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탈 때서야, 앗! 사람들 출근시간에 겹쳤구나! 10분쯤 늦게 나올 것을, 하고 후회했지만, 다행히 내가 탄 버스는 한두 정류장 뒤에 자리가 많이 났다.
서울대병원을 지나며ㅡ차창밖 풍경
차창밖으로 나뭇잎 색들에 눈길이 간다.
바로 5일 전,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가, 서울 거리의 가을 단풍에 반가웠던 기억이 있어서.
삼선교 지나 혜화동, 성균관대 앞, 그쯤에서 자꾸 눈가가 밝아지더니, 창경궁 앞에선 맞은편 서울대 병원 담장 안팎으로 아예 노란 길.
가을바람 속 바쁘게 출근하는 걸음들 ㅡ연지공원 앞
오메, 단풍 들겄네...
이런 시구처럼, 아무 생각 없는 탄성은 나이와 상관없다. 오히려, 출근길 젊은이들은 어딘지 어른스럽게 걸음을 재촉할 뿐이니.
흰 머리칼의 나만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기회를 놓칠세라 단풍을 연신 찍고 있다.
그런데, 목적지 가까이 사거리께는 높은 빌딩이 많아 햇빛이 많이 부족했던 탓인가. 플라타너스 잎들이 여태 푸른색으로, 여름옷차림으로 살짝 추워하는 사내아이들처럼 죽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그 추워 보이는 나무 빛깔이 방금 전까지 보았던 단풍 든 거리, 그에취해 둥둥 뜬 내 마음을 금세도 가라앉힌다.
오늘이 10월 4일밖에 아닌데, 뭐.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단풍 들라고?
그래도 조급한 건, 내가 한눈을 판 사이 단풍도 낙엽도 놓치고 마침내는 겨울 빈 가지만 보게 될까 봐서이다. 센 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들이 나를 걱정시키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절감을 너무 앞지를 필요는 없다고 애써 달래며 걷는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사거리 신호등 가까이 유독 저 혼자 밝디 밝게 서 있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역시...
철 지난 녹음을 지나 만나게 되는 그 하나가 반갑다. 마치 저만치 날 기다리고 서 있는 친구의 모습처럼.
저 은행나무를 찍자.
가방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집는다.
버스 안에서 유리창에 카메라를 붙이다시피 하며 찍은 것, 방금 버스에서 내려 보이는 대로 찍은 것, ㅡ그것들 하나하나가 가을날의 풍경임에는틀림없지만, 나름 열심히 담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추억의 사진으로까지는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던 참이어서더욱더 은행나무가 찍고 싶었다.
네가 오늘의 포커스로구나!
나는, 나무 아래 멈춰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제대로의 피사체를 발견한 사진사처럼 나무에 대고 연신 찍었다. 영감을 받은 예술가처럼 꽤나 열중해서 말이다.
묘사를 해 보자면, 오전 9시 반 무렵의 아침해가 비치는 거리이다. 그날 오전은, 전날 밤엔가 필리핀인가에 태풍이 지나갈 때, 태풍의 치맛자락이 서울 하늘도 스쳤던지, 잿빛 길바닥에 아롱진 해 그림자도 오소소 해 보이는 그런 날씨였다. 그런 아침 거리에서, 내가 고개를 들어 은행나무 꼭대기 쪽을향해,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대는 것이다. 눈 안으로, 렌즈를 거친 화면이 들온다. 나뭇잎들 위로 햇빛이 있어, 밝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엷디 엷은 잎 그림자들이 서로의 손을 포개고 있는 것까지 비치고 있다. 그러면서들저들끼리 노랑, 노랑 하고 작게 소리치고 있는 듯, 내 머리 위 구름 덩이 같은 한 뭉떵이의 노랑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일인가...
나 비록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사진 촬영에 특별한 취미를 기른 바도 아니지만, 그 자리에선 도저히 한 컷만으로 그칠 수가 없었던것이다.
아아, 그리고 나뭇가지...
첫 번째는 단풍이 고운 것만 보았다.
그런데, 두 번째 컷부터였다. 노란색의 퍼짐 말고도, 나무둥치에서 올라간 중심 기둥이며, 나뭇잎들에 숨었다 나왔다 하는 잔 가지들의 뻗어남이 보였다. 그 때문에 각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어, 팔을 움직이며, 미세하지만 다른각도를 만들어 한 나무를 가지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맞아, 저거야.
내가 만족했을 때, 각도 조절의 핵심은 단풍 물속으로 쭈욱 뻗어 난 짙고 굵은 중심 가지.
그림물감으로 아름드리나무를 색칠할 때, 한 그루 나무의 나뭇가지가 푸른 잎들 속으로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서 있다는 걸 배웠다.
잎 달린 나무는 원래 그런 거였는데, 원래 그런 거라 따로 거기까지 자세히 눈여겨본 적 없었던 나였는지... 그날, 혼자 화실에서 수채화 물감으로 나무의 푸른 덩이를 칠하고 난 다음 차례로 나뭇가지에 붓질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연필로 스케치를 할 때까지도, 아니 나무 위로 초록물을 입힐 때까지도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다가, 초록 위로 커피색 가지를 드러내 주면서, 여름날 활엽수의 나뭇가지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나무가 사람들에게 기쁨과 풍요를 느끼게 하는 둥그럼한 부피감은 이 묵묵히 뻗어가는 나뭇가지들의 힘에 의해서구나, 하고 알게 되었던 것이다.
