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장을 기다립니다

모녀,2천년의 균열

by 새벽종 종Mu

일요일은 느긋하고 싶다.

일요일에 깨어날 때는 아침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좀 느긋해도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조금 기쁘던 침대 위, 카.톡. 하고 메시지 알림이 뜬 휴대폰.

엄마를 보러 가야 할 것 같다.

엄마 꺼 간식을 사려고 일부러 한 정류장 앞에서 내렸다.

엄마를 보러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 길, 작은 바람에도 낙엽이 지천이다.

노란 낙엽들이 인도 한쪽으로 쓸려 주욱 이어진 풍경 위로 햇살도 좋고, 다리에 힘이 없어진 엄마는 이제 이런 것도 못 보겠지.

일부러 한 컷 찍는다. 궁금하다 하면 보여드려야지.

거리를 밝게 수놓은 은행잎들

그러나, 엄마 집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하마터면 사고칠 뻔.

내게 문을 열어주고 (일어서거나 걷기만 하면 현기증을 느끼는 터라) 엄마는 몸을 지탱하려고 벽을 짚는다는 것이, 문이 달린 문틀, 즉 나를 맞이하려고 열려져서 빈 공간인 그 안쪽을 짚었던 것인데, 그런 사정을 알 리 만무한 나는 현관에 들어서면서 자동적으로 출입문을 잡아당긴 것이다.

아야야야.


손가락 하나가 철문에 눌려지다 말았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나 때문에 엄마 죽을 뻔했네.

손가락 하나 때문에 죽지 않아.

엄마는 내가 미안할까 봐 이내 괜찮다고 하며, 점심 식탁을 준비했다.


두 사람이 먹은 그릇은 내가 설거지.

다 마치고 엄마 방에 들어가니, 떡 접시, 과일 접시, 그리고 내가 가져가길 바라고 내놓은 새우젓 통ㅡ엄마가 양념을 섞어 먹으려 했는데 새우젓 본바탕이 짜서, 도저히 반찬으로 할 수 없다. 가져가 음식 간이나 맞추면 되겠다. 긴 설명이 붙여진다. 그 옆에는 아까 주방에서, 이거 간장에 고추 절인 건데 먹을래? 하고 물었던 고추가 작은 통에 담겨 있고, 그것들 가운데 백 하나는 올케가 나 주라고 넣어둔 누룽지 말린 봉지와 고구마 한 봉지가 들어 있다고...

앉자마자 가져갈 짐이 한 보따리가 된 나.

양 손에 무겁게 가방을 들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약간은 귀찮지만, 엄마는 딸이 온다고 올케는 시누이가 다녀간다고 아침부터 마음을 썼을 것이고, 그 정으로 모아진 먹을거리들이라고 생각하면, 소중하게 받아 가방에 담을 수밖에.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가져온 가방을 푼다.

제일 먼저, 양손 밴드. 엄마 이걸로 팔 운동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해요.

어깨가 아파서 팔을 올리지도 못 하는데 무슨?

그래도 조금씩 해야 해요.

엄마가 어깨도 아프다는 걸 지난 달에사 올케한테 들었다. 그것도 곰탕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데, 국물을 한두 수저 넣은 밥공기를 한 손에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수저를 들고, 식탁에 바투 앉지를 않고 그렇게 어설픈 자세이니 음식을 흘리게 되고... 내가 이해할 수 없어하는 걸 보고서야, 올케가 말해줬다. 어머니가 어깨를 못 올려요. 연골이 다 닳았대요. 치료할 방법은 수술밖에 없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주사만 맞았어요.

오십견이 걸려본 적 있는 나는, 어깨를 올리지 못하는 고통이 어떠할지 십분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초록 밴드를 엄마 손에 쥐어주며 팔 운동이 필요하고 다리 운동이 필요하다고 반복한다.

