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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Apr 04. 2022

메모가 예술이다

내 꺼? 네 꺼?

#.

부담이 없을 겁니다.


나 같은 경우, 내가 굳이 나서는 경우 아니면 지면을 내 줄 테니 꼭 써 주십사 먼저 연락 오는 경우가 드물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논문 청탁을  받는데, 그게 뭐라고 나는 그 자체가 아주 자랑스럽고 기쁘다,


내가 기뻐하는  이유는, 이름을 날리자는 허영심이 있어서라거나, 논문발표가 경력에 어떤 훈장이 되어줄 것이라거나, 그래서가 아니다.


최종 단계의 학업을 마칠 때, 나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이제부터 학문에 전념하기로! ㅡ 라고 결의했던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누군가의 응원을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의 제안은 설날 무렵에 날아왔고 나는 '네에, 알았어요.'라고 접수했고, 그 사이 단기간이지만 출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졌고, 그래도 마감까지 날짜가 넉넉해서 아무 급할 게 없었다.


그랬다. 3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그랬다. 그랬는데,


불가피 마감을 앞당겨야 하겠습니다.


원래 정한 마감일로부터  40일이나 제 (除)한 새 마감일자를 통지 받은 것이다.

아아, 네에에.

생각지도 못한 통지라서 떨떠름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급하긴 하겠지만, 학자의 길을 지속하려면 이것쯤은, 이런 심리였달까?


#.

그러나 실제로는 절대 '이것쯤은'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단지 한두 장을 쓰는 것이라도 연관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손에 닿는대로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이상한 버릇을 감안하면, 마감까지 열흘 남짓밖에 안 남은 시간이란  전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정상대로라면 내게 열흘이란 그저 읽고 또 읽고 그러고도 읽을 게 계속 쌓여가는,  첫 문장을 언제 시작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순수한 탐독의 시간일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통지대로 하자면, 이 열흘 안에 읽고 생각하고 쓰기까지 다 해치워 하는 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해?

전혀!

비록 나만의 자문자답은 있었지만, 그쪽에는 알았다고만 했던 것. 그래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내가 정신 없이 화닥거리게 되었다.


그러한데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납득할 때까지  읽을 셈으로 책을 쌓아놓고 앉으 그걸 읽으면서도 분침과 초침에 쉼없이 마구 쪼이는 기분, 한마디로 비상이다.


#.

그 와중에 책갈피에서 떨어져나온 종이조각 하나.

흘림체의 내 글씨. 언제 어떤 생각에서 메모한 것인지 전혀 기억이 없다.

                             *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일)에

집중한다면

과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생명을 베푸는 것

사랑하고 베푸는 것

문을 활짝 열고 베푸는 것

다른 이에게 베풀 때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유를 얻을 것

                             *

그대로 옮긴다.

책을 읽다가 좋아서 구절구절 옮긴 게 아닐 까? 지금 보면 미완의 시작诗作 같다.

앞뒤 맥락이 없으니.


그래도 참 좋은 말이다, 특히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에 집중한다면'이란 구절이 좋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메모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출처를 밝히지 못하여 조심스럽긴 하지만.


만의 하나,  이  시가 되기 이전의 시 같은 낙서가 순수한 나의 아이디어라면 다행이겠지, 지만 내 글이 아니라도 양해를 받고 싶다.

지금 나는 맘이 너무 바빠서 지난 날의 쪽지가 인용문인지  아닌지, 그걸 분명히 하겠다고 우물쭈물 시간을  낭비할 그럴 여유가 1도 없으니까. 


아무런 고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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