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전과 후

엄재형 개인전"OSCE"

by 새벽종 종Mu

충무로역에서 대한극장으로 빠져나오는 길.

현재 시간 11시 25분.

약속시간은 11시 반이고 대한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나는 딱 맞게 도착할 것이다.

푸른 산이 자랑인 강북구

그런데, "참새 방앗간"? 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나를 유혹하는 시각적 신호들.ㅡ지하철역 건물 안에 과거 영화의 거리로서 특별히 마련해 놓은 듯한 영상센터.


그래도 자료열람실 하나는 그냥 넘겼다. 예상하건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출입자 등록을 위해 열 체크를 할 것이다. 코로나 19로 질병 방역체계가 잡히고부터 대부분의 시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입장하게 되어 있다. 이 절차를 아는 이상, 자료열람실에 대체 무엇이 있고 어떻게 이용하는지 아무리 궁금해도,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 나는 다짐하듯 앞을 보고 걸었다.


이 속도로 계속 걸어가면 돼. 이런 확신이 드는 찰나에 시야에 들오는 화면감, 약 1,2초? 멈칫했다. 그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곳이 말하자면 충무로역 '오! 재미동 갤러리'였다.

우연히 들른 전시장은 짙푸른 여름바다 ㅡ엄재형 개인전

통로 벽 쪽으로 문도 따로 여닫을 필요 없이 툭 트인 그곳이 바로 전시장인 것이다. 그리 넓다 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벽에는 이국의 바다 사진 나중에 생각하니 그건 사진이 아닌 미술 작품들ㅡ 이 큼직큼직 걸려 있었다.

저곳은 여름 나라구나.(*나중이지만 팸플릿에서 Hvala라는 제목도 발견했다.)


통로엔 행인이 지나가고 전시 공간엔 나밖에 없다. 나는 안심하고 작품 속 바다로 가까이 다가선다. 아니 실은 그렇게 작품 가까이로 곁눈질하며 걸을 심산인 그때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담당자인지 벽 쪽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게 보였던 것이다. 작다란 전시장이지만 한쪽으로 사무실이 있고, 거기 앉아 있다가 관객이 들어오면 설명이나 안내를 해 주려고 나오는 모양... 사실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주욱 훑는다는 식으로 그대로 출구 쪽으로 걸어갈 심산이었기에, 여(女) 담당자가 나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고 있는 기척을 느꼈을 때, 아차! 싶었다. 그녀는 나오고 나는 나가고, 이러면 순간 얼마나 각박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내 걱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벌써 내 옆에 와 있다.

"엄재형 선생님의 첫 개인전이에요."

"첫 개인전이라고요?"

엄재형이란 작가가 청년인지 중년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첫 개인전이라니, 어쩐지 매우 소중한 기분. 그런 의미에서 그냥 나가 버리실례일 것 같은 미안함, 그러나 더 급한 일은 약속에 늦고 싶지 않다. 나는 내심 갈등하며 성의를 보이기 위해, 방명록에 사인을 한다. 그리고 '안내자'한테 약속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라고 어물 버물 말하고 돌아서는데, 팸플릿을 드릴까요? 얼떨결에 소책자를 받아 든 데까지 약 3,4분 정도? 소비했다. 작은 핸드백에 모처럼 빈 손이 좋은 날, 어정쩡하게 받아 든 질 좋은 종이의 딱딱한 느낌,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선 곳이 누군가의 첫 전시회였기에 귀찮아할 수가 없었다.

핸드백에 접어 넣은 팸플릿 표지ㅡ엄재형 개인전

그래도 바다의 푸른색, 웃통을 벗고 해수욕하는 청년들이 진짜 여름 같았어. 사진 찍으셔도 되고요, 이런 안내에 얼른 찍고 싶은 작품이 있었는데... 나오는 쪽의 벽에 보이는 해변의 나무 두 그루. 그러나, 만남을 마치고 귀가할 때 천천히 찍지 뭐, 휴대폰 꺼내고 찍고 그러다 또 2,3분 지나잖아 잘했어. 총.총.총.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출구로 나온다.


그런데 OSCE는 뭘까? 처음엔 바다가 보여서, OCEAN이라 여겼는데, 그것도 아니고...

전시장에 쓰여 있던 영어 철자, 팸플릿 표지에도 박혀 있다. 지상의 벤치에 앉으니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소책자,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자세히 펼쳐 읽을 수도 있었으련만, 나는 오히려 팸플릿을 버릴까? 하고 혼자 묻는다. 쓰레기통도 안 보이는데, 좀 있다 적당한 곳에서 버려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보류. 문득 빵 굽는 향이 코 끝에 닿고, 하늘은 약간 흐린 편.


