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가 메이를 발견하던 그 순간, 메이는 초가집 마당에 서서 자신이 안내하는 여행단에게, 두보는 대나무도 좋아하고 복숭아나무도 좋아했다고 해설해 주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저만치서 자신을 보고 있는 동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깜짝 반가워서 잠시 말을 잊는 메이. ㅡ그 메이의 임시(?) 일터가 바로 두보초당 안이었다.
두보초당은 영화 속 주요 배경지, 그래서 문득문득 두보의 시가 담긴다.
동하와의 만남, 밤길에 문득 빗방울을 느끼며 MAY가 하는 말.
“단비가 때 맞춰 내리네요.”
두보의 시《春夜喜雨춘야희우》(761年)의 ”호우지시절(好雨知时节)”이라는 구절은 영화 제목《호우시절》이자, 영화가 펼치는 낭만의 기조색이 된다.
청두는 두보가 내란의 어지러움을 피해 잠시 깃들었던 도시였다. 청두에 머물렀던 기간은, 입신출세를 못해 가난한 서생으로 이리저리 떠돌아야 했던 두보의 일생을 조람할 때,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왕성한 창작의 시기였다고 전한다.
도봉산의 신록
그래서였을까, 비가 내리는 봄밤, 두보는 어둠 속에 설레였다.
단비 속에 꽃도 나뭇잎도 설레였다.
그로부터 대략 천이삼백 년의 세월을 두고, 한 쌍의 연인도 청두의 봄비 아래서 설레고 있다.
그러나 봄비는 그치고 그들은 영영 헤어지는가. 초당의 푸른 대숲 아래 메이를 남겨 두고 떠나간 동하.
어느날 동하의 편지가 도착한다.
ㅡ여긴 줄곧 비가 와요.
마치 청두에서부터 비가 따라온 것 같아요.
보고 싶어요.ㅡ
편지의 힘일까, 노랑 자전거를 타고 선회하는 메이. 표정이 환하다.
메이는 확신하게 된 것이다.
동하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때를 아는 비, ㅡ이른바 감우(甘雨,단비)가, 두 청춘의 가슴에 서린 불안을 가라앉히고 사랑의 나무를 윤택하게 키워주는 작용을 했던 것이다.
불전(佛典) <법화경>(法华经)에 “약초유(藥草喩)”란 비유가 나온다.
하늘에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니, 그 비가 평등하게 모두를 적셔, 여러 약초와 큰 나무와 작은 나무 등 온갖 식물들의 싹이며 열매가 한결같이 비의 혜택을 받아 싱싱하고 윤택하게 성장한다는 것으로, 법화경의 지혜가 모든 생명에 평등하게 비친다는 비유이다.
지상의 생명을 골고루 적셔주는 비의 비유를 들으면, 나는 자꾸 청두에 살면서 보았던 (어딘지 한국의 봄비와는 다른) ‘청두식의 봄비’가 생각난다.
지나침도 서두름도 없이 그러나 모든 것을 골고루 촉촉하게 만드는 비. 그래서 풀도 나무도, 사람들도 도시의 벽과 지붕들도 저마다의 빛으로 윤이 난다. 이렇게 청두의 봄비는, 모두를 자족하게 하면서 소리없이 내린다. 그것도 아주 자주.
사실은 동하에게는 꿈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그 꿈의 각도에서 메이에게 돌아온다 함은, 동하가 이제 용기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청두에서의 그 며칠이, 동하의 내면 어딘가를 촉촉하게 적셨던 것이리라, 그 단비로 하여 점점 말라가던 꿈이 소생한 것이리라.
흐르는 것들:길 위로 자동차가, 산 위로 흰구름이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내 운명이 정해졌노라고 (*푸르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은 이미 넓혀져 있고 바닥도 단단하다. 여러모로 보아 이 길은 보다 안전할 것이다. 여기서의 ‘안전’이란, 앞으로 의식주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경제력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생활은 안정감을 우선시하고, 우리는 생활의 필요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동하 역시 그러한 고려 하에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잠깐만 직장을 다니려고 했었어. 첫 월급 타면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고 또 승진을 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그만두기 힘들어지더라.”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을 택할 때야말로 용기는 필수이다.
청두의 봄비와 초당의 메이, 그리고 동하, 이 셋의 만남은 적시(제 때)였을까, 동하의 학창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메이는, 동하가 필요로하는 용기를 제때 적절하게 불어넣어 준다.
동하, 용기를 내서 너 자신의 길을 찾아봐. 그리고 그리로 걸어 들어가봐.
두보초당이 배경이기에, 나는 동하가 시인으로서의 길을 택한 것을 두보와 대비시켜 본다.