실컷 운동의 필요성을 말하고 나서, 나머지 가방 안의 것들을 늘어놓았다. 야채죽, 소고기죽, 전복죽, 언젠가부터 엄마한테 권해보고 싶었던 인스턴트식품이다. 식욕도 안 나고 귀찮을 때 먹어. 그리고 호빵 한 줄. 밥솥에 하나씩 얹어 넣고 먹어 봐요.

꼭 잡은 손

그리고는 엄마한테 휴대폰을 보자고 한다.

니가 와서 가르쳐주련?

지난주부터 이런 부탁도 할 줄 아는 엄마가 되었다. (이런 변화가 기쁘다.)

언젠가는 사진도 왔더구먼, 어떻게 보는지 내가 뭘 알아야지.

휴대폰이라곤 이번에 처음 가져본 엄마, 이제 겨우 한 달째니, 뭐든 어지럽기만 하리라.

그래도 매일 만날 수 없으니, 뭐라도 알려주고 싶어서, 문자메시지며 사진 찍기며, 카톡 보기.. 맛보기 이상은 될 수 없겠지만 짜르르 보여주고, 휴대폰에 없는 게 없어요.

라고 결론을 내려 준다.

그때 엄마 눈동자엔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

아이고, 몰라.

늘상 버릇처럼 몰라,라고 하는 엄마, 오래 듣다 보니 그 의미는 여러 가지다.

방금 한 말뜻은,

많이 어려워 보이는데 나는 그중 몇 가지나 익히게 될까?

헤아려보는 맘이다.


차차 알게 될 거예요.

인내심 많은 내 어조, 그러나 속으로는 조급하다. 바로 이어서 이 말이 나올 뻔했다.

그러려면, 엄마가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해요. 이 '적극적'이란 낱말 하나에 요즘 내가 엄마에게 하고자 하는 딸로서의 수많은 의견과 충고가 다 담겨 있는 바, 오히려 조심스럽다.


늙어가는 부모

그보다는 덜 늙었다지만 같이 늙어가는 중인 딸로서,


엄마, 정신 차려야 해요. 아차, 하는 사이에 노인요양원에라도 가게 되면 큰일이잖아요.


부모님이 요양원에 입원 중이라던가,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던가, 이런 사정 주위에 너무 흔하다.


그러나, 그게 엄마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방, 그것이 입원실로 변하면, 엄마는 어찌 견딜 것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장롱이며 서랍장이며 수첩이며... 소소한 살림들이 박탈되면... 상상하기만도 끔찍하다.


그러나 내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휘를 골라 달리 조합한다.


어쨌든 며느리가 1분, 아들이 3분, 하루에 이만큼씩만 배워나가도 좋을 텐데요. 부처님께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내 조언엔 아무 대답이 없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지금 엄마에겐 그게 너무 요원한 일이다.

명확히 표현 못하는 엄마의 꿈, ㅡ부처님께조차 남몰래라도 기원드릴 용기도 나지 않을 만큼이나 크고 큰 소망이란 게, 매일처럼 아들과 1분이라도 웃으며 말을 주고받는 일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작'일 이 작은 희망사항이, 93세 노친에게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생활의

'이상'(理想)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안타까운 엄마를 대신해, 나는 엄마의 생(生)에 대고 물어본다.


어깨 연골이 다 닳는지도 모르고 가족을 위해 일할 때 내 엄마도 조금은 알았을까요? 다 알고도 온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아파도 병원비 아까워 더욱 한사코 일만 하였을까요? 당신이 그렇게 뼈골 빠져라 자식 손주를 위해 일해 바쳐도, 그것들이 커서 하루 '24시간 곱하기 60분'의 1도 아까워하며, 나눠주지 않을 그런 날이 다가올 거라는 걸 알고도 말이에요.


속으로 이런저런 의문과 감상을 가지면서, 엄마 휴대폰으로 군산의 이모한테 전화를 걸어준다.

이모, 엄마 옆에 있어요. 엄마랑 통화하세요.


