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민화선생님과 보라 나비

by 새벽종 종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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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고 곁에 선생님을 두고 산다.


내 마음속에 평생 새겨진 오직 한 분의 정신적 선생님 말고도,


학교 다닐 때 학업을 이끌어준 수많은 선생님들을 위시해서, 교직 10년의 좋거나 싫었던 교무실 선생님들, 아이의 학부모로서 내 기분에 고맙거나 조금 불만스럽던 선생님들, 그리고 내 찐한 흥미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찾아간 문학교실에서 만난 문인 선생님. 그것으로 마지막인가 했는데 요 근래에 내가 훌쩍 날아서 도착한 곳이 "민•화실"이니, 이제 화가 선생님이 내 곁에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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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코로나19를 역으로 활용하자는 가벼운 맘밖에 없었다. 그림이란 학교 미술시간이 싫지 않았다는 정도랄까, 나란 사람은, 어디 가서 잘 못하는 거 기어이 잘해보겠다고 용을 쓸 재목이 못 된다.


그런 내가 원래 3개월 코스를 마치고 연장 등록한 제1 이유도 역시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했던 데 있었을 것이다.


2번째까지 기간으로는 6개월이라는 기간이지만, 매주 1회 2시간이니 약 50시간, 언제 맘먹고 쉬지 않고 그렸다면 꼬박 이틀이면 다하는 그 짧은 시간을, 나는 나의 미술 선생님과 보낸 것인데,


다시 연장 등록하실 거예요?


여기에서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것으로 됐어요. 애초에 화가 될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잠재적 욕심이라면 내 책에 내가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을 실력인데, 민화는 색칠에 너무 공(功夫,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거라 거리도 멀고.... 그만둘 이유라면 이렇게나 분명한데, 어디 사람일이 한두 가지 이유로 단순히 결정되던가.


실비처럼 마음속에 흐르는 소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너 실은 그림 그리는 그 작업 자체를 좋아하잖아, 아냐?


그렇다.

내 눈에만 담아두기 아까운 고운 물감색들, 도안들, 완성을 향해가는 동료들의 작품들.... 그것만으로도 좋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그 순간 가장 적정하면서 내 맘에 드는 색체를 찾아주고자 마음 쓰는 선생님이 존재한다. 취미로라도 그림은 시간 사치 같아서, 화실 등록을 고려할 수 없었던 예전의 나로선 민 화실의 화가 선생님의 존재가 매번 경이롭다.

나의 미술선생님이 꼽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자신의 작품이란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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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이 그림을 전송받고,

왜요?

라고 바로 물은 뜻은, 이제껏 그렸을 많은 작품 중에 왜 유독 이 그림에 정이 각별한 건가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작품에 담긴 어떤 스토리가 듣고 싶었던 거였다.


화가 선생님의 대답인즉,

그랬군요.


그런데, '보라'라는 색채 속에 선생님의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어떤 심정이 실렸다는 얘기를 듣기 바로 직전에 우연찮게도, 내가 나비에 관한 어떤 소설과 시를 되씹고 있었던 연유에설까?

문답도 오가기 전, 그림과의 첫 마주침에서 젤 먼저 허공 중에 팔랑이는 보랏빛 나비가 눈에 들온 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 그 나비들은 어디쯤 날아가고 있을까요?


물음에 물음이 이어지는 건 내 오랜 버릇일 테지만, 이번에는 참아 보기로 했다.

미술 선생님은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분이라선지, '보라'를 설명해준 것으로 이미 많은 얘길 나눴다고 여긴 듯해서....


대신 내가 몹시 좋아한 작가 (독일) 헤르만 헤세의 시 한 편을 꿈결 같은 나비 날개짓에 실어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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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나비


작은 파랑 나비 한 마리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자개구름 색깔의 소나기처럼

반짝반짝거리며 사라져 간다.

이처럼 순간적인 반짝임으로

이처럼 스쳐가는 바람결에

행복이 반짝반짝 눈짓을 하며

사라져 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보고 또 보아도 색감이 참 섬세하다. 나비들이 있어, 바위조차 꿈을 꾼다
위 그림과 좌우 쌍으로 완성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