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1960~) 강원도 정선 출생, 고전연구가 겸 평론가. 그녀는 그걸 해냈다. 시작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고 한다.
공부가 업이 되면 보통 대학에 남기를 바란다. 고미숙 그녀도 그랬던 거 같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교수로 임용되는 길이 막히면서,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들었고, 조선의 문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루면서 그녀의 연구 인생이 보다 풍부하게 열렸다고 한다.
나는 오늘 조카를 만나 '남산'에 다녀왔고
11월 6일 자의 남산 단풍은 더할 수 없이 고왔다.
그런데 남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한번, 내려오면서 한번, '고미숙'과 '감이당'을 생각했다.
산책로의 벤치는 만남을 꿈꾸게 한다.ㅡ남산에서
나와 그녀와 직접적으로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이이다.그런데도 내 마음속에서의 그녀는, 나와 무려 10 년쯤 알고 지낸 사이이다.
중국에 살면서 나는 공부할 게 있거나 없거나 노트북을 켜곤 했다. 또, 그날 공부할 게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노트북을 켠 뒤 한참씩 거쳐야 하는 곳이 다름 아닌, '다움' 뉴스나 '네이버' 뉴스였다.
남이 보면 뉴스 검색을 하는 것이지만, 나로선 그게 브레이크 타임이자 사교 살롱으로, 혼자서 다양한 뉴스거리와 한참 수다를 떠는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드라마를 보던지 아니면 논문 몇 줄이라도 쓰던지... 그런 단조로운나날이 있었다.
고미숙 고전연구가.
내가 그녀의 존재, 그녀가 무엇인가 뜻을 품고 일을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렇게 혼자서 조용하고도 묵묵하게 게으르고도 느린 이국의 일상을 보내던 그 어느 날, 예의 내 고독한 브레이크 타임에서였다.(*혹은 유학을 결정하기 전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도 나는 늘,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의의 깊은 진행에서 나만 낙후되어 남겨진 것이라고 자주 서글퍼했으니까... 게다가 특히 숫자에 약한 나란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정확히 기재되지 않은 채 상자 속에서 문득 꺼내지는 옛 사진들 같아서 말이다.)
어쨌든 내가 보았던 기사에서는, 그녀가 <수유+너머>라는 연구공동체를 유지케 하는 중심적 존재로 소개되고 있었고, 그녀는 계획이 아주 많아 보였다. 하긴, 서재에 틀어박힌 학자들을 자주 원탁에 모이게 할 정도의 열정이라면... 일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할 것이다.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분명 뱃속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들어있을 것이고... 이게 그녀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어디 첫인상뿐이랴! 수유 너머, 그곳에서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알찰 것임에, 뭔지 모를 흥겨움이 내게까지 전해졌다. 학문 간의 경계를 턴 모임, 그 모임을 통한 공동 연구, 거기서 창출되는 시너지 효과... 일찌감치 그녀가 시작해 버린 것이다. (*수유리 공부방의 시작 연도는 1998년이라고 한다.이 연구공동체와 고미숙 연구원에 대한 개인적 소견이라면, ㅡ이 세상에 생겨나야 할 것 중 하나이자 나도 막연히 꿈꾸던 일, 그러나 인간관계에 대차지 못한 나로서 전혀 엄두가 안 나는 일, 아마 기회가 있어도 참여자 입장을 취할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어두자.)
그녀는 앞으로 더욱더 큰 일을 해낼 것이다.
직감이었다.
이런 경탄이 순간 한숨을... 많이 아쉽다고나 할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좋은 의도의 시작에 끼지 못했을까. 시간도 경로도 비껴간, 그러나 너무 찬동하고 싶은 그녀의 '수유 너머'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와의 인연의 실이 너무 가늘다는 것에 살짝 한탄했을 것이다, 내가.
그 뒤로 그녀의 일이 거의 어렴풋하다.
인연이 없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성격 탓일 수도 있고, 혹은 내가 국내 소식에 소상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나의 거처가 '수유'역 근처로 정해지면서, 내 뇌리 속으로 문득, 그럼 '수유 +너머'에 가까워지는가, 가까운 김에 강좌에라도 가게 된다면... 이런 가정만으로도 어쩐지 행운에 접근하는 기분이었다.