이렇게 목소리라도 들으니 고맙네.

아들도 같이 살고 딸도 와줘서, 언니 좋겠네?

휴대폰이 생기고 그걸로 통화가 되고부터, 고맙네,ㅡ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 나한테만 하는 소린가 여겼는데, 이제 보니 이모한테도 그 소리다.

그건 그렇고, 이모는 첫마디가 왜 이렇지? 엄마가 뭐라 대답할지 약간 궁금했는데,

안 들려. 뭐라는지.


중간에 통역할 것도 없이 말이 끊어진, 이게 다다.

자매의 통화, (청력이 약한) 엄마로서도 (형제자매라곤 언니 하나 남은) 이모로서도, 모처럼 조카가 통역으로 대기한 좋은 기회일 텐데, 그런 것치고는 어째 너무 헐겁고 짧은 대화다.

(*이모는 이모대로 전화로 하는 수다에 아직 서툰 탓일까. 맞벌이하는 두 딸, 직장 다니는 두 아들, 따로 호젓하게 지내는 이모. )


그런데, 엄마는 혼자 있을 때 휴대폰을 들고 문득 전화해 보고 싶은 곳이 있을까, 누구한테일까?


엄마, 어디 전화 걸고 싶은 데 없어요?

없어.


그럴 리가? 즉각 나오는 대답이 별로 믿어지진 않지만, 엄마가 내키지 않아 하니 더 권하지 않기로.


그럼, 외손자를 볼까요?

SNS 화상통화로 아들을 불러본다.

안 본 사이 얼굴이 희어지고 볼 살도 적당히 붙은 아들이 응, 엄마. 하고 나타나 주었다.

외할머니는 이런 식으로 올 들어 두 번째 외국에 있는 외손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쁘다.ㅡ할머니가 너 이쁘대.

잘 있어라.ㅡ할머니께 인사해. 전화 끊게.


나, 이것 좀 써 줘라.

외손자 얼굴을 보고 나니, 뭐라도 기도해 주고 싶어 진 엄마 마음. 부처님께 손자 기원 어떻게 올릴지 문장 하나 써 주면 좋겠다고 주섬주섬 종이를 찾기 시작한다.


가만 보니,

글씨 쓰기 마땅한 빈 종이를 못 찾는 모양이어서, 주방 옆으로 가 봤다. 주방 옆의 책장에 스프링 노트 같은 걸 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데, 내가 계속 스프링 노트라고 여겼던 것들은 펴 들고 보니 조카들 문제집이었다. 그래도 깨끗한 속표지 한 장 찾을 수 있었다.


짙은 하늘색 종이다.

엄마에게 갖다 준다. 그리고는

기도할 때 본다니, 깨끗하면 더 좋겠지 싶어, 다시 집어, 그 파란 종이의 한쪽 가장자리 우툴두툴 한 곳을 가위로 오려내었다.

여기다 써요.

그리고 이제, 커피 좀 마실까 싶어, 아까 종이 찾을 때 커피 믹스가 책장 안에서 보였던 생각이 나서, 전자 포트에 커피물을 올렸다.

이러느라고... 한두 차례 더 주방과 거실을 오갔다.


그리고서야 다시 엄마 옆에 앉아,

엄마, 기원문 누구부터 쓸까? 그리고 볼펜 좀..

이러는데,

됐다.(마음이 바뀌었다는 분명한 신호.)

새 기원문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뭔지 모르지만 엄마 마음이 어느 틈에 토라져버렸다.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그 잠깐 사이에.


어서 가라.

하긴 그 말이 아니었어도 길어야 한 시간쯤 더 있다 일어섰을 나였다.

그렇긴 하나, 엄마가 좀 석연찮다.

말동무 삼아서라도, 휴대폰 공부 삼아서라도, 기원문 정리 때문에라도, 딸을 좀 더 앉혀뒀어야 맞다.