돌아오는 길, 당연히 충무로역으로 해서

귀가하려니 여겼는데, 걷다 보니 회현역.

남산에서 회현역으로 나가는 나무계단

전시장에 다시 들르기엔, 그날따라 많이 걸어서 살짝 지친 몸.

아쉬운 마음에 팸플릿을 꺼내 읽기로 했다. (*생각을 바꿔 버리지 않고 핸드백 안에 반으로 접어 넣었던 아까의 그것)


전시회를 연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작가의 문장이 있다.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놓이는 일은 다른 경험을 가져온다. 그것은 늘 일상과는 반대로 이행한다. 편안함에서 불안함으로, 속함에서 벗어남으로, 이렇게 일정한 삶의 규칙에서 탈피가 가능케 되는 이러한 체험들, 이것을 통해 나는 환경과 사람, 그 둘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방법론적으로 직접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 작업으로 Collage 하듯 재배치하여 인공적인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인용문 안의 몇몇 글자는 본인이 이해한 문맥으로 바꾸어 적어두기로 한다. )


얼핏 보고 내가 사진전이라고 여겼던 이유가 이래서였구나,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전시장 벽에 있던 바다 그림 하나하나는, 작가 자신 이국에서의 여름을 통해 변화한 자신의 내면을 그만큼 사유하고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다시 표지의 OSCE란 글자 도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제목 글자 사이로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문장을 이루고 있다.

One summer can change everything: After Summer


나는 왜 이 문장이, 한 번뿐인 여름, ㅡ 매 순간은 오직 한 번뿐이라고 읽히나.

가을과 남산

아마도 남산을 걸었던 탓이다.

남산 산모롱이를 돌며 나는 언니, 그날 미안, 이라고 사과를 했다.


그날은 1988년에서 1991년 사이 초여름이었다.


그날, 나는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모님을 모시고 남산타워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 내 일정을 듣고, 작은 언니가 같이 가자고 따라나섰다. 세네 살쯤의 연년생 조카 둘을 데리고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남산 꼭대기에서 그만 내가,

언니, 애들 데리고 먼저 내려가 주라.

짜증보다도 더 심한 명령을 했다. 이유라면, 조카들이 연달아 칭얼대고, 엄마로서 언니가 계속 쩔쩔매는 게 보기 싫었던 때문이다.

남산 둘레길에서 케이블카를 올려다 보다

그리고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한 장면은, 잘 걷지도 않고 언니에게 매달린 조카 둘과 난감한 입장에서 화낼 줄 모르고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언니, 거기에 냉정한 소리를 하는 젊은 아가씨인 동생, 나.

날씨는 더웠고 나는 병약했고, 부모님은 늙으셨다. 그래서 그때는 그래도 된다고 여겼다. 미혼인 내 생각에, 적어도 엄마라면 애들이 바깥에서 엄마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언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잘 다룰 자신도 없으면서 어떻게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할 생각까지 했는지 말이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어봐도, 나의 아이는 말을 잘 들었던 면도 있어서, 한동안은 그날의 일에 대해서 언니에게 심했다고 반성할 맘 같은 거 없었다. 아니, 아예 그런 일이 있었던 자체를 잊고 살았을 것이다.


혼자서 참 미안한 기분이 든 것은 그보다도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해가 몇 년도였는지,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참 지난 뒤였다.


중국 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는데, 펼쳐진 한국어 교재에 남산타워가 그려진 사진이 보였다. 교재 안의 사진일 뿐인데, 문득 죽은 언니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어서, 나는 언니에게 어찌 그리 모질었을까. 남산 타워 아래에서 내가 했던 언행에 자책감이 들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그날 조카들을 내가라도 업어주면 되었을걸, 맛있는 거라도 사 주면 더 좋았을 것을.


이제, 언니는 이 세상에 없고, 친엄마 없이 청소년기를 견뎠을 조카들은 청년이 되도록 거의 소식이 없다. 엄마 대신 이모라고도 하는데, 조카들에게 나는 있으나마나.


남산을 걸으며 되뇌인 나의 1 분짜리 고해성사.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지금뿐.

'다음'이란 없다고.


저는 남산 가는 길에, 당신의 오늘 첫 전시회에 무심코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약속시간으로 마음이 급해서,

나중에 좀 더 천천히 보자며, 곧바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들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딱 한 번뿐인 것을, '다음'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작가에게,

첫 전시회에 발을 디디고도, 작품들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맘을 담아, 여기 메시지를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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