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보험 가입이라도 상담하듯.
플랜 75에 가입 신청을 하면 된다.
정기적으로 지출해야 할 보험금도 필요 없다.
오히려 얼마간 장려금을 받는다.
그리고 적당한 날을 정해 죽음 수순을 밟으면, 끝이다.
75세 이상이기만 하면.
그래서 <플랜 75>이다.
이게 잘 되면 연령조건을 낮춰서 플랜 65가 나올 지도, ㅡ영화 속의 대사이다.
죽음이란 계획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단적으로 살인, 또는 자살과 같은 방법 외에 자연사란, 그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즉 타고난 수명이 있다고.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심신에 걸쳐 인간다운 만족과 긍지를 지키며 산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생각 있는 인간들에게 두려운 기분을 안긴다.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할 거라는. 이것은 노화에 대한 가장 큰 걱정에 해당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개인 각자는 상상해 볼 여지가 있다. 플랜 75라는 시스템이 가능해질 경우를. 만약 영화에서처럼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나 자신 그에 해당된 노령 인구 중 한 사람이라면....
청년시절이라 해서 하늘이 늘 반짝이는 건 아니다. 인생 황혼에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동물의 생태를 보아도 청춘보다 노령이 더 절망스럽다. 동물의 왕 사자라 해도 그가 한 때 황야를 휘젓던 사자 중의 사자라 해도 늙고 힘이 다 빠진 수사자가 무리에서 밀려나 홀로 떠나가는 뒷모습.
어떻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우연하게 행운처럼 편안한 임종을 맞고 적시에 남은 육체가 처리되고 그 과정에서 주위사람들에게 상쾌한 여운을 주기까지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행운에 행운이 겹친 임종이 약속된다 하여도, 임종 직전까지 살고 또 살아야 하는 삶. 여기에 삶의 무게가 있다. 자존심이나 예의나 염치.. 이런 것들을 다 지키고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 삶의 압박이 있다. 그러한 어느 시점에서.
생활의 추구와 막힘, 그리고 관계의 결핍이나 단절 등으로 인생이란 씨실 날실이 어떤 암담한 빛깔을 만들어낸 지점에서, 자타 모두가 아직 생명이 있는 당신을 이제 전혀 희망 없는 늙은이로 단정 지을 때.
그녀는 플랜 75에 가입한다.
그리고 전화상담원의 서비스에 진심을 다해 감사한다.
"이 할머니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담원과 마지막 통화, 예정된 죽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그녀는 수화기를 내리며 허리 숙여 인사한다.
"사요나라(안녕)."
* <플랜 75>, 인생과 사회, 노령의 현실 등을 생각해 보게 한 일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