추측하자면, 어느 시점에선가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엄마가 걱정하는 일들에 내가 동의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엄마 건강이라는 말만 강조해서여서도.


아니, 그보다도 이모와의 통화로 인해 며칠 전 일이 근심스럽게 떠오른 탓일 수도 있다. 그때도 이모랑 통화하던 중이었다는데, 이모가 엄마 아들 좀 바꿔보라 해서 엄마가 오빠 방에 가 바꿔주려고 했는데(여기까지는 엄마 스스로 너무나 대견한 진전이었다. 휴대폰이 생기니 지방에 사는 여동생 전화를 직접 받고, 귀가 어두운데 그날따라 이모 말이 잘 들리고, 아들에게 그런 자랑도 하고 싶은 기분 아니었을까) 오빠가 대꾸도 안 하더라는 것이다. ㅡ이모가 휴대폰 너머 지켜보는 상황에서 아들에게 이런 무안하고도 도통 체면이 안 서는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게 너무 기분 나빠서, 그대로 축축한 진액으로 무거운 근심이 되었는데, 그것이 새삼 머릿속에 떠올라서였을 수도...


엄마는 분명, 아까 이모와의 통화로 인해, 며칠 전 새로 움푹 패여진 근심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모와 통화를 끊자마자 내게 그 얘기를 들려주려는데, 웬걸, 얘기를 열심히 듣는 기색이 하나도 없는 딸이다. 그것뿐인가, 당신더러 그딴 거 걱정하지 말고 그저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


내 속을 누가 알아줄까... 어두운 곳에 고립된 기분, 와락 무섭고 여전히 서럽다.

딸이 오면 할 말이 태산이었는데, 애써 열었던 말문을 쾅, 닫는 나의 '어리기만 한' 엄마.


그런데 나는 그 문 닫히는 소리가, 차라리 고맙다.


딸이 되어서, 어째서...?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휴우ㅡ.

한 번에 다 설명이 될는지...


(* 미리 밝히건대,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지는 상황에 조금쯤 조심하고 싶다.)


다만, 나는 30년을 들여, 엄마가 숨긴 물웅덩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 것뿐. 다시 그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은 것뿐.


내가 아가씨였을 때, 세상에 인생의 맛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모르는 채, 심성만 여렸던 나는... 엄마의 한숨소리에 무조건하고 아무런 방비도 없이 엄마에게로 다가가곤 했다.


그러다가, 몇 번을 엄마의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뻔했다. 하마터면 말이다.


엄마가 파놓은 엄마도 모르는 함정에 내가 빠뜨려진 거야... 그래서 인생의 가운데 토막이 엉망으로, 눈물범벅이 되었다.


당신을 걱정스레 쫒아가다가, 어느 결엔지 앞지른 내 발이 당신의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전후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엄마는, 마른 길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바보나 보게 된 것처럼, 위험한 지경에 어쩔 줄 모르는 딸을 보면서도 팔을 내밀어 끄집어줄 줄도 몰랐다. 시종 아무런 위기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자기 연민이 너무 깊어 어둠과 비애에 취해 버린 그 눈은, 올바른 상황 파악은커녕, 도리어 내가 엄마 손을 놓고 딴짓하다가 벌 받는 셈으로 여겼던 것이다.


몹시 억울하고 고독하고 그럴수록 딸이 괘씸한, 맞아. 날 흘겨보는 엄마 눈이 그랬어...


그렇게 무자비한 눈빛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나를 낳고 키워준 엄마이기 때문에 딸로서 자연스러운 연민의 정이 없을 수 없어, 그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을 뿐인데, 그때 엄마의 미로로 이끌리는대로 들어선 게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엄마를 미워하거나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아무것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가슴은 자식들 생각으로 가득 차서, 당신이 가슴속에 설마 그렇게 사람이 빠질 만큼 움푹 깊게 팬 물웅덩이를 들여놓았을 줄은, 그게 또 한 군데도 아닌 여러 군데나 될 줄은, 자기 자신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엄마, 그런 위험한 웅덩이... 말해 주면, 그게 소리냐고 성부터 낼 것이다.


