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종 종Mu Mar 18. 2022

수상한 감기

억지춘향 자가키트

#.

감기예요.


내 말에 한 발 물러서는 지인H.

으레 그려려니 하고 놀라지도 않는다.

시절이 수상하니 인심도 수상하다.


#.

반대의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감기 걸렸는데 약 사러 나가기도 힘들다는 지인K.


그럼 내가라도 사다 줄까요?

나섰더니 됐단다.


그런가 하고 한 이틀 넘기고 마주쳤는데 감기는 이제 그만한 모양.


잘 됐네요.


그런데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참을 수 없어 이제사 말한다는 듯이 K는, 내가 그녀의 감기를 오미크론으로 짐작하고 피하려했다고 기분 나빴다고 말해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감기라니 안쓰러워 관심을 주었던  게 오히려 의심과 경계로 비쳤던 모양이다. 뜻밖의 오해가 당황스러웠지만 코로나19에서 변이의 변이로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감기를 앓기도 맘이 편치 않다.  


#.

오미크론이 너무나 감기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방금 전에 감기라도 앓는지 피로해 보이다가, 어깨가 아픈지 한 팔로 주무르고 있다가, 문득 자가키트에 두 줄이 나왔다고 하고는 보건소로 달려간다.


나도 제법 건강한데.


건강하다는 기준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올 봄 오미크론이란 이 전염병을 목전에 두고 여태 잘 지내왔다는 이 만큼이 대견하다.


#.

그래도 감기는 못 피했다.


감기 같아요.


이 말이 던지는 파장, 미미한 채로 느껴져온다.


그 덕분에, 스무 해도 전에 생경한 기분으로 딱 한 차례 사용해봤던 임신테스트기를 연상시키는 자가키트를 오늘까지 무려 네 개째 쓰고 버린다.


조마조마한 심장으로 액체가 퍼지며 그려지는 선을 바라보는 건, 어째서 옛날과 똑같은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되뇌면서.


#.

가능하면 한 사람이라도 덜 전염되길, 병에 걸렸더라도 잘 견디고 일어나길. 회복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더 강한 맘으로 버텨내길. 어쨌든 모두가 가능하면 병에 지지 말길.


전염병의 유행 앞에서 그 정도만 바랄뿐, 나만은 꼭 피할 수 있을 거라고도, 나만은 꼭 피해야한다고도 우길 맘은 없다.


그러기엔 나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다


어릴 땐 내 생각이 닿는 범위가 다였다면, 지금은 내 생각이 세상이 돌아가는 큰 이치에 비해 얼마나 좁고 부족한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

3 년째의 코로나19 뉴스는 우리를 깨우쳐 준다.

나 혼자만 건강하겠다고 바라는 건 어리석다. 모두가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 혼자만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사상누각沙上楼阁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산행>과 <기생충>으로 표현된 사회라서,

행복을 타인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마음까지는 아직 멀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수선화와 봄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