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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Nov 27. 2022

사람은 스토리다

이야기 골목길

#.

아파트 담장을 끼고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M 할머니 집이 나온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두 달만에 가는 길이라선지 맞게 잘 찾아왔다는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도 대문이며 초인종 달린 거며 M할머니 집이 틀림없어서 안심하고 할머니를 불렀다.


그렇게 들어간 할머니 방에서 난데없이 할머니의 6•25때 경험을 듣게 될 줄이야! 할머니는 전라남도 장흥 어느 농촌마을에서 살았다고 했다.  마을 가까이 초등학교가 하나 세워져 12살에 입학해 한글도 배우고 구구단도 배우던 그 해에 전쟁을 맞았다고 했다.  

듣다보니 예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읽었지 싶은 가엾은 민중의 삶... 빨찌산도 군경부대도 마을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때로는 빨치산의 명령으로  때로는 가족이 걱정되어 12살 소녀는 걸핏하면 십 리 길을 걷곤 했고, 빨치산 세력을 무서워한 군경의 작전으로 마을이 불태워지는 것을 눈앞에서 봐야 했다. 나중엔 마을을 통으로 비우라고 해서 이모집으로 가 네 식구가 더부살이도 해야했다. 그러다 농민 부재로 식량부족이 염려된  정부측에서 이제는 돌아가 농사지으라 해서 1년만에 불타버린 마을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이것이 12살 소녀가 태백산맥에서 불현듯 튀어나와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다.


#.

잊을 뻔 했다.

내가 사는 집을 끼고 골목이 가로와 세로로 양 갈래 교차하는데 마치맞게 두 사람쯤 걸터앉을 만한 자리가 있다. 거기 늘 닫혀 있는 작은 쪽문이 있는 걸 보면 섬돌 겪으로 벽돌로 단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놓은 자리일 것이다.

약간 쌀쌀한 그런 날씨에 난 아침을 먹고 활명수를 사러 대문을 나서고 었다. 며칠째 속이 답답해서 밥을 먹어도 안심이 안 되었던 탔이다.

어머.안녕하세요?

섬돌에  앞집 할머니가 홀로 앉아계셨다.

어디 가우?

소화제를 사러 수퍼에 가요.

수퍼에 간 김에 사이다 큰 병도 하나 넣고 돌아오는데 할머니는 그때까지 홀로 앉아계셨다.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한두 마디 말을 나누면서 어느새 할머니 옆으로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리고 듣게 된 할머니 소녓적 이야기, 할머니의 아버지는 황달을 앓으시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술을 잘 드시던 어른이었는데 아프셔도 마음만은 호방하셨던 모양이다. 생전에 가끔 당신은 깨끗이 살았으니 죽어 도인으로 변할 거라고 장담하셨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할머니 엄마는 학을 타고 날아가시는 남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고 한다. 다른 가족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니 환영이라 할 것이지만 어쨌든 엄마 눈에는 생생했단다.

특별할 것 없는 골목길 엉덩이도 차가운 시멘트 섬돌에 앉아  듣게 된 이야기 한 편에  후두둑 접혀지는 시간을 타고 나는 어느새 도인들이 하얗게 존재하는 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 영혼이 두 개로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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