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형제는 이제야 편안해졌다.
이전까지 33년은 전통이라든지 형제간의 서열이라든지, 혹은 부모님이 지닌 관습 같은 것에 매달려 어딘지 억지스럽고, 어딘지 가식이 가득한, 그래서 어색한 만큼 서열이 낮은 막내에게 화를 잔뜩 내고 마는 그런 상황을 반복했다면.
이제는,
살아계신 엄마한텐 모든 게 오빠의 변덕과 강단으로 이리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시대의 변화, 의식의 변화를 이번 추석을 통해 호흡하였다.
정류장에, 가을연휴에 가장 어울리는 차림의 중년여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제사를 모시는 측에서 제사의 의무를 벗어난 여자 형제를 얕보거나 혹은 원망하거나 하는 심리.
제사를 모셔줄 아들이라고 부모는 일생의 피땀으로 모은 재정적 힘을 최종적으로 아들에게 물려준 걸 아는데, 여자 형제들은 20세기 전반부에 태어나 일제 치하와 6.25 전쟁을 겪고 빈한한 시대를 극복해 아들이나마 하나 있어 옛 관념에 충실한 부모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어서, 모든 과정이 잡음 없이 원만하기만을 빌어주는 맘이었다.
이 맘 속에는 좋든 싫든 옛 관습, 명절의 차례라든지 부모 봉양과 제사라든지의 주의무는 당연히 남자 형제가 응락한 것이라 여기는, 마치 부모 측 증인이 된 것 같은 입장 전환도 없지 않았다.
그게 다 합쳐서 얼마나 된다고 그래?
남자 형제는 "고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형제 중의 맏이로 태어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며 의견을 나눠왔던 맏누이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일생의 종결 편에서 0.1의 존재감도 없었던 사건이고.
용돈 얘기도 꺼내보지 못하고 그저 대학만 다니는 것으로도 감사하며 졸업 즉시 취업, 상근하며 신체 어딘가가 불편한 징후도 모른 체 골드미스가 된 막내에게 그 시점은, ㅡ 곳간 열쇠의 전달식과 함께 아들의 입지를 살려주기 위해 부모로서의 현실적 감정적 참여를 다 내려놓겠다는 무언중의 의지를 보이는 바람에, 손아래 동생 같은 것에 아무 의무 같은 것을 느낀 바 없는 저 하나 살기도 바쁜 남자 형제에게 부모 마음을 대신하라는 것이니, ㅡ 본래가 있어야 할 실질적인 부모님을 순식간에 상실한 것은 말할 것 없고, 부모가 암시한 대행 의무를 잊고 싶어 동생에게 트집을 잡아 동생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음험한 공격 앞에 노출된 위험 상황이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병색이 완연한 채로 직장을 다니는 딸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의 부모는 농경사회가 구성한 전통적인 일생 주기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는 점에 감격한 채였다.
그러나 나 혼자 덩그러니 밀쳐져 경험한, 혈육이라는 명분 뒤에 감춰진 가면의 태도 속에서 먹잇감으로 쫓기거나 난자당하는 그런 시간, 겉보기에 엄연한 가족주의란 그 이면에 눈을 감아주고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정글의 법칙.
그러한 것을 무책임하게 마련한 것도 모자라 방관하거나 앞장서는 나의 부와 모. 이것은 부모의 느닷없는 배반과도 같은 것일 테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끝의 자식에게 최소한 심리적 준비조차 언질해 줄 친절함도 총명함도 상실한 내 부모의 실질적 부모로서의 퇴임식이었다.
#.
그로하여 특별히 내게로 향해 배설된, 그들이 누리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심경,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그 다양한 표현들.
과거를 잊지 않았지만 되씹고 싶지도 않다.
우리의 삶은 과거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 원칙이므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위선은 무리라고 한계를 인식했을까,
농경사회의 3대가 한울타리에서 밥을 나눠먹던 그 풍경을 명절에나마 재현하는 것조차 사실은 능력 밖의 일임을 스스로 인지한 것일까.
사실 특별한 인격의 함양 없이 도시생활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은 경제논리상 불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단지
유산상속과 함께 의무적으로 계승된 몇 퍼센트의 과거 전통, 억지 춘향이나마 그것을 30년이라도 지속했으면 그 입장에서도 최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회가 변했다. 진보하는 이기심이 시대의 흐름이란 걸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알 것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걸 모르는 체, 아마도 때가 무르익길 기다려야 했던지도.
다소 억울했지만, 나는 30년 전부터 그 자유를 알았고,
아주 기고만장했지만, 그들도 가족이란 완력을 벗고 이제야 자유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올 추석은
훨씬 평등하고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