수유역 근처에 집을 얻었다, 결과는 대만족
그런데 알고 보니, '수유'에 그녀는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그녀는 <감이당>에 가 있다.
하. 하. 하.ㅡ이것은 그런 생각이 허탈한 기대임을 알았다는 웃음이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래도 생활은 언제나 꿩 대신 닭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 팬데믹에 휩쓸릴 때, 덕분에 늘어난 여가시간에 나는 끌려들듯이 유튜브의 영상들을 감상했고, 그 안에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방송사 기획 특집이나 역사물, 그리고 전문가의 강연 등이 공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고미숙,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찾아갈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그녀는 잘도 전진하고 있었다.
뜻한 바가 워낙 굳고 단단했다.
한국 사회, 특히 학계, 교육계, 문화 및 방송계를 통틀어 이처럼 심지 강한 여성 리더가 활약하고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축복이다.
어제까지도 여자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으면 큰일 날 것처럼 여기던 대한민국이었다.그런데, 오늘 그녀의 목소리는 바위라도 뚫을 것 같다.
누가 그녀의 전진을 막을 것인가.
나는 그 목소리가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경제 지상주의 속에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사회의, 인간의 의식들이 팍, 팍 터트려지기를, 시원하게 터널을 뚫고, 신시대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내길, 진심 바란다.
아니, 이미 처음 수유너머의 소식을 듣던 그때, 나 역시도 막힘을 뚫자고 개인적으로 있는 힘껏 모색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세상에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게 반가웠던 셈.
그래서 그녀를 내 안에 들인 것이다. ㅡ당시 나도 40대 혹은 50대, 10대 소녀의 감상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존재.
스마트폰 속 그녀의 강연.
하나, 네 마음에 고전을 들여라.
하나, 실리를 떠나 고전을 공부하라, 마치 수행하듯이. ㅡ공부를 말하면서 그녀는, 과거 한자문화권에서의 고전 공부는 인격수양이기도 했다는 점, 심신 건강을 위해서 고전을 낭독하는 습관을 강조한다.
하나, 글을 쓰라. ㅡ이 주장은, 여러 글쓰기를 권장하는 글이나 말과 그 차원이 다르다. 그녀가 문화계의 리더로서 특히 (대학생) 청년들에게 반복하여 강조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 문화계에 새 조류를 형성해낼 것이라 예견된다.
이 세 가지는, 오늘 오전에 들은 것이다. 고전을 공부하여서 정말 행복하다는 그녀의 진술을 들으면서, 아침을 먹고 그릇을 씻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5,60에 혼자이면 공부하기에 더더욱 좋은 조건이라고 격려하는 그녀의 유머에 나 저절로 빵, 터지며 커피 물을 끓였지만, 볼펜을 찾아서 귀에 담긴 말들을 수첩에 메모했다.
아침부터 그녀의 영상강의를 들은 흥분이 남아 있어서였지 싶다, 사실은 오늘 나, 오늘따라 나, 공부 쪽으로 조금의 행운을 기대했었다.
충무로역 '스타의 길'과 나의 언니
조카를 만나러 충무로로 향하면서, 내게 가느다란 실 같은 인연의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몸을 담은 '감이당'을 가 볼 수 있으려나, 감이당이 충무로 근처인 모양이던데... 이런 팬심같은 소망을품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을 쪼개어 이모를 만나러 나온 조카에게, 감이당이란 곳을 찾자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그리고 그곳은 아무 때나 개방하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조카를 끌어들일 수 없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고미숙이란 인물의 활동과 주장에 대한 동의이자 관심이고 응원이 넘친다지만, 나는 실제로 그곳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설혹 우연히 마주친다고 하여, 뭐라고 말할 것인가. 나 또한 당신과 같은 세대입니다,라고? 의미 없다. 혹은, 나는 신문 기사에서 당신이 수유+너머를 만든 것을 보고 한편 반갑고 한편 아쉬웠습니다.ㅡ사실이라고는 하나, 이런 말이 얼마나 엉뚱할까. 거기다가,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왜 반갑고도 아쉬웠는가,라고 물어오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이유를 풀어 설명할 수 있는가. 아마 너무 지루하거나 지나치게부조리하거나... 그러니까,'감이당행'은 다음으로...