문인에게 관직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당나라의 시인 두보의 고뇌와 현대사회의 직장인으로서 생활의 안정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러면서 시인을 꿈꾸는 동하의 고민, 이 둘은 전혀 무관할까? 아니, 무관하지만은 않다.
두보초당에 두 번째로 갔던 날이던가, 나는 두보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기념관 안, 벽면에 걸린 두보 생애를 장면별로 묘사한 그림에서였다. 시인의 생활이 너무 빈한하여, 아이 하나를 잃는다. 영양실조로 죽은 것이다. 후세 사람들에게 시성(詩聖)으로까지 추앙받는 위대한 시인 두보이지만, 먹을 게 없어서 죽어간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아버지로서 두보는 통곡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두보에 대한 아지못할,ㅡ 남에게는 더욱 설명할 길 없는 그런 외경심을 품게 된 거 같다.
청두를 떠나왔지만, 영상기록물 속에서 가끔 두보초당을 본다. 이제는 거의 다 잊은 채인 두보를 기념하는 많은 것들.
그러나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한 것은 '시인 두보의 손'이다.
내가 말하는 시인의 손이란, 초당을 참관할 때 누구나 보게 되는 앉아있는 두보의 청동전신상(青銅全身像)을 말한다. 야윈 몸체,ㅡ가난한 방랑자였던 두보의 도상은 비록 상상에 근거해 제작하는 것이지만 하나도 비만한 게 없다고 한다.ㅡ그 중에서도 기다란 시인의 손으로 눈이 갔다. 사람들의 손길에 닳아서 그 손등이 유달리 금빛을 드러내고 환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참배객이 그 손을 쓸고 갔을까..,
나 또한 그 손등을 쓸었었지.
시인의 손을 쓸어볼 때 나는 물어봤어야 했는지 모른다. 무엇이 당신을 견디게 했느냐고.
그러나 그 자리에 서서 간절히 대답을 구했다 해도 어쩌면 답을 들을 수 없었을지도...
설혹 시인이 답을 해준대도 내 어찌 알아들을 수 있으랴.두렵고 무서운 궁핍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지지 않고 계속 시를 써 가는 두보의, 산과 같은 부동(不動)의 마음에 대해서 말이다.
두보의 시 세계는 매우 인간적인데, 가끔씩 온 세상을 가슴에 다 품는 듯한 기개로 넘친다. 변변한 벼슬도 없이 근거지도 없이 가난하게 떠돈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일 정도로.
그렇다고 그가 시만 쓰며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다고 들으면 오산이다. 그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지아비였다. 전란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이고자 했고, 청두에 짐을 푼 것도 그나마 온가족이 안둔할 집과 일자리가 마련되어서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손수 약초를 캐어 팔기까지 하며 생계를 도모했다고 한다.
이런 두보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더하자면, 그는 철저할 정도로 중도(中道) 를 실천한 시인이다. 시인이 자신의 야망에 맞는 크고 그럴듯한 것만 추구하고, 허름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현실에 절망했다면, 혹은 보이는 현상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정신세계을 도야할 생각을 잊었다면, 그렇다면 현실을 고스란히 품은 독특한 두보의 시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짐작하건대, 예술의 고상한 경지에 도달하고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두보의 유연함은, 사실 매 순간 중용의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용기가 필요해.
몇 살 적 일인지 잊었지만, 내 마음이 아주 약해졌던 때, 나는 아침이 무서웠다. 또 다시 하루를 살아나갈 자신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그 당시 실제 생활에 별다른 고민거리가 있었다거나, 악의적인 사람이 나를 괴롭혔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았던 게 탈이었다. 혼자서 자신이 올려놓은 기대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에 생각이 미치자, 그때부터 인생 망했단 기분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것이었다. 그 타격으로 마음이 급속도로 허약해지고 말았다.
허약한 심리상태에서는, 밤에 잠을 자면서 내일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ㅡ 이런 걱정과 근심으로 겁쟁이처럼 잠이 들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고 어쩌다 이런 증세에서 벗어났는지, 지금은 아주 희미하다. 그렇지만 하나,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던 경험은, 내가 힘들 때 오히려 용기의 디딤돌로 쓰인다. 나아가 사람들이 주춤할 때, 등을 살짝 밀어주는 내 친절함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 발 앞으로 가는 게 두려울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한 발 내디디고 또 한 발, 그러면 저절로 용기가 따라와요.
한 발 또 한 발.
한 살 된 아기가 첫 발을 내디딜 때, 모두가 박수를 친다.
그렇지. 잘하네, 한 발 더, 옳지 옳지.
한 살 아기는 그렇게 걸음마를 익히고, 걷는 일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자랄수록 또 다른 시작이 항상 앞에 있고, 경우에 따라선 한 발 내디디면 그대로 벼랑 아래일 것 같은 공포에 질릴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마흔일곱의 나이에 박사논문을 앞두고 그런 공포증에 휩싸였다.
