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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Nov 01. 2022

할로윈 축제와 이태원

안녕? 이라고 묻는다

#.

보통 일요일 오전은 일요일다운 느긋함을 좋아한다.

느지막히 눈을 떠서 빛이 가득한 창을 보며

"아아.일요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평온함과 만족감을 들이마신다.

이럴 때만은 성현의 "목숨은 때가 있다. 부지런히 마음을 닦아라."ㅡ 같은 가르침도 잠시 소리를 낮추고 피해준다. 살아있는 현대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일요일 오전의 소소한 행복을 위하여서 말이다.


#.

그런 탓으로

"이태원참사"라는 뉴스 드라인을 거의 정오가 되기 직전에야 읽은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게 무슨 일이지? 평화로운 일상에서 조금도 예상 못한 사고라서 혼란스럽기조차 했다.

이런 걸 두고 밤새 녕이라 하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다이소에 들렀다가 할로윈 축제철이 다가왔구나 짐작만 했지, 바로 어제 토요일인  29일에 축제행사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나다. 이렇게 유행에 뒤떨어진 감각으로 그저 주말의 호젓함이 좋아 푹 자고 일어난 뒤였으니....  


#.

오후 늦게 한 두어 의 지인집에서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 마디가 날아온다. 하나는 딸이 친구들과 갈까말까 하다 말았다는 소식. 또 하나는  그 분  손녀가 이태원역까지만  가고 바로 돌아왔다고. 이유는 친구 때문이었다. 같이 간 친구가 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 놀라 자꾸 돌아가자 해서 걸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전철을 타고 돌아와야 했다고. 평상시라면 사람구경도 하나의 재미인데 그걸 못 봤냐고 놀릴 일이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땐  막상 현장에서 미리 겁을 먹고 소심해진 친구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감사해야 할 판이다. 


#.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아이구, 아까워라. 그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

골목길 어르신 한 분이 혀를 찬다.

그리고는 고개를 꼬고 혼잣말로 자기 같은 살 만큼 산 사람이나 데려가지...뭐라뭐라 되뇌다가, 목숨이란  참 제 뜻대로 안 되는 일이라며  인생 깨달음으로 마무리를 해 주신다.


#.

어르신의 말씀이 아니라도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아무일 없을 때는  살고 죽음이 내 생각 안에서 고분고분한 것 같은데, 결정적인 때에 이르면 내 생각범주를 뛰어넘은 문제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수행이 깊거나 영적으로 맑은 사람은 간혹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도 한다지만, 많은 경우 대비를 미처 다 하지 못하고 죽음을 대면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엔 죽음에 대한 대비는커녕 삶에 대한 준비조차 아직 시작도 못한 채로 저 세상으로 가 버린 안타까운 죽음들도 있다.


우리집 큰오빠도 겨우 열다섯의 나이에  친구 손에 이끌려  시외버스를 타고 있다가 고통사고가 나서 즉사한  경우이다.

죽은 오빠 편에서 나는 늘 열살이나 차이나는 어린 동생일 터이니 거기에 생사별리의 괴로움을 느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빠의 죽음이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직간접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어떤 화두를 게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이 더 현명해졌는가?

거기엔 어느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없다.

많지 않은 가족이고 불과 몇 십년 동안이지만 던져진 화두를 제각각으로 소비하며 있는 힘껏 튀어져나간  지점들이  너무나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우리 가족이 보여주는 바, 어쩌면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각각의  인격수양에 달렸고  시초는 선택의지일지도 모른다.


#.

이태원.

어딘지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고 동경하던 땅.

이제 10월 마지막 주말의 슬픈 사건까지  함께 기억할  땅이 되었다.

작년 이맘 때던가, 한 젊은이의 죽음을 알고 나서 한강이 그저 한강만으로 기억되지 못할 것 같다고 썼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내가 이렇게 작은  추모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아닌지. 


우선 그래도 들어줄 귀가 있다면 가장 먼저 지상의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해 두고 싶다.


소중한 생명, 인명은 재천在天이란 말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 스스로의 목숨을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를 죽음의 위협에서 지켜내겠다는 경계심을  놓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자기생명의 수호자로 오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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