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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산책이었다.
자로 댄 듯 분초를 다투지 않으면, 해가 지는 기색에 그만 아아, 벌써 저녁이네! 어느새 하루의 반 이상이 지나간 사실에 새삼스레 놀란다.
M(엠)씨네에 곧 도착해요, 라고 전화할 때만 해도 그렇게 저녁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낮이라 여겼고 당연히 M도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 믿었다.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엠은 하루 일과가 규칙적이었고, 자신이 정한 어떤 패턴이 있었다.
ㅡ어머나, 내가 엠씨를 안 게 아직 한 달이 채 안 되어서, 엠씨 생활리듬을 몰랐네요.
이제 막 알게된 사람에게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차이를 알게되는 일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엠씨도 자기와 다른 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집까지 와준 일에 굳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저녁 계획이 조금 방해받을 것 같았기에 다음엔 더 좋은 시간에 만나자는 메시지였으리라.
그렇다해도, 나는 사실 그녀가 저녁시간을 어떤 일에 쓰려하는지 도무지 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호기심이 강한 바도 아니라 그냥 얼굴만 보고 돌아가려 했다.
엠은, 괜찮다고 집앞의 돌벤치로 가자 했다.
그런데 모기가 있었다.
모기에 어지간히 면역은 되었으나 어김없이 물리고 가렵고....그러느니 좀 걷자고 했다.
엠씨는 이왕 걸을 바에야, 가까운 마켓에서 대파 한 단이 980원이니 사가면 어떻냐고 제안해줬다. 나는 파야 그까짓 거 없음 말고, 식으로 산 지 오래지만, 그녀의 제안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마켓에 가서 파 한 단을 정말 샀다. 그녀에게 반 덜어주니 들고 걸을 만 했다.
그녀는 지난 번에 말했던 공원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공원에 머물 것도 아니고 안 가도 된다 사양했더니, 조금 돌아서 정류장 가는 셈 치면 된다고, 배웅 삼아 안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고 걸었다. 표지판으로 경자식당을 눈여겨 봐뒀다. 조금 들어가니 교회당에 예수님이 흰 레온 빛으로 팔 벌리고 있는게 어둠 속에 비치는 천사 날개 같아 보기 좋았다.
"저기예요."
생각보다 작은 공원이었다.
길가에 면한 대문 앞에 깨끗한 종이상자. 무슨 생각인지 엠씨가 집어든다.
아참, 엠씨는 폐품을 수집하여 기부도 하고 그런다지?
그제서야 혹시 그녀가 이 시간에 폐품을 수집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작업이 늦춰지는 건가? 맘이 쓰여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엠은, 손에 든 상자는 폐휴지 모으는 어떤 분에게 줄 거니 신경쓸 거 없다 하더니, 과연 몇 발짝 앞의 상자더미에 던져놓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큰길로 나왔다.
내가 타야할 버스 정류장이 있는 도로다.
둘이서 무슨 얘긴가 계속 화제를 바꿔가며 이어가는데, 엠씨가 가로수 아래로 허리를 굽힌다.
그녀의 관심은 가로수 아래 내놔져 있는 함석과 샤워기 호스선이었다.
이걸 가져가야겠어요.
샤워기 호스는 비닐주머니에 담고,
잘라진 자투리인 함석은 끊어진 곳이 너무 예리하여 땅바닥에 있는 신문지로 싸야 할 것 같았다. 그걸 돕느라고 쭈그려 앉았는데, 그녀 손에 들려있던 호스가 비닐주머니에서 튀어나와 툭 ㅡ하고 내 왼쪽 이마 측면을 쳤다. 좀 아팠다. 하지만 다친 것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함석이 예리하니 조심해서 가져가요.
그녀는 문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 봐요, 집만 나오면 반드시 뭔가를 발견하게끔 되죠.ㅡ이 말 한 마디에서 나는, 엠씨가 자기만의 경험과 자신감으로 매일매일 알차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쏠쏠한 맛으로 저녁 산책을 한단 말이지?
정류장에 도착하자 나를 세워두고 작별인사도 하는둥마는둥 원래 갈 길로 급히 사라지는 엠씨의 등을 바라보며,
건강하기를,
그리고 매일 알찬 속에 큰일도 잘 되기를,
기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