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커피로 꼬심 당한

by 새벽종 종Mu

#.

빗소리.

사락사락.


가을이 문턱을 넘어설 때를 맞춰 비를 살살 뿌려주는 우리나라.


빗소리.

어제부턴가.

오후부턴가.

아무튼 종일 고요하다


#.

자꾸 누가 오겠다는데,

빈 데마다 우편 상자,

연거푸 거절하고 깍쟁이라 오해 받을라나 싶어,

상자 하나를 과감히 해체.

그러나 허리만 꼬부라지고 더 어지럽다.


그래도 모든 노동엔 수확이 있기 마련.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데, 왜 엄마는 매일 성만 내?"

네 살 아이의 말 한마디.


지금 난 이 "사랑한다"는 네 살박이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나 벅찬데. 그땐 아니었다는 것. 지금의 마음으로 그때를 채색하면 다시금 행복해진다는 것. ㅡ누구도 깨부술 수 없는 보배를 그때도 가졌음을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

뜻밖의 이삭 줍기는 고맙지만, 상자 하나로 하루가 저문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그녀들의 요청을 거절한 채 가을을 넘기기로 한다. 글쎄요, 연말 전에는 초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럼 지금, 올라가요.

비에 젖은 공기 중에, 콩나물 김칫국에 점심을 막 마친 참이었다.

그녀도 나도 스스럼없다.

곧 올라오겠지 싶어 문을 열어 둔다.

치파오旗袍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인, 한 지붕 아래 이웃이지만 자주 못 보는 사이. 사십 중반부터 해가 갈수록 둥그럼 해지는 몸으로, 나는 늘 경탄하며 그녀를 대한다.

"한 달 2백 수입으론 견딜 수 없어요. 뭘 하면 좋을까요?"

"(내 보기에 당신은) 뭐든 잘할 것 같아요. 창업을 해도 잘할 텐데요."

수년 전, 유아복 공장 경영을 위해, 공장서 가까운 이 집에 세 들게 된 건데, 작년부터 거의 문을 닫고, 나이 드신 엄마를 돌봐야 해서, 이곳은 어쩌다 들르는 셈이 되었다. 그래도 늘 일을 찾는 바지런함으로 경력직도 아닌 신입 처지에 2백의 월급을 확보했다고. 이 다행한 소식을 지난 8월에 듣고 축하해 주었는데, 추석이 가까워선가, 통 크게 선물 준비할 계획을 못 세우니 답답해서인가, 이 수입으론 안 되겠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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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내려보내는 데도 비.

우중雨中의 산책이 하고 싶다가, 피로감에 주질러 앉아 그대로 낮잠에 들었다.


....'전설의 치킨'집 치킨은 맛있어.

치킨을 주문하고, 혹은 주문하려다 문득 깨닫기를, 아참, 여긴 한국이 아니지, 중국에서 치킨을 시키면 안 되지!

그리고 다시, 그 집 치킨은 참 맛있어. 주문을 하려고 서둔다. 그러다가 참, 여긴 중국이야. 치킨을 시키면 안 돼....

얼마나 반복했을까. 비 오는 날의 낮꿈은 싱겁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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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락사락.

빗소리.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인스턴트 믹스커피가 생각나면 쪼르르 달려가는 녹색대문집.

"이 커피는 거기 몫이여. 거기나 오면 타 주지, 누구도 먹을 사람 없어."

언제던가, 골목길 입구에 내 이모뻘이라 할 연령의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나를 꼬셨다(?). 공짜가 좋아 한 걸음 두 걸음, 이젠 나도 모르게 인이 박힌 모양이다.


이렇게 젖은 날도 쪼르르 달려갔으니.


#.

할머니 집서 나와 두 발짝이나 걸음을 떼었을까.

우산을 받고 서 있는 아가씨.

"안녕하세요!"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있다.


담배를 피우며 휴대폰을 읽고는 했다. 골목길 담벼락에 쭈그려 앉아. 얼른 봐도 홈웨어 차림이라 얼굴도 이름도 모르면서 골목 이웃이란 확증이 들어, 그녀를 지나칠 때마다 인사를 하고는 했다.


그러나 쭈그려 앉은 그 키에 선 채로 걸어가는 행인의 인사는 가닿기 힘든 무엇이었을 것.


오늘은 서 있었기 때문일까?

마주 보고 웃어주는데, 고운 얼굴의 아가씨다.


미소!

오늘 집 밖에서 얻어오는 즐거운 소득.

그날 낙산사를 둘러보는 내내 비가 내렸지, 거기 간이찻집 처마 아래 서서 차 한 잔씩 주문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