내가 너한테 위험하다고? 무슨 소리!

자칫, 내가 엄마를 싫어해서 별소리를 다 지어낸다고 오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무지하니까. 자신의 마음은 봄기운이기만 한 줄로 평생 믿고 있는데, 사실 그중의 반은 화염(火炎) 이거나 장마철 폭우이거나, 그래서 숲이 거칠어지고 화단마저 잡풀로 덮인 웅덩이 천지가 되어, 무심코 엄마의 꽃밭이라고 들어선 자녀에게 위험천만한 곳일 수 있는데...당신은 그런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손을 휘저어서든, 몸을 내던져서든 어떻게든 말렸을 엄마가 아니던가. 위험해. 거기 서 있어.라고 화를 내면서라도, 다가서는 우리를 말렸을 엄마다.


엄마 가슴이 어쩌다 그런 황폐한 안뜰로 변했을까.

삶을 고통으로 옥죄어야만 제 명을 누린다고 생각한 시대, 그러한 시대는 여자에게 희생만 일러주고, 다른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한 시대의 딸 중 하나가 엄마였고, 그녀를 엄마로 하여 태어난 나는, 20세기 5,60년대

베이비부머 세대 중의 명.


자기 자신의 가슴속에 대해 이리도 무지한 20세기의 엄마와, 그러한 엄마에 대해 무지한 20세기의 딸, 모녀 사이에 30년, 시간은 한 세대 차이지만, 2천 년의 균열도 일어난다.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면, 균열의 낭떠러지를 조심하며 안내하는 '지혜'가 필수이다.


그러니까, 엄마라고 무턱대고 안심했던 게 문제였어. 엄마가 하소연을 한다고 무턱대고 그 손을 잡고 따라가면 안 되었던 것을. 특히 그 엄마가 자신에 대한 통찰이 전혀 없다면 그 안뜰은 정말 위험해. 그때는 그걸 몰랐어. 엄마의 물웅덩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나의 깨달음이다.


이 배움을 얻기 위하여, 아차 하는 사이에 엄마와 그 엄마의 엄마, 또 엄마의 엄마의 엄마... 계속 이어진 음지의 눈물길로 하여, 나는 적어도 조선 500 년 간 여인들 이 걸었던 왜곡진 길을 하냥 걸어야했다. 그 구불구불한 길엔 어디에도, 언제든 원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 표시 돌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전혀 각성이 허여되지 않은 길이었다.


엄마, 나의 엄마.

엄마가 나에게 소중한 엄마란 사실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마, 나는 그 안에서 죽을 뻔했다고요.

그래서, 엄마 가슴속의

물웅덩이만큼은 조심하고 싶다고요.

이것이 오늘 엄마 집을 나오면서, 골목길에서 되씹은 결심이다.

엄마가 사는 동네의 골목길


집에 도착하니 엄마에게서 전화벨이 두 차례.

받으니 말이 없다.

실수로 거셨나, 물어보려고 끊고 다시 거니 받지 않는다.


울화가 갈 바를 모르고 엄마 속을 휘젓는 건가.

모처럼 일요일을 그리 보내는가.

미련이 많은 엄마.

그러나 그에 대한 동정은 삼가야지... 그것도 엄숙하다할 생의 한 과정 아니겠는가.


엄마. 내가 여기서 기다릴게요.

오늘은 이 만큼만 교류해요.

더 이상은 어리석을 뿐이니까요.


엄마가 경청할 수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요.


엄마가 내버려 둔 상처가 곪고, 아무렇게나 던져둔 눈물이 고이고, 그곳으로 날 이끌어들이기 전에,

먼저 엄마가 깨부수라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때가 오기를.

엄마 보러 가는 길에 마주친 고양이 로비

엄마의 정원이 음습함을 거두는

그런 ,

나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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