엷은 가을 아침 햇살ㅡ이화동 대학로 사거리
그때 어렴풋이 느낀 걸, 저 은행나무가 지금 깨우쳐 주는구나.
그때란, 2016년 봄인가 가을인가, 벌써 5년 전 일이다.
항조우에 살고 있을 때, 상가아파트 아래층에 화실이 생기고, 첫 달은 수강료를 할인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토요일 저녁 한두 시간이라니, 해 볼 만했다.
그래서 두 달 배웠을 것이다.
8주 사이에 그린 것은,
고호 정물화 모사 두 점, 유화.
공작새 한 점, 수채화.
물 위에 뜬 풀잎들 한 점, 수채화
나무 한 그루, 수채화 한 점ㅡ이것이 마지막 그림이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유화가 맞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고호의 화집을 자주 보아서인지 그림을 그리노라면 저절로 열중하게 되고, 작업시간이 끝날 때면 좀 더 그릴 수 있는데, 아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수채화 그리기는 내키지 않았다. (* 나는 여학교 때 수채화를 그리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의견을 물어왔을 때, 수채화는 어쩐지 그리기 싫다고 의견을 말했는데, 강사는 달리 준비한 게 없었던지 내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는 그 이후 3 주인가를 연속 수채화 물감을 재료로 내놓았다. (*그곳은 개인 준비물이 필요 없는 화실이었다.) 강사가 그런 것은, 순전히 내 추측인데, 아마도 두 번째 달에 주말반 성인 회원 중 나 하나만 남아서였기 때문 같다. 나 하나를 제외하면, 그녀에겐 어린이 주말반만 남은 셈인데, 그 어린이반이 마침 물감을 사용하는 기간이었으니, 내가 그렇게 짐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수업료가 살짝 부담이었다. 비싸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취미 한 가지를 익히려고 시간 들이는 것도 큰일인데, 돈까지 써야 한다면, 보통의 생활인은 한번 더 생각해보기 마련인데, 화실의 수업료 할인은 첫 달에 회원을 끌기 위한 임시 방책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나도 열흘 정도 속으로 더 할까 말까를 저울질하다가 연장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화실의 위치가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의 아래층이니 비도 맞을 필요 없고, 외출 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편리를 추구하는 내게 가장 매력 조건이었다. 이렇게 편리한 조건을 놓치면 더 손해 같아서, 혼자 남은 것이다.
그렇긴 하나, 아니 그런 저울질이 있었기에, 화실의 강사가 내 결정을 가상히 여기고 보다 내게 알맞은 그림 수업을 고안해 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굳이 싫다는 수채화 그리기를 시키니... 그런 상황에서 보자면 한 달만에 수업료는 몇 배로 올랐는데, 그녀는 수강생 본인이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을 굳이 시키고 있는 강사인 셈이었다. 그러니, 내가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8 주째 를 끝으로, 그 화실에 발걸음을 끊었다.
체!ㅡ싫은 것을 끝내며 돌아설 때의 마침표.
은행나무 아래 서서, 화실에서 그린 그림을 생각해내는 중... 이제 와 떠오르는 바이지만, 그렇게 내키지 않았던 수채화였는데, 마지막 주의 수업에서, 나뭇잎들사이로 안 보이다 보이다 하는 나뭇가지의 선이 새삼 에 신기하게 느껴졌던 기분이손에 잡히는 것처럼 만져졌다.
신기했던 이유는 우선 나뭇가지는 늘 Y자 형태로 가지를 쳐 나간다는 것. 그리고 내가 꺼리는 고동색인데 조금도 밉지 않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그날의 그리기를 통해, 고동색 자체가 던지는 묘미를 제대로 느꼈던 것이다.
보통 어린이가, 나무를 그리려면 고동색 크레용을 집어 든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그림에 고동색을 쓰고 싶지 않아 졌다. 내 단순한 생각으론, 각각의 색을 입은 크레용 중에 유독 고동색만 이쁘지 않은 것이자. 고동색에서는 어떤 미감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 하에서 만큼은 고동색을 될수록 피하고 싶었다. 흰 도화지에 고동색 크레용으로 쫘악하고 한 줄 긋고 나면, 아휴, 미워라. 이래 갖고 이쁜 그림이 나올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크레용으로 그리기를 할 때도 그랬다. 물가에 늘어선 나무들을 중심으로 풍경화를 그리는데, 고동색을 안 쓸 수가 없어서, 그 위로 노랑, 혹은 하양을 박박 덧칠하느라 시간을 엄청 들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분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닌 중, 고등학교가 입시교육 일변도여서 미술 수업이 많이 생략된 탓도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취미교실을 찾지 않으면, 특별히 색을 사용할 기회가 없으니, 주니어적 편견이 지속되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동색을 싫어하는 감정 하나가 가슴에 생선가시처럼 박혀 그대로 변함없이 내 안에 꽂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그날 항조우의 화실에 홀로 앉아, 초록 위로 그 진고동 색 물감을 가지고 나무둥치며 나뭇가지를 색칠을 시작해야 하는 나라는사람은, 그 가시가 박힌 자리로 뭔가가 닿으면서, 오래 잊고 지났던 가시에 작은 통증을 느끼듯이, 스스로도 모를 저항감을 억눌러야 했다.
