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따뜻한 손

by 새벽종 종Mu
길모퉁이의 작은 동화ㅡ 고대 앞 골목길에서

나이가 지긋한 여자분에게 꼭 할머니라고 칭호를 붙여야 하는가.

여사는 어떤가, 혹은 씨라고 통일? ㅁㅁ 여사, 어딘가 딱딱한 맛이 있다. 또 ㅁㅁ 씨라고 하자니, 고령자로서 존중하고자 하는 인정 면에서 저어되는 감이 있다.


그럼 할머니라 쓰지 뭐. 무엇보다 친근한 느낌이잖아. 또,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그런 어원의 이미지도 좋고... 우리들이 상상하는 어머니보다 어딘지 더 크고 더 넓다고 만인이 인정한 이 할머니란 의미를 굳이 안 쓸 이유도 없는 바...

(*나 자신도 이제 할머니라 불려도 할 수 없다고 여길 만한 나이지만, 그렇다고 덥석, 네, 저를 할머니라고 불러주세요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 그래서 더욱 누군가에게 할머니란 호칭을 붙여드리면 혹시 실례가 아닐까 망설이곤 하지만, 아직까지 달리 대체할 만한 적당한 칭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적당히 혼용하려 한다. ㅁㅁ여사,ㅁㅁ씨, ㅁㅁ할머니 등, 글의 상황에 맞도록 말이다.)


오늘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모르는 할머니 이야기를 써 두고자 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나는 28,9쯤의 아가씨, 한 겨울이었다.

세운 전자상가에서 휴대용 마이크를 사려다, 무슨 이유에선지ㅡ 휴대가 불편하거나 금액이 높거나여서가 아니었을까,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귀가하는 길, 지하철 안이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나는 마이크를 계획대로 사지 못했음에 크게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샀으면 내일부터 당장 쓸 수 있고 그럼 좋았을 텐데... 휴우, 어쩌지. 수업시간에 목소리가 작으면 안 되는데...


걱정거리를 해결하려고 모처럼 외출했는데, 하필 그날따라 날씨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폐결핵, 폐에 물이 찼어요. 교단의 분필가루가 한 원인일 수 있다고 하여 병가를 내고 쉬기도 열 달. 그래도 완전한 회복까지는 더딘 법인지, 항상 기운도 없고 숨이 차서, 목소리가 작은 선생님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 설명이 잘 안 들려요.

멀리 뒤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하는 말,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휴대용 마이크를 사고 싶었던 건데...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찾아간 곳에서 답을 찾지 못했으니 걱정이 더 커진 셈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추워 보였던 것은.


"손을 이리 내시우. "

이것은, 내가 서있는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가 내게 하는 말이었다.

"추워 보여서... 내가 손을 잡아 주고 싶어 그러우."

처음엔 내게 말을 거는 줄도 몰랐다.


전철 안이 만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모두 외투를 껴입어 서 있는 자리도 크게 여유롭지 않았다. 지친 몸으로 서서 가야 하니, 더욱 우울했을 나. 어쩌다 할머니 부부 앞에 서 있었지만, 그런 것에 주의할 여유도 없이 내일도 마이크 없이 수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침울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뇌의 한 편에서는 손이 시리다는 느낌을 감지하는 중이었다.

손이 몹시 시린데... 전철 안인데도 왜 이리 안 녹지?

언 손에 대하여 혼자 오락가락 반복하고 있었을 의문. 절대 입밖에 낸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내 손이 찬 걸 어찌 알고?


"저런, 아가씨 손이 정말 차구려. 저쪽 손도 줘 봐요."

내 손을 양 손으로 그러쥐고 따뜻하게 데워주는 할머니의 온정이 훈훈하게 전달되어 왔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은 할아버지의 묵묵한 동조 또한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옆으로 자리가 하나 났다.


"당신이 저리로... 아가씨 여기 앉으우. "

할머니는 나를 곁에 앉게 하더니, 조용히 내 두 손을 계속 그러쥐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에 내 손을 녹이며 앉아 있었던 시간까지, ㅡ아마 두세 정류장까지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누가 먼저 내렸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누군가 한쪽이 먼저 내릴 때까지 말이다.


내가 만난 할머니 중, 가장 온화하고 가장 상냥한 모습의 기억을 심어준 할머니다.

이름도 모르는 채, 거의 삼십 년의 시간 속에 흰 눈 내리는 날에 내 앞에 사붓이 내려와 준 천사처럼 새겨진 이 세상 고운 맘 하나.


그녀가 할머니여서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그녀가 할머니라서 내 손을 내맡길 수 있었지만,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이렇게 자연스럽고 맑은 상냥함을 지니고 사는 건 아니다.


타인과 자신의 경계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는 오늘날, 모처럼 친절도 무안해지기 일쑤다.


그렇긴 하나, 해마다 겨울이 되면 길을 걷다가 문득 손이 시려우면, 그날, 이름도 모른 채 찬 손을 잡고 따뜻이 녹여주던 그 고운 마음이, 할머니란 칭호와 함께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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