다 포기하고 후퇴하자니, 아들까지 데리고 가진 돈을 다 털어 중국까지 유학 온 도전이 허무하고, 그대로 앞으로 나가자니, 도저히 논문을 쓸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한 발 앞이 낭떠러지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상태에서, 나는 용기를 내서, 나보다 두 살이나 아래인 관련 전공 교수에게, 제발 내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라고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남자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읽자면 어쩐지 연애편지 같았을 내 호소, 다행히 그날의 호소가 정확히 통해, 나는 그분의 격려와 도움으로 공포감에 쓰러지지 않고 졸업 전에 논문 쓰기를 마친다.
"오늘 처음으로 박사논문을 시작했어요. 겨우 400 자 썼어요."
"400 자라니, 대단하군요! 나는 (박사논문)처음 시작하던 날, 단 한 줄밖에 못 썼는데..."
용기를 내게 하는 격려, 용기를 잃지 않게 하는 격려, 격려는 용기의 거름이다. 영양제이다.
그 격려는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
격려의 가장 멋진 출처는 나를 알고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에서겠지만, 나를 직접 격려해주는 사람이 없다 해서 실망할 것은 없다. TV 프로그램에서 보게 된 좋은 내용이 내 용기를 북돋아 줄 수도 있고, 우연히 라디오를 켰는데 귀에 꽂히는 사연 하나가 나를 격려할 수도 있다. 또,
책장 안의 한 문단이, 날짜 지난 신문 기사 하나, 혹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의 한 마디도 격려의 작용으로 내 가슴에 꽂힐 수도있다.
그것이 나에게 직접 해 주는 말이다 아니다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하늘의 태양이 나만을 비추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 빛을 받아 쓰면서 이렇게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받아들임( 캐치)'이다.
예를 들어, 어느 교사가 간단한 쪽지시험을 예고하고, 친절한 마음에 쪽지시험과 똑같은 문제를 가르쳐주고 연습시켜서 10분 뒤에 정식으로 시험을 보아도, 학생들 모두가 100점을 맞는 건 아니다. 물론 그중엔 복습을 열심히 하고도 실수했다거나 순간 생각이 안 나 틀렸다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한 선생님의 말을 다 튕겨낸, 그래서 아무것도 익힌 게 없는 아이이다.
새기면 천하의 양약이 될 격려도, 흘려 넘기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무리 대단한 비결을 1대 1로 알려줘도, 옆에 불러앉히고 본인 귀에만 속삭여줘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것은 시시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처음부터 고집하고 싶었던 것 같은 그런 사람을 많이 본다.
그는 자신의 치우친 기준으로 일체를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마주친 저 사람은 옷차림이 초라하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들은 저 말은, 나란 사람이 아무 노력 없이 우연히 들은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은 비싸거나 화려하거나 만나기 어렵거나, 그런 것만 존중할 수 있다는 좁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좁아진 벽을 깨트리지 않으면, 자신이 행복하게 변할 수 있는 수많은 행운을 모두 흘려보내고도, 최종 결론을, 행운의 기회란 몹시 드물어 자신은 아직껏 만날 수 없었다.로 끝낸다.
오늘의 행운이 반드시 규격 이상의 크고 멋진 것이어야 할까?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에 초대되어 상을 받으면 멋지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손수 만들어 건네주는, '화분 지킴이 '상은 후진 것일까?
그렇다면, 성공한 예능인들이 어린 시절 은사를 찾아서,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라고 감사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작은 감동이라도 받아들여서 그것을 열심히 살리면 자신의 생활이 변한다.
어떤 사람이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후, 일본 사회에 꿈과 비전에 대한 새로운 창안을 퍼뜨리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가마타 히로시.
그는 일반 기업에서 일하던 중 디즈니랜드에 대한 동경심으로 일본 디즈니랜드에 다섯 차례의 재수까지 하며 입사를 한다(1982년). 그런데 배치된 담당이 야간 청소. 비참한 기분에 빠졌을 때, 본사에서 교육을 위해 파견해 준 '청소 구루' 척 보야찬씨가 첫날 보여준 화장실 청소 시범에 완전히 마음을 뺏기게 된다. 청소 하나에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다고! 그날의 감동을 간직하고 계속 성장해간 히로시 씨는 1990년 일본 디즈니랜드의 총괄 관리자로서 모든 스태프를 관리 육성하는 책임을 맡는다. 그리고 7 년 후 독립 컨설팅 회사를 세우고, 이후 디즈니랜드에서 체득한 것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내가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 디즈니랜드 야간 청소부의 감동실화> 가마타 히로시 지음,엘도라도 출판사)
내가 만난 한 여학생은 홍콩영화 <첨밀밀甜蜜蜜>(1997년)에 감동하여, 중어중문학과로 진학하였다. 영화를 계기로 중국어를 전공하게 된 것이다. 그 여성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친구를 사귀고 중국문화에 풍부한 이해를 가지게 되어 행복하다면, 혹은 그와 관련한 직업으로 청장년기를 채우고 있다면, 거기에 대고, 대학 전공이 직업선택 범위를 좌우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중대한 것을 어떻게 영화 한 편으로 결정할 수 있냐고,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것인가?
