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마로니에 공원의 비둘기

by 새벽종 종Mu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ㅡ11월17일 오후

혜화역에서 만나죠.

C 씨와의 특별한 만남이 준비된 오후 1시.

하긴 특별하지 않았으면, 오늘 같은 날 사람 만날 약속은 하지 않았을 것.

사흘 만에 감기는 내보냈지만, 아직 기운이 없다.


그러나 C 씨를 이번에 꼭 만나야 한다.

대화의 시간이 모처럼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로니에 공원.

흐릴 것처럼 보이던 하늘에 어느새 해가 나오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우리 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로니에 공원의 가을 한낮

그리고 지난 얘기. 나는 이러이러한 뜻으로 말했다. 네가 한 말은 저러저러한 뜻으로 들렸다... 등등. 크게 유감이랄 것도 없는 소소한 어긋남이지만, 오늘 꼭 털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그날 그때의 충돌.


멀리서 봤으면 엇비슷한 연배의 나이 든 두 아주머니가, 나무 아래 벤치에서 만두를 먹으면서 재미나게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긴, 비둘기 녀석들도 그랬다.

날개를 접은 두어 마리, 슬그머니 가까이로 오는 중이었다.

"분명 뭐라도 얻어먹겠는 걸!"(비둘기 녀석의 안테나.)

두 사람 가운데에 하얀 스티로폼 도시락, 그 안에 담긴 탐스런 만두와 빵. 그 놈들, 먹성 좋은 비둘기 녀석들이 한눈에 포착했던 것이리라.


나는 으레 , 공원에 비둘기 몇 마리쯤, 이라고 여기고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C 씨가 갑자기 하던 말을 끊고,

"저 녀석들, 얻어먹을 게 있나 하고 기웃거리는 것 좀 보게!"

라고 주의를 돌렸다. 그제서야 나는, 아아, 그렇지, 공원 비둘기들이 대체로 그런다지... 하며 눈을 돌려 가장 가까운 비둘기를 내려보았다. 그리고 그 녀석과 인사라도 나누듯이 물었다.


"그랬니? 지금 뭐 좀 먹을까 하고 온 거야?"


그랬더니, 방금 전까지 우리 둘의 발치 쪽을 향해 직진해 오던 그 용감한 놈이 바로 발길을 돌리고 뒷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너 부끄러워하는구나, 괜찮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한번 더 불러줘도 서두르듯 멀어져 간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표현한 비둘기 한 마리를 새로 기억에 새기며, C 씨가 다시 이어서 말하는 거에 나는 또 대답하고, 내가 참지 못하고 또 한 마디 하면 C 씨가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정리하고... 두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만큼씩 서로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일어섰다.


C 씨는,

우리는 역시 평행선이군요.

두 사람의 관점이 하나로 합치되지 않고, 여전히 각각이라는 것에 화가 다 눅어지지 못한 표정.


여기에 내가 대답한다.

관점이 다른 채라도, 이렇게 만나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셨으니, 이 또한 "진전" 아니냐고요.


당신은 이런 걸 진전이라 말하는군요.


누그러진 어조로 좀 어이없다는 미소를 흘리는 게 느껴진다. 내 옆을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동안 수많은 학생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제 받은 또 한 장의 캉롱 사진. 내 인생에 만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천사

사실 C 씨는 내가 올해 서울에서 만난 이 중, 누구보다도 자주 그리고 많이 나를 칭찬해 준 사람이다. 나이로 따지자면 큰언니 뻘이라 할까, 나보다 연장자로서 당연한 내리사랑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녀가 나라는 상대의 장점을 일일이 열거해 줄 정도가 되었다는 건, 순전히 C 씨가 가진 관찰력이며 타자에 대한 관심이 8할의 작용을 했다.


그렇게 엮어진 70대와 60대(59살이면 60대)의 우정이지만,

논리와 감정은 제각각,ㅡ거기다 판단 속도도 한껏 느려서,

서로가 너무나 많이 다르다는 걸 수긍하는 이 단계까지도, 사실은 열 달의 고심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


열 달의 시간, 소중한 것은 바로 이것...

그렇지 않나요?


비록 이 깨달음을 직접 말로 묻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 언어도 가끔은 제 소리를 전하고 있는 건 아닐지... 침묵은 풍경 속에, ㅡ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한 줄기 뻗어있는 거기. 붉은 벽돌 건물에 담쟁이덩굴은 덩굴대로 보기 좋게 담장 위로 물을 들이고 , 그 앞에 한 그루 은행나무 잎들은 가을날 아쉬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노오란 등불처럼, 보는 사람 마음까지 환하게 비추며 서 있었다.

*가을에 마음을 얹었던 공간, 겨울 날에 다시 지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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