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남산 산책로

by 새벽종 종Mu

여기서 영화도 찍었어요.


조카가 시청에서 일한다는 걸, 옛날 안기부 건물이 조카의 일터라는 걸, 언니와 함께 남산 올라가면서 처음 알았다.


참으로 입이 무거운 언니다!


그 날, 조카 소식을 알 때까지, 시청이라면, 남대문과 광화문 중간쯤에 지붕이 독특하고 앞에 광장이 있고... 나는 시청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여기야?

숲 속의 별장 같은 이곳에서 일해?

우리 조카 복도 많구나.ㅡ 얼마나 늦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속으로 한껏 축하했다. 왜 아닌가. 서울서 가장 유명한 산이라는 남산을, 국내외 여행객들이 한 번은 들러가는 이곳을, 숲도 산책로도 너무나 잘 가꿔진 이 공기 좋은 곳을, 근무하면서 사이사이 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복이 아니겠는가.


조카가 점심시간에 한 바퀴 걷곤 한다는 둘레길.

한정된 시간이지만 숲을 산책하다 보면, 그야말로 이게 힐링이구나 하고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고.. 그런 말, 서울서 나고 자란 조카의 입에서 듣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산모롱이 어디쯤인가에서,

이모, 솔잎이... 솔잎향이 좋죠?

걷고 있는 발아래 부슬부슬 깔려 있는 솔잎을 보며, 나는 예사롭게 여겼다. 비탈에 소나무들이 있어 바람에 날린 건가?

아니, 이모. 이쪽 위는 소나무 없어. 일부러 뿌려준 걸 거야.

첨엔 그게 뭔 말인지, 한 귀로 새어나가게 둘 뻔했다.

이게 바람에 떨어진 게 아니라, (공원 관리 측에서 ) 산책하는 시민들을 위해 마른 솔잎을 길 따라 살살 뿌려둔 거라고?

두어 걸음 더 걷고 난 뒤에야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조카가 시청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점심시간이면

매일처럼 둘레길을 걷는다는 말만 아니었으면,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어도, 정말 많이 달라진 거구나!

60년대 출생한 내가 청년기였던 80년대 서울의 기억을 더듬으면,ㅡ낙엽은 쓰레기와 같이 치워지는 것. 심지어는, 청소하고 지나간 뒤에 뒤늦게 한 잎이라도 낙엽이 뒹굴게 될까 봐서, 상사가 그걸 보고 담당구역을 게으르게 청소했다고 추궁할까 봐, 낙엽철만 환경미화원들은 미리 나무 기둥을 털기도 하는 둥 보이지 않게 골머리를 앓는다는 신문기사도 읽은 적 있다. 이것이 내가 아는 공공 행정 속의 "도시의 낙엽"이었다. 그때는 정말, 학교 교정의 화단 위 낙엽조차 보기 싫다고 쓸어내라 명령하는 교장선생님도 많았다.


그랬어, 그때는.

그런 기억을 새삼 떠올리니, 낙엽이 떨어지는 대로 놔둔 눈앞의 둘레길이 다시 보인다.

낙엽을 밟는 이 여유만으로도 고맙다. 그런데, 더하여 솔향기를 선사하기 위해 산책로에 마른 솔잎을 뿌려놔 준 거라고...?

정말, 이렇게까지 섬세하단 말이야?

가시는 걸음걸음... 꽃을 뿌려 드리겠다는 김소월 시인의 시구가 절로 생각난다.


그 시를 배우던 국어 시간, "산화"(散花)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그 낱말 하나로 하여, 귀한 이의 발길 위로 꽃을 뿌리는 이국의 아름다운 풍속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깊어가는 가을 오후에 서울의 남산에서 그 비슷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살큼 감격시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단풍길을 걷고 며칠인가 지나서.

잎들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한번 더 단풍 보러 오세요.

좋지.

이러며 약속을 잡았는데,

막상 그날은 조카의 맏이가 열이 났던 관계로 연기. 그다음 날짜를 잡으려는 걸, 내 컨디션이 별로인 걸로 다시 연기.

우리 모두 건강에 조심해야 해요.

맞아 맞아.

감기는 만병의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금년 2020년엔 특히 감기조차 무섭다는 게 사람들 말이다. 내 몸에 감기 같은 일상의 질병이 발생해도, 당장 의료진이 이 증상은 코로나 19와 전혀 무관합니다라고 밝혀주지 않으면, 스스로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자칫 불안해지는 요즘이다. 조카도 아이를 데리고 검사받는 하루는 바쁘기보다 긴장되고 그랬지 않았을까.

음성이래요.

문자 메시지가 안심하라는 신호였다.

소동이 있은 다음 날이던가, 다음다음 날이던가. 문득 사진이 한 장이 날아왔다. 남산 둘레길, 조카는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날처럼 처음엔 또 예사롭게, 단풍숲 아래 낙엽, 건성 계절감이 주는 이미지만 새기고 넘겼다. 그러다가 하릴없는 자투리 시간에 다시금 꺼내보니 그제야 유달리 가지런한 낙엽길쪽으로 눈길이 모아지는 것이다.


바람이라면, 낙엽을 황톳길 위로 이렇게 고이 모아놓지 못할 것이다.


머리 위로도 발밑으로도 알록달록 이쁜 단풍길을 걷고 어요. 사진에 실어 보내는 조카의 속삭임이라도 들리는 듯, 숲길의 가을 정취에 빠져들어 보고 또 보았다.


누군가 마음을 다해 가꾸고 있는 여기가 배려의 길, 마음의 길이겠지.


조카와의 산책이 없었다면, 솔향을 맡아보라던 조카의 알림이 없었다면, 남산 산책로가 왜 그리 사람 마음을 끄는지, 다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풍경에 잠겨들면 들수록, 서울이란 도시가 감동의 세계로 다가왔다.


이 도시를 어쩜 좋아. 너무도 시적(诗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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