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씨는, 우주 체험이 우주 비행사의 의식세계에 큰 변화를 주는 이유를 알고 싶어, 미국의 우주 비행사 12명을 취재한다. 그 리포트가
책이 되었으니, 바로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다.
우연한 제목 같지만, 우주 비행사에게 이 '귀환'은 매우 중요하다. 귀환하지 못하면 자신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우주 공간에는 생명의 흔적도 없고, 생명이 존재하는 곳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과 무려 몇 십만 km나 떨어져 있는 푸른 지구뿐이다.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다."ㅡ유진 서넌
쌩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의목소리를 빌리자면, 지구는 우주란 사막에 숨어있는 생명의 '우물'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지구에 돌아왔을 때의 감격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We do not realize what we have on earth until we leave it."(지구를 떠나 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ㅡ제임스 라벨
이 말이 여실하게 반영하듯, 우주 비행을 경험한 비행사들은 지구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확대는 단순히 지구환경이 인간 생명 유지에 얼마나 필수 불가결한가란 감상이 아니다. 지구와 인간의 전체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면 좋을까, 지구를 조망한 경험 없이는 갖기 힘든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고 한단다. 부분적 그림이 아닌 전체 큰 그림을 보고 난 후 얻게 된 인식 전환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우주 비행뿐만 아니라, 익숙한 삶의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이나 더 큰 경험 위에서 나의 삶을 볼 때, 전에 없던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이러한 효과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오늘 새벽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부분적으로 읽고, 오전에 펼친 주간에서 조망 효과에 대해 읽었다.(*선안남,말랑말랑한 심리학,화광신문에서)
우주 비행사 얘기로부터 조망 효과에 대한 심리학 설명으로 ...24시간 안에 우연처럼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일도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4.19 기념탑과 묘석들
오후엔 4.19 기념묘지에 다녀왔다.
특별히 참배하러 갔다기보다,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그리로 들른 것이다.
민중을 무시하는 특별한 권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분기한, 정의감을 목숨과 바꾸어1960년에 죽은 청년들.
여자 셋은 묘비석 앞을 지나며, 그렇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떠올린다.
4.19 기념묘지 연못가
그러다가 이어지는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A 씨는 참 고생도 심하지.
"그 속에 성장하는 거죠."(안 들리는 체)
하는 일도 여러 번 바꿔야 했어.
"여러가지 일을 해볼수록 성격도 트일 거예요. "(못 들은 체.)
그녀 둘은 내가 A씨를 모르는 채로 한 마디씩 끼어드는 것이 싫다. 그런 거부를 느끼면서도, 이 세상의 대기 중에 A씨에 대한 언어를 어떻게든 밝게 남겨두고 싶은 나. 아는 이에 대해서든 모르는 이에 대해서든, 생에 대해 '한사코 밝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함,이것이 내 나름의 조망효과 이후 그 확장을 지속하고자 하는 수행일지도모른다.
이 수행은 대개는 즐겁지만, 때로 고행이다. 특히 만난 사람들의 영혼이 많이 덜 성숙한 경우에는... 오늘 오후가 그런 편.
고생하는 A 씨의 소식을 전하는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란, 고생스러운 인생은 싫은 것, 기피할 것. 차별의 기운이 서려있다..고생 없이 안온한 그것만이 우리 삶에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대체 어디로부터 전승되어진 것일까.
내가 아직 덜 단련된 탓인지 민감한 심장이라선지, 어떤 통찰은 참 외롭다고 생각된다.
가령, 기피하는 게 많은, 물질적 안정만에 집착하는 그런 인식이 자타(自他)의 거리를 더욱 가르고, 그런 분리 의식을 갖고 있는 의식의 주인들이 바로 나의 가족이거나 친지이거나 주위사람일 때, 다정한 기분으로 말을 나누어도, 상대는 그 자신 뭔가 잡다한 근거를 가진 자만심에 차서, 나는 다른 사람,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꾸 사인을 보내올 때, 그 '수라계'(남을 이기는 데서 만족을 찾는 마음 경향)때문에 계속 원만한 삶을 방해받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임을 보게 될 때...
그래서였을까.
셋 중의 두 여자는 뜻이 맞아 가깝고, 나머지 한 여자는 한 발짝 떨어져 걷는다.
한 발짝 떨어져 걸어주느라, 오랜만에 지친 얼굴.
뭐 하니?
저물녘 반가운 용희의 전화.
어릴 적 친구이며 사촌인, 그 이름에 다정함이 떠나지 않는 용희.
바쁘다는 말이 1,2분 통화 속에 열 번은 반복될 정도로 숨이 턱에 찬 용희의 생활. 그 와중에 어찌 딱 맞춰 전화를 해왔을까. 그로하여 마음이 다시 온화해진다.마치 우주로부터 교신이 내려지듯, 또 하나의 신기한 우연이다.
낙산공원 아랫마을, 그 골목길을 나는 사랑한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이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세레브로프는, 타고 있던 우주선이 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 실패했을 때 죽음을 각오한 몇 초 동안, 충돌 후 죽고 난 후의 광경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쳤다고 한다. 그렇게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인생관과 사고방식이 바뀌었다고.
세레브로프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따라 수호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보고 있다. 나는 수호받고 있다고. 또 무슨 일이 있어도 차분해집니다. 지금은 웬만한 일로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제 자신의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이나 사회와 세계, 그리고 지구를 깊이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평화와 환경보호, 어린이들의 교육 등에 나서게 된 것도 죽음에 직면했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소설)에 나오는 피에르는 아니지만 나와 우주와의 연결을 좀 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명줄이 끊겨 우주를 떠돌았던 순간은 ''이로써 나도 원자가 되어 어머니인 우주로 돌아가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주로부터 수호를 받는 듯한 실감이란 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함을 내일에 남기며, 다음 한 구절비약 같지만 어딘지 세레브로프의 인식전환과 동일선상의 내용 같아서 여기 덧붙여 두기로 한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는, 사람은 누구나 우주의 일부이며 일원인 이상, 인생과 삶의 방식은 반드시 우주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리가 없다고 믿었다고...
"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일생은 선이든 악이든 우주 그 자체에 무언가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인생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레브로프의 말과 토인비 박사의 말은 책 "우주와 지구와 인간"에서 인용함
)
'우주'하면 나는 '별'보다 바람이 더 먼저 떠오른다. 문득 후욱ㅡ 하고 와닿아서일까? 누군가의 미소ㅡ'스마일 풍경' 네이버 밴드 '독학캘리그라피'에서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