디의 소소한 회제를 주고받으며 바쁘게 식사를 마친다.

설렁탕집을 나와 큰길로 나가면 곧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건 올케의 예정일뿐, 내겐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오늘 엄마 핸드폰 개설해요."

"오늘요?"

올케는 뜨악하다고 할까,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고, 집전화기조차 아예 받을 생각을 안 하는 엄마였다. 벨소리를 못 들어서가 아니다. 전화를 받으면 수화기 너머 말소리를 잘 못 들으니, 그런 당신이 답답하고 싫은 것이다. 그런 시어머니한테 휴대폰이라니? 쓸 데 없는 선물이다. 보나 마나 저만치 밀쳐두고는, 노인네가 '몰라, 안 들려. ' 하면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들리지도 않는 걸 뭐하려 사줬냐고 구시렁대기만 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결국 성가신 일거리만 늘어나겠지. 뻔한 공식이 연상되는 듯 지나치게 무심해 뵈는 올케의 반응을 느끼면서도 나는,

이렇게 나온 김에 오늘 개설해요. 그렇지 않음 언제 하겠어요? 하고 올케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면서 중언부언 설득을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엄마 비관주의에 휴대폰이 약이 될지?"

걸핏하면 감상에 빠져 '이렇게 오래 살아 뭐하냐'라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혀 내키지 않아 하는 올케에게 전에 없이 강하게 주장을 했다. 일단 사자고.


물론 그런 말이 엄마 귀에는 들리지 않길 바랐다. 아니 엄마 명의로 핸드폰이 개설될 때까지 엄마가 사정을 모르고 있길 바랬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나 그런 거 필요 없다, 하면서 대리점 문 앞에서 버틸 것이고, 그럼 올케는 거 보세요, 하며 노인네한테 괜한 희망을 걸지 말라고 날 포기시킬 게 분명하니 말이다.

이웃집 대문밖에 내놓아진 고양이 도안이 예쁜 탁상

다행히 올케는 내 말을 들어주었고, 다행히 엄마는 영문을 모르고 대리점 안에 들어섰다.


막상 올케도 설득하고 엄마를 대리점 안 의자에 앉히고, 창구에서 핸드폰 서류를 작성했지만, 직원이 내민 아이패드에 손가락으로 이름 써서 서명하는 일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엄마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펜도 안 쥐어주고 손끝으로 작은 티브이 같은 유리판 위에 이름 석 자를 쓰라고 했으니 그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어 반응이 굼떴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긴 해도, 직원이 나중엔 손목 잡아주는 것도 귀찮아하며, 직접 써 보세요 할 때는 내가 다 창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은, 배우는 어린 학생의 맘으로, 열심히 이름 석 자를 완성할 수도 있으련만, 제 풀에 손을 거두며 "나 못 해!" 하고 중도포기를 하는데, 인내심이 하나도 없이 떼쓰는 어린애를 보는 것 마냥, 그런 엄마가 갑자기 밉상스럽게 보였다.

아휴, 정말 싫다. 이런 엄마!


자잘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엄마 꺼로 스마트폰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그날은 엄마 평생에 기록적인 날이었다. 93세가 되도록 폴더폰도 가져본 적 없던 엄마가, 21세기 인류의 대표적 발명품인 스마트폰을 손에 쥔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감격적인 날, 엄마 핸드폰은 누구와도 개통식을 못했다.


아마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은 탓이겠지. 벨이 울려도 전화를 어떻게 받는지를 모르니 속으로만 안타까워하며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다른 누구의 탓이 아니다.

엄마 자신이 자식들 신경 안 쓰게 자신을 위축시켜온 몇십 년의 결과이다. 그러는 것이 노인다운 모범생활이라 믿고 열심히 실천해온 결과이다.

젊어서는 자기주장이 없지 않은 엄마였지만, 어쩌면 자신의 강한 기질이 오빠네와 합가에 장애가 될지 모른다고 지레 걱정했던지 모른다. 혹은, 엄마 자신이 젊은 시절 보고 겪었던 철없거나 흉악한 시어머니는 안 되려고 무지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성격도 죽이고 생활태도도 개조한 것이다. 그 변화의 방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신이 30년도 넘게 있는 듯 없는 듯한 할머니로 살아야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젊은 아들 며느리 귀찮게 하지 않는다고 몹시 조심하며 지내온 입장에서는, 당신 일생에 그렇게 작고 신기한 것을 처음 가져 본 날임에도 불구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신문물이 아무리 신기하고 궁금해도, 저녁에도 바빠 보이는 며느리를 부르거나,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바 없다며 방문 닫고 앉아 있는 아들에게 다가가, 이거 대체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물어볼 용기기 안 났을 것이다. 그래서 밤새 몹시 궁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억지로 잠을 청했을 것이다.


설렘도 호기심도 억눌러야 하는 그런 나이란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정하고 그 수행에 한사코 면려해 온 내 어머니. 그래서 올케는 편한 낯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올케는 또 무슨 고생인가 싶어 나는 내놓고 물어보지도 못했지만, 딸로서 엄마에게 묻고 싶은 바는,

엄마, 왜 그러고 살아요? 좀 당당해도 되잖아요? 하고 크게 외쳐주고 싶다.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집들이 많았지만, 우리 집도 늘 돈이 쪼들린 것만도 아니었지만, 절약을 생활신조로 다섯 자녀를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 일하시던 엄마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방이 꽉 막힌 듯한 상황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가족을 격려하던 엄마의 말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엄마인데, 장수하는 한 해 한 해가 무슨 잘못이나 되는 것처럼, 왜 죽지 않느냐고 울상이시다. 이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여 소리쳐주고 싶어도, 내 그런 말이 가족들 각각의 입장에서 다르게 들릴 게 분명하기에 삼키고 만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100세 시대에 돌입한 지금의 사회를 화제로 올린다.


언니.

100세 시대가 남 얘기가 아니야. 이제 우리도 별 변수가 없는 한, 눈 깜짝하고 나면 100살이 되어 있을 거야.

올케도 그쯤은 상식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니는 100살 때 뭐 하고 싶어? 묻고 싶지만 엉뚱해 보일지 몰라 속으로 생각한다. 이 언니의 100세는 어떤 낭만이 있을까?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 단지 보이는 것은, 직장 다니느라 한 달에 겨우 이틀 쉬는데, 오늘도 시어머니 시누이와 점심을 먹어야 했던 올케의 조바심 가득한 얼굴이다. 어쩌면 100살까지는 구체적인 그림이 없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러니까.


우리도 그러니까, 앞으로는 엄마한테 단 1분이라도 좋으니 이제까지 보다 조금만 더 신경 쓰자고요. 막막한 효도에도 휴대폰이 답일지 모르잖아요.


소리를 낼 수 없는 딸의 제안이 통했는지, 그다음 날은 엄마랑 연결이 되었다.


엄마?

고맙다.

어떤 말도 냉랭하고 쏘는 듯한 어조인 데다 아들을 위하는 방법으로 딸을 살짝 무시하던 내 엄마가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 내게 고맙다는 말부터 하다니. 그것도 평생 처음 듣는 따스한 온기를 담아서 말이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 엄마에게 내 희망이 통하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다.

손바닥 만한 작은 그것이 있어 엄마가 점점 명랑해질 거라고,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통화를 끊고는 나 혼자 낙관주의에 빠져 나도 모르는 미소를 짓는다.


(사진: 부모님의 고향이 있는 익산의 미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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