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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모자를 하나 샀다.
원래는 그냥 보기만 하려 했는데 사게까지 된 것은 가게 여주인이 써보기만 해도 괜찮다고 해서 맘 놓고 이것저것 써보다가....
왜 그럴 때 있잖나. 조금도 짜증 안 내는 주인이 좋아져서 나중엔 내가 하나 사줘야지. 결심하게 되는 그런 순간. 어제가 그랬다. 굳이 꼭 살 필요는 없는데 주인을 봐서라도 가게를 떠나기 전에 하나는 사게 될 것 같은 예감? 아님 인정의 교류 같은 것이 샘솟았다. 그래서 집어든 챙이 아래로 향해 둥그렇게, A자 실루엣의 까망 모자였다.
전혀 예상 밖의 선택.
사실 네댓 가지를 놓고 뭐가 좋을지 고민할 때 내가 최종적으로 산 까망모자는 그 일이삼사 안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챙이 붙어 있는 모양이 일단 싫어서 제외시켰던 것이다. 나 자신 챙이 아래로 향해 퍼지는 벙거지풍 모자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맨 처음에 여주인이 권한 건 푸른색 기계로 짠 털실 모자였고 아마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챙이 따로 없는 털실 모자가 취향이기도 해서 모자 하나만 봐선 원픽 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내가 입게될 겨울 옷을 떠올려보니 푸른색은 무리여서 포기해 버렸다. 무엇보다 내가 올여름 썼던 모시 모자와 색이 비슷한 탓도 있어서 결단이 쉬웠다.
이제 겨울이잖나.
한밤중 문득 후회 아닌 후회도 했다,
괜히 샀나?
다른 디자인으로 바꿀까?
그러다 맘을 돌렸다.
내 맘이 끌린 데엔 이유가 있겠지.
생각해 보면ㅡ정말이지 어제따라 까망에 스며든 듯한 따뜻함이 너무 좋았던 거다.
겨울 느낌의 첫 주말이라서인가.
까망 모자를 사길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