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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Mar 13. 2022

수선화와 봄비

3월의 일요일

#.

비가 오는 것도 괜찮아.

해의 밝음을 더 좋아하지만, 오후에 퇴근하며 잿빛 하늘에 대고 말했다.

아마도 봄을 맞아 알록달록 새 화분이 잔뜩 늘어져 있는 꽃집 앞이라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오미크론 확진자가 출현한 일로 하루종일 보이지 않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 일했던 하루를 생각보다 무사히 마감하며 그 다행스러움과 함께 비를 맞이하는 것도 적당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쨌든 3월 비는 봄비가  아니던가.


#.

퇴근길에 인사하다 친해진 꽃집 아줌마.

화초 식구가 늘어나니 그 몸짓에도 생기가 돈다. 꽃집의 생기에 이끌려서 원래 나는 화분을 잘 안 사는데 ㅡ  어쩌고 저쩌고 생색을 내면서 하나 고른 다는 것이  한 손으로 들어도 될 만큼 작은 수선화 화분.

 

옛날 멋지게 생긴 소년 하나 물가에 살았다지. 어느날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제 모습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지. 물그림자 속 얼굴은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나타났지만 아무 응답이 없는 사랑에 더욱 간절해진 소년은 물에 빠져 죽게되었다지, 소년이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 그것이 수선화라네. 사람들은 그 일을 안타까워 하며 수선화의 꽃말을 '나르시즘,自己爱"라 지었다지.


 수선화 화분을 안고 오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상기해냈다. 그러면서, 타인도 사랑할 줄 안다면, 적당한 정도의 자기애도 나쁘지 않겠지. 자기애만으로 꽉 찼을 때가 문제지 ㅡ 라고..... 

새봄도 왔는데,  이 세상을 사랑하듯 나를 맘껏 사랑하는 거야. 혼자 되뇌였다.


#.

집에 와선, 모처럼 산 화분을 어찌할까 궁리하다가, 접시에 물을 반쯤 받아 그 안에 화분을 올려두기로 했다.

잘 키워야할 텐데. 걱정이랄지, 생명에 대한 약간의 부담도 느껴졌다.


그런데 오히려 행운이었던 걸까.

이튿날 아침에 보니

가운데 꽃대에서 꽃 한 송이가 거의 필락말락 부풀어져 있는 게 아닌가.

저런, 오후엔 활짝 핀 걸 보겠는데!

나만의 꽃소식, 혼자서만 기쁨을 누리기 아까워 여기저기 문자를 날리며 외출.


분주한 낮을 보내고 저물녘에야 귀가,

어머나. 이게 웬일?

활짝 핀 수선화는 한 송이가 아니었다. 무려 세  송이가 나를  미소로 맞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이 왜 이리 후끈하지?

알고보니 오전에 깜박하고 보일러를 고온으로 켜둔 채 외출한 것이었다.


하하하, 그랬구나. 그래서 집안에 봄이 한층 더 빨리 온 거였구나!


#.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연연한 빛깔의 꽃송이는 어느 결에 다섯 송이가 되어 있다.

막을 수 없는 봄의 에너지, 그것이 생명의 이치런가.

하긴, 내가 수선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문 밖 먼 숲에선 더 큰 봄이 작용하여,  대자연의 생명들이 두런두런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준비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봄,봄, 봄이 왔어요,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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