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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가
투둑,
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그게 보통 도토리 혹은 밤송이라면?
보나 마나 그 둘 중의 하나라 해도, 나라면 반사적으로 '어라, 방금 뭐가 떨어졌지?'
알고 싶다.
그다음에, 다람쥐 먹이로 양보하고 줍지 말라는 요즈음의 등산문화를 상기할 것이다.
그렇다고 땅에 떨어진 식용 열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먹을 것을 바지런히 모아야 했던 삶의 기억. 근면과 절약이 뼈에 새겨진 터, 그런 삶에게 대고 어떻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제 야산의 먹을거리는 못 본 체하라고 다그치겠는가.
더구나 산길에서의 열매 줍기는 1년 농사의 수확과는 다른, 자연이 동물에게 주는 무댓가의 선물일 텐데, 그걸 얻는 순진한 기쁨을 어떻게 잊으라 할까.
기뻐하는 거기에 대고, 당신은 집에 먹을거리가 남아나면서 굳이 다람쥐의 식량까지 탐을 내기냐고 따지면.
추궁을 받는 이로선 당장 뭐라 변명해야 할지 가슴부터 답답해질 것이다.
내가 도토리를 줍는 순간은 나도 이 먹을거리가 반가운 다람쥐의 심정이었소. 단지 그뿐이었소. 나와 다람쥐의 구분조차 느낄 틈 없이, 그저 기뻐서 주웠단 말이오.
모두 다 이런 맘일 리는 없다.
하지만, 투둑!
열매 떨어지는 소리에,
이내 궁금해지는 내 호기심으로 미루어 상상하자면 그런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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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작은 공터에 앉아 있던 한 시간여.
노년에 접어든 두 여성이 우리보다 늦게 와
잠시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는데,
어느 지점에선가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쓸어 담다시피 했다며 배낭이 빡빡한 걸 눌러 눌러 다시 짊어지고 하산했다.
그리고 내게 그 산길을 안내해주던 동행은, 그 정도까지 집중한 건 아니지만,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치겠냐며 발밑에 도토리 알이 보일 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한 알 두 알, 줍다 보니 동행의 바지 주머니가 금세 불룩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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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 나는 산에 올라 나무하고나 대화했다오.
"그 세월"이라는 여기에 전후 설명과 생략법이 섞인 채로, 내 기억보다 충분히 자세한 설명이 2주 전에 한번 있었지만, 많이 희미해졌다. 불과 2주 전에 대화한 건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잊다니, 가능해? 어쩌면, 그분을 위해, 지나간 시절 막막했던 세월에 대한 공감만 남기고 일부러 대신 망각해 드리자 작정한 잠재의식이 작용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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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밖에 속엣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그때도 발치에 도토리가 보이면 허리 굽혀 주었을 것이다.
함께 삼각산 숲길을 걸었던 이 땅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