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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Feb 15. 2023

파촉 삼만리와 계화차桂花茶

계수나무 꽃향기 따라

#.

내겐 만난 지  채 1 년이 안 된 지인이 있다.

그녀는 요즘 철학서를 들입다 판다. ㅡ 이 한 가지 말고는 크게 아는 바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그녀에게 반한 점이 있다는 것. 뭐냐 하면

언젠가 맘에 쓰이는 가족 일로 그녀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녀의 부드러운 응대에  아픔이 좀 가라앉았던  것이다.  


이 여성은 드물게 상냥하구나.


그 뒤로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녀와 통화를 이어오고 있다.

엊그제 나는  마음 산란한 일로 하여 여느 때의 평온한 저녁이 아니었다. 머리를 맑게 하고 싶어 그녀와 연거푸 이틀 통화를 했다.


이튿날도 전화를 건 건 나였고.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전날 다 마치지 못한 화제를 다시 이어가고픈 심사였다.


"오늘 모임 장소에 우리 팀 바로 앞팀이 남긴 냄새 때문에..."


그녀는 낮에 맡은 냄새로 인해 조금  예민해져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후각을 통해 기억하고 있는 낮의 냄새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값싸고 자극적인데 사람 체취에 섞여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런 냄새.ㅡ 나는 상상력을 동원하며 그녀가 그런 냄새를 견디며 두어 시간 견디었을 괴로움을 느껴본다.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그 향수는 절대 향수로 생산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정확하다면, 습관적으로 그 향수를 쓰는 노년의 남성들은  그 역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묘사할수록 그것은 절대 향수일 수 없는, 어떤 불쾌한 냄새였다.


"차茶를 다룬 전문가라선지 보통사람보다 냄새에 더 예민하신가 봐요. "


그녀는 후각에 예민하다. 이 새로운 사실을 입력했다.


#.

"향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제는 갑자기 '촉국정사蜀国情思,이런 네 자의 한자어를 한국어로 바꿀 일이  있었어요."


이야기의 바통을 잡은 나는 그 한자어 때문에 감기 속에서도 계속 뭐가 좋을까 고민했던 일을 말해간다.


이것은 드디어 2월에 출판될 내 산문집 <锦江恋歌>의 부제목이다. 이 부제목은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한국어본 편집 과정 내내 금강연가 하나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최종수정을 거쳤는데, 동시출판는 중국의 출판사에서  '아참, 그 책의 공동부제목이 촉국정사예요. 같이 넣어야 해요.' 이런 식의 연락이  것이다. 짐작컨대 한국 측 출판사가 중간엔 깜박한 거 같다.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교두보 차원출판물로서  공통의 제목은  사전에 약속한 거였.


하지만 서울에  있는 나로선 첨에 그건 중복이 아닐까,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금강연가란 제목 자체에 나의 쓰촨에서의 감상과 배움이 함축되어 있는 바, 촉국은 금강, 정사는 연가에 의미가 흡수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터.   이제 와  이런 생경스러운 한자어를 넣다! 덧붙임 자체가 사족이 될지 모른다.


언어가 다름에 받아들임도 다른 것이다. 역지사지ㅡ 한번 더 생각하기로.

핵심 키워드가 떠올랐다.  서쪽과 그리움.


서정주의 시 <귀촉도>  "파촉 삼만 리""서역 삼만 리"처럼, 

파촉지방 쓰촨은 서울(*본래 '장안'의 서쪽일 터이지만)의 서쪽.

 '그리움' 대신할 쓰촨의  사물로 무엇이 제일일까, 이것저것 꼽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녘  

"아, 서쪽 하늘의 초승달! 그리고 계화꽃!"

맞아, 그곳엔 계화 만발한 계수나무가 흔하게 보였어. 초승달이 서쪽하늘에 뜨는 거며, 계수나무가 달의 나무인 거며... 그 함의에 내가 한때  머물렀던 그곳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오롯이 담길 것 같았다.  

우리들 삶은 사랑의 연속이다.

순간 코끝으로  계화꽃 향내가 맡아진다. 계수나무 꽃(즉 계화 ) 은은한 향기가. 사물 하나로 금세  그득해지는 맘. 그리움은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시심诗心이다.


 "그래서 부제를 한글로 '초승달• 계수나무 꽃향기따라'라고 풀어썼어요"


#.

두 여자가 냄새 혹은  향기에 관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통화는 어언 한 시간여.


"나중에 저희 집에 러 오셔요. 제가 계화차 우려 드릴게요."


차를 끓이는 우아한 그녀를 볼 날도 머지않았겠지.


문득 "계화"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 선배가 생각나기도 다. 어떤 모임에서 딱 한번 마주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한참 선배. 그분이 자기 자기 이름을 말하며 덧붙이길, 이름이 계화인데 그때까지 계수나무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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