초록물을 이 만큼이나 이쁘게 칠한 위로, 어떻게 진갈색을 묻혀?
혼합된 물감색은, 밀크커피색에서도 먼, 그야말로 아메리카노 커피색처럼 어두운 흑갈색.
묵은 저항감으로 그렇게 어둡고 무거운 진고동 을 바라보자니,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나는 햄릿처럼 망설일 수밖에. 옆방에서 잡무를 보고 있던 강사가 내 우유부단한 붓질을 발견한다.
붓으로, 이렇게 이렇게...
시범을 따라 몇 개의 잔 가지를 더 그리고 나니, 초록 잎뿐이던 나무보다 훨씬 나무답다. 튼실하다. 팽창감이 넘친다.
내 얼굴만 하게 나무 하나를 완성한 후에, 내가 그은 진고동 색으로 촘촘하게 뻗어 난 가지들을 다시 본다.그러자, 그림 속 나무 한 그루의 풍성함과 충실함이 바로 이 진고동의 선들로 하여 지탱되고 있음이한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전혀 뜻밖의, 따로구하지 않았던 터득이었다.
하나도 이쁜 구석이 없는 뭉툭한 나뭇가지로 하여, 도화지 속 나무 한 그루는 안정과 부피를 얻고 보다 실제적인 생명으로보여진다는 일점(一点).
그때그린 나무, ㅡ푸른 나무, 무성한 가지.내가 안 보는 사이 계속 자라서 무한히 뻗어갈 것 같은 나뭇가지들이 상상되었지. 그날 나는 그림을 통해 나무를 안 것 같았어.
그런데, 그때의 '앎'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한 번으론 안심이 안 되어 내 뒤를 쫓아왔다는 듯이,영영잊고 지내면 안 된다는 듯이, 5 년의 시간을 성큼 건너뛰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단풍 든 은행나무 아래 서 있는 나에게,
이제 알겠지? 바로 그거야.
이러면서 내 눈을 빤히 바라보고있다.
알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들 출근을 재촉하는 인파와 상관없이,
아침의 가을 햇살로 밝아진 나무 위 나뭇가지들로 하여퍼져 난 노랑의 공간, 그 중심에 눈을 둔 채 한참을 서 있었던 나의 사거리. 나무둥치가 굳건하게 솟아올라 그 위로 황금빛 커다란 등불이 켜져 있던 그 사거리.
그 아침의 사진 한 장, 자꾸 보는 중.
두께가 살짝 깎인 듯한 가을 아침해 때문인가, 은행나무 둥치의 색은 아예 검정 색이다. 그런데도 그 솟은 자태가 힘차기 그지없는 게, 나 같은 이쁜 색 집착쟁이도 더는 말 못 하게 하는, ‘절대미’(絕對美)의 포스라고나 할지...
(* 앞 문단까지 써서 마친 뒤 하루쯤 시간차를 두고...)
은행나무 사진 한 장 가지고, 뭘 그리 많은 서술이 필요해?ㅡ내가 내게 하는 항의의 소리.
쓰다 보니 자꾸 길어지네...라고 핑계를 대기도 논리가 궁해, 독서나 하며 그냥 두었다.
그러다가 지금 읽는 책의 말미에서,
'공원은 세 번의 의미, 어릴 때 한 번, 연애할 때 한 번, 부모로서 (아이를 데리고) 한 번'이라는 속담을 읽고, 아아, 내가 은행나무에 대해 주절주절 말을 멈추지 못한 이유가 이거였을까? 엉뚱하지만 어쩐지 정답처럼 여겨진다.
은행나무는 일생에 세 번:
어릴 때 한 번.ㅡ처음으로 도화지 한 장 가득 차게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를 그렸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나무 한 그루가 창조한 노란 세상에 푹 빠져본 날이었다고나 할지. 초등 5학년인가, 전주의 명소, 은행나무가 멋진 '경기전'으로 갔던 가을 사생대회였다.
연애할 때 한 번.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잘 타는 기질을 비집고 들어온 존재 하나, 그 존재에게 내가 가슴 한 자리를 성큼 내어 준 건 순전히 은행나무 때문이었던 지도... 성균관대 옆 명륜당 뜨락에서 그 사람이 한 말,
너는 이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구나,
단풍이 노랗게 든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서였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서 한 번', 이것을, 부모가 되면서 인생의 달고 쓴 맛, 맵고 신 맛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음미한 이후에 한 번이라고 하자.지독하게 쓴 맛, 지겹도록 신 맛을 맛볼 때는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련이 수련이었던지, 어느덧 인생의 묘미(妙味)를 음미할 수 있게 된 나.그 눈에 들오는 은행나무 빛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