조카는 오후 근무를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며, 쇼핑백을 건네고 갔다.
나 보고는 남산 둘레길을 따라 회현역 쪽으로 빠져보라 권하면서.
회현역으로 빠지는 오솔길이 나오는 곳 ㅡ남산
오솔길 입구에 회현역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번화한 도심지, 산과 숲, 나무계단, 오래된 동네로 이어지는 회현역이 숨겨둔 멋진 등줄기... 조카 덕분에 숨겨진 보물길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오솔길 나무 계단을 달려가는 고양이 한 마리, 반가움에, 거기 서! ㅡ그랬더니 정말 달음질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나를 불렀어요? 하며.
산밑 주택가 골목길에서는 머리 위로 흰 솜 목화꽃 두 송이를 보았다. 그 집주인이 2층 화단에 심어 두고 여름내 길렀을 것이다.
커피도 있네!
집에 도착한 후, 쇼핑백을 풀며 조카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날리니, 바로 답장.
이모, 커피 마시면서 글 많이 쓰세요.
(*내 기억의 주관성 탓인지 모르지만, 단 한 번도,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적극적인 응원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조카의 그 한 마디가 날 감동시키고...)
어제의 커피 선물에 자극받은 그다음 날, 깨어나자마자, 네이버를 열고 내 동네 '수유'에 대해 물어본다.
'물이 넘치다'에서 수유(水渝)란 지명이 생겼을 것이라고. 어느 전문가의 소상한 해설. 하긴, 동네 이쪽 저쪽으로 우이천이 이어지는 지형, 그것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일 것이고, 비가 오면 사람 눈에 넘쳐날 것이니, 지금보다 수량이 더 풍부했을 옛날엔 더욱 그랬을 것이니...맞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전화가 오고, 면목동의 하나, 종암동의 하나, 수유리의 나, 이렇게 셋이서 불시에 가을 소풍을 떠나게 되었다.
의정부 장암역 근처 쌍암사 입구, 그야말로 '수유 너머'로.
자전거,나무 벽,그리고 그 '너머'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로에서 수락산 입구로 이어지는 평지나 낮은 언덕들을 끼고 별장 같은 레스토랑이 여러 개 있다고. 그 쌍암사 입구라는 정류장에서 하차한 우리는,
"참나무 언덕 "을 영어 이름으로 한 카페에서 서양식 점심을 나누어 먹고, 언덕 위 나무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바람에 나뭇가지며 잎새들이 흔들리는 걸 보며, 지인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데, 숲의 풍경은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그곳은 오래 익숙했던 장소처럼, 숲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그렇게 한참을 느릿한 말의 흐름을 이어가던 세 여자. 따져보니 띄엄띄엄 터울이 지는 50대들.
가족에 매어사는 아줌마 셋, 그 50대 셋이 모여 평화와 고요를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번도 그 가능성을 상상한 적 없는 우리 각자가, 무엇 하나 모난 데 없는 둥그럼한 그런 반나절의 그야말로 온유하다할 소요를한다.
가을을 타고 유영한 듯한 수유 너머.
다시 수유리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생각이 닿는 바, 오늘 간 곳은, 나 어렸을 적 뒷동산과 닮은 곳이었다. 비탈길이며 도토리나무며, 연갈색으로 마른 낙엽이 수북한 산, 그리고 억새풀...
소녀들이 동산에 오른다.
P.S:
"이모, 감이당 위치가 어딘가 지도를 찾아봤어. 정말, 충무로에서 멀지 않네. 12월쯤 새 강의가 있는 모양이야. 이모 신청할래? 사실, 교통도 나쁘지 않아. 이모집서 전철 한번만 타면 와."
"가느다란 " 실을 좀더 굵게 꼬아주고자 열심히 전하는 조카의 목소리, 이 문장을 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