소소한 흥미, 그것을 통해 안내받는 다음의 길.
이런 진행은 단지 진로를 정하는 청소년이나,직업을 바꾸거나 하면서 인생 변화를 모색하는 4,50대 만에 해당된 것이 아니다.
친구아들의 가게 안
나의 어머니.
"건강은 여전하신가요?"
다른 사람들은 이제 어머니의 건강만 묻는다. 전문직 여성도 아니고 딱이 사업을 일으킨 바도 아니고, 보통 가정의 90대 연령의 노모이니, 건강은 어떤가, 공통적으로 궁금한 내용은 그만큼이 다인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금년 10월 11일 스마트폰을 선물 받았다.
집전화는 사용해 봤어도, (구형 휴대폰을 건너뛰어서) 갑자기 스마트폰이라니!사실은 그게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인지조차 모른다. 어쨌든 손바닥 만한 그것이 흥미롭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용방법을 하나도 모른다.
너무 모르니, 며느리한테도 가르쳐 달라 말하기도 부끄럽다. 아무리 신문물이라 해도 새삼 배우는 입장이 되어 말을 거는 일은 어색하니까...
3일 만에, 막내딸 성화에 못 이겨, 전화받는 법 하나 마스터.
받기만 해도 낫다.그래서 처분만 기다리는 셈으로 방바닥에 놓고 전화벨만 기다린다.
그런데 하루 한 통도 안 울리고 며칠이니 답답하다.
전화 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드디어 며느리한테 배울 수 있었다.휴대폰 생긴 지 딱 20일 만이다.
정말 똑똑하네요!
"아이구, 못 해먹겠다."
귀로 들리는 이 말을 번역하면,
이거, 조금재미있는데!...
조급한 마음에 더듬한 자신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다. 이게 엄마의 본심일 것이다.
처음으로 휴대폰을 가지고,전화를 걸 줄 알게 된 것으로 어머니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것이다.
하루를 승리하였다.
그 한 걸음이 열어준 오솔길을 따라 어머니의 내일은 오늘과 다른 뭔가가 펼쳐질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밤새 마음이 변해서,ㅡ즉 한 발 앞으로 나갈 용기를 잃고, '휴대폰 이까짓 것!'이라고 내동댕이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흐린 날 우이천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시시한 것이라고 내동댕이치지 말자.
이 가을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주던, 옥상 위의 코스모스꽃도, 사실은 볼품없는 씨앗이 잎이 되고 꽃이 된 것이다. 꽃이 피는 걸 보고 싶었던 나는 매일처럼 물을 주었다. 씨앗에서 꽃으로 변하는 그 사이에, 지속하여 물을 주는 일, 이 한 가지밖에 한 일이 없다.
그러고 보면, '지속'은 믿음이고 낙관주의다. 용기의 실천이고 기적의 원천이다.
세상에 우직한 사람으로 우공이란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우공이 사는 집앞으로 산이 버티고 있어, 산길을 빙빙 돌아 나가야만 사람들과 왕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산을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작업에 동원될 인원은 자식과 손주. 그 외 아무 원조도 기대할 수 없었다. 조금씩이나마 산을 파서 그 흙을 옮긴다. 이 단순한 원칙하에 작업이 시작되자, 소문을 들은 사람은 모두,세상에! 그 산덩이가 얼마나 큰데, 하면서 우공을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금씩 옮겨도 옮기는 것이다.
진행이 느리다는 건 아무 문제 아니다. 도중에 내가 죽더라도 아들딸이, 아들딸이 죽으면 손자손녀가 이어서 계속한다.
우공이 흔들림이 없으니 산신이 나중엔 겁을 냈다고...신화(神话)의 대단원은 신화적으로 끝나지만, 어쨌든 산을 옮기고야 만 우공.
이것이 중국의 유명한 '우공이산'(愚公移山) 이야기다.
이제 산은 다이너마이트가 뚫고...우공에 비해 현실적인 우리들. 그래도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우리들 인생.
그러니 먼저 자신을 격려하자.
숨을 후ㅡ내쉬고 출발지점에 서자. 자신의 직업에서도 좋고, 혹은 가정생활, 아니 소소한 자기만의 도전이라도 좋으니, 할 만하거나, 하고 싶었던 거라면,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