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떠한 어머니인가요

어머니의 시(诗)

by 새벽종 종Mu
꽃 피는 아몬드 나무ㅡ빈센트 반 고흐

오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있는 방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 자신은 어떠한 어머니인가요?"

"나요? 으음... 말이 통하는 어머니?"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나는 어머니로서 참 행복하다는 실감이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환상적인 만두가게ㅡ쌍문역에서

아들이 너무 어리다거나, 어른 세계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거나, 엄마와 정서가 달라서, 이런 이유들을 찾아내며, 내게도 가슴 반 쪽이 함께 연동되지 않는 기분으로 지내온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과 한정된 소통만으로 만족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길일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을 다잡고자 했던 나.


그런데 지금 현재 모자(母子)는 매일 막힘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둘 사이에 대화가 막힐 때는 내가 꼭 시멘트 벽에 부딪친 기분이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들을 떠올릴 때 조금도 답답하지가 않다.

항상 느끼는 건 아닐지 몰라도, 엄마와 자녀는 마음이 이어져 있다ㅡ덕릉로 옥상에 누워

가족이라면 적어도 대화가 되는 사이여야 한다.ㅡ지족(知足)의 미소, 내가 가진 가족에 대한 이상이 실현되었다는 실감에, 누구에랄 것 없이 감사하다.


자녀에게 친구 같은 어머니인가요?

친구? 정확하게 따지면 친구 같지는 않다. 그저 어떤 얘기도 편하게 주고받는 그런 사이의 모자이길 바랐고, 그게 가능해졌다는 뜻일 뿐...


그러나 이게 중요한 화제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어머니에 대해서, 다 똑같지 않은 삶의 방식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허를 찌르듯이,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불쑥 질문을 던져오는 바람에... 순간 나 자신에서 분리된 관찰자의 눈동자 안으로,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역할 외에 다른 아무 역할을 하고 있지도, 할 욕심도 없는 듯한 엄마로서의 내가 조람된 것이었다.


나는 이걸로 됐어.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어ㅡ쌍문역

나는 그리 야심 찬 어머지가 아닌지 모른다. 자식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두 팔 걷고 나서면서, 내가 다 해결해 줄게 하는 그런 어머니 형이 못된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로서, 지금의 나에 자족한다. 그리고 이렇게 과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볼 수 있는 내가 좋다.


"福中不知福."(복중부지복)

중국의 속담이다. 행복 속에 있으면서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아들이 어릴 때 엄마로서 이 애를 훌륭한 청년으로 배양할 수 있을지, 부모로서 책임이 무거운데 비해 나 자신 너무 불완전하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런 부족한 엄마에 아랑곳없이, 아들은 건강하게 성장하여 반듯한 청년이 되어 준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리고 엄마로서 이보다 더 Lucky 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런 행운을 음미하노라면, 공기며 태양이며 이웃과 사회, 수많은 책과 선생님과 친구들, 그 모든 것이 아들을 지켜주며 키워줬음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을 대신해 세상에 대해 매일 매 순간 감사하기만도 한껏 벅차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아들과 교류한다.

교류라고 해야,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저녁마다 SNS 전화를 통해 10분이나 20분 하는 언어교류일 뿐이지만, 통화를 마치고 우리 모자는 각각 평온한 잠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니, 더없이 고마운 굿나잇 대화이다.

모든 구절이 잠언 같은 산문집, 어머니의 시


오전의 대화는 이렇게 옆길로 새었지만, 사실 어제 나는, "어머니의 시"라는 책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그 안의 문장, "행복의 조건"을 지난밤 재독 하다가, 너무 좋아서 그걸 가지고 누구하고든 토론하고 싶어서...


이 글이 전체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한 마디로, '행복이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확립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문장 속에서 나열한 '행복의 조건'은 다음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一,충실(감): 행복은 '외관'이나 '겉치레' 속에는 없다. 자기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 생명의 실감에 있다; 본래 인간은 스스로에게 도전해 갈 때는 계속 뻗어 갈 수 있다. 그러나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성장이 멈추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자신이 집중할 것을 가지고 있다면, 예를 들어 그것이 일이든 자원봉사든 어떤 것을 배우는 일이든, 그것을 통해 몸소 자기 마음의 대지를 일구고 키울 수 있다.


二,깊은 철학ㅡ(* 철학은 깊이 들어가면 종교 사상과 연결되는 면이 있어서, 여기서는 보류해 두기로.)


三,신념 (*정의감이라고 바꾸어도 될 듯): 남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구축하지 않는 그러한 신념 있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해진다.


四,명랑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생활태도: 남편이 불평해도 "어디서 콧노래가 들리는데", 아이들 성적이 나빠도 "차츰 좋아질 징조다"라며 전부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여간다.


五,용기: 겁쟁이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는 만족도 없으며 불행하다. 자신을 바꾸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과 관계하는 데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는 자비로 통하는 법이다.


六,포용력 :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를 안심시켜 준다. '앵매도리'(樱梅桃李)라고 하듯이 각자의 개성이나 차이를 서로 인정하면서 좋은 점을 찾아내고 칭찬해 갈 수 있는 그러한 넓은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여든다. 자신도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기쁨을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작은 일로 남을 꾸짖거나 일일이 소란을 피워대는 그러한 좁은 사람은 모두를 피로하게 만들며 기피당하게 되는 법이다.


위 여섯 가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행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마음의 세계가 풍부한가 아닌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자기 자신의 승리다.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전 문장을 통째로 외우고 싶을 정도로 뜻이 매우 간명하다. 여섯 가지 조건에 대한 작가의 견해에,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옮겨 적었다.

푸른 잎과 단풍,그리고 빨갛게 익은 열매ㅡ창동시장 골목길

이글의 말미에서, 작가는 고령사회의 어머니들에게 한 마디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자녀양육을 끝내도 아직 인생의 중반기에 불과하다. 공소 증후군(空巢, 즉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남편도 자녀들도 귀가가 늦어지고 홀로 집에 남겨진 듯한 허탈감에 빠져들 듯한 그때야말로, 드디어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란 새 문제를 받아들일 시기. '변화'의 때야말로 다음의 단계로 전진하는 기회다.

그런 의미에서 제안한다면, 주변부터 작아도 좋으니 자기답게 도전해 갈 것. 그것이 결국은 자기 인생을 풍부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지 않을까ㅡ라고.

나이가 몇 백 살이나 된다는 나무 아래 잠시 앉아 보았다.ㅡ화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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