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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Apr 10. 2022

학자라는 증거를 새기다

마감날의 새벽

#.

벌써 며칠째인가.

온몸이 뒤틀리는 듯, 얼마 안 되는 마감일에 쥐어짜여서.


#.

마치 시간의 짧음이 주는 위협과 내 근기가 대결이라도 하듯이.


#.

문득 내가 이렇게 끝을 보자고 버틴 적이 몇 번인가 생각해 보았다.


어쩜 나는

나는 이렇게 쫒기는 과정 같은 건 질색이었던 것 같다.

이런 긴박감으로 만약 경쟁을 해야한다면 일찌감치 물러서 버리는 게 내가 보인 일종의 경향성이었다.


이제까지  들인 시간, 그 충실도 등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뒤로 빠졌다. 거기엔 뚜렷한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실제로 누가 그만두어라 라고 했다거나

실력에서 밀렸거나

내가 너무 싫어하는 일이라거나


다만 실체 없는 모호한 자아상이

만 두어라.

넌 견디지 못해라고 속삭였고

나는 조금의 반발도 없이 다소 순한 표정으로

그럴까? 그럼.

하며 이제껏 달리고 있던 흰 라인 밖으로 빠져나오곤 했다.


거의 모든 경우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경쟁에 있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싶을 즈음, 나는 즉각이라 할 만큼

뒤로 빠지곤 했다.


그런 마음

너무나 느껴져서 괴로웠으니까.

물러서면 그런 마음 안 받아도 되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넘겼을 것들, 나는 왜 그리 무관하게 멀어지고 싶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제와 소급되는 원인들. 어린 나를 둘러싼 무채색 나의 주위.


#.

읽은 것 생각한 것, 그것들을 모아 쓰는 작업인데,  머릿속이 여러 말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뒤죽박죽, 글 흐름도 어지럽다 할 만큼 툭.툭 단절된다.


더하여 이런 어리숙한 결점에 자책하여

마감 전에 포기한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될 것 같다는 경계의 미음이 나를 긴장시킨다.

이러다 혹은 낮밤의 리듬을 잃어 면역력 저하로 마감 전에 병이라도 들어 마치지 못할까 비상등을 달고 달리는 고물차를 모는 운전기사의 아슬아슬함까지.

 

그래도 눈을 뜨고  기상하는  순간 '쓰자!'라는 분발이 있으면 누가 뭐래도 그 하루는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쓰자,

이 켜지나 꺼지나.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내 주의력의 초점은 이 불빛 하나에 모아진다.


이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는 듯이.

이야말로 평화로운 나날.


#.

9일의 작업을 마친 시간은 10일 새벽2시49분.

그 시각 골목길 가로등 밑에는 쪼그리고 앉아 흡연과 폰질(휴대폰 갖고 뭔가 하는 일) 중인 앞집 여학생 하나가 보였다.


하루치의 설겆이.

그리고 콜레스테롤 약 한 알을 삼키고

문득 새벽의 여명이 오기 전 천공과  어딘지 색다른 주위 풍경이 매우 오랫만이란 생각에 일부러 문턱에 걸터 앉아 숨을 고른다.


이번엔 제법 끈기를 부렸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새벽이다.


이제 마감까지 19시간하고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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