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가 고향이라니 그녀를 나주댁이라 하자.
나는 전주댁이라 하고.
나주댁의 가게는 조그만 스테이크 집.
시장 가는 길에 유리문 안으로 그녀가 보이곤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각엔 탁자 앞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고즈넉해서, 좀이라도 안면이 있었다면 문을 밀고 들어가 말이라도 나누었을 것이다.
한 번쯤 들어가 볼 곳이다.
그렇게 맘에 두고는 있었지만, 어떤 때는 좁은 실내가 가득하게 손님이 차 있기도 해서, 언제 문을 밀고 들어갈지,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매장 안엔 그녀와 나, 딱 두 사람.
나는 앉았고,
그녀는 움직인다.
물을 가져다주고, 그다음에 소스와 무절임을 가져다주고, 주방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무심코 찍었지만 아마도 성당건물인 듯,중곡역스테이크라...
편의점 인스턴트식품을 빼면 꽤 오랜만이다.
내 취향이 굳이 육식이어야 하는 것도, 굳이 서양식 요리여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드디어 네모진 식판을 옮겨다 준다.
이 돌판은, 손님 취향에 맞게 더 구워드시라고... 뜨거워요.
아, 네. 나는 완전히 익힌 걸 좋아하는데... 고기를 통째 올려놓나요?
아뇨. 나이프로 썰어서...
듣자 하니 재밌어졌다.
분명 도시의 식당 안인데도, 기분은 야외에서 캠핑이라도 즐기는 듯.
뜨거운 돌 위에 스테이크를 조각조각 얹어 놓고, 속 안의 육즙이 골고루 구워지도록 다시 뒤집어 놓으며 바쁘게 양 손을 움직이노라니... 만사 제치고 먹는 작업에 열중할 수 있다는 그 평화로움이 좋았다.
고기 자르랴 구우랴, 좀 바쁘지요?
그녀가 한 칸 건너 앉아서 말을 걸어온다.
재밌어요. 이 가게 오래되었어요? 내가 여기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
1년쯤 되었어요.
원래는 치킨 가게를 차리려고 했던 건데, 이 가게의 전주인이 스테이크 조리법을 전수해주고 떠났단다. 그래서 스테이크 전문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한두 마디 오가다가 그녀의 고향이 나주란 걸 알았다.
나주요? 영산강 포구 보러 딱 한번 놀러 간 적 있어요.
강이 이젠 없어요. 예전의 강폭에 비하면 물이 흐르는 것이 개천만이나 할까... 강물이 다 줄어서...
영산강 얘기다.
전주댁은 옛날이라면 영산강에 감히 댈 수 없을 '전주천'(全州川) 얘기를 한다.
전주는 강도 아닌 하천 하나 있는데요, 그 물이 콩나물한테 좋은지, 전주 콩나물하면 알아준대요.
중곡역 앞을 지나며 그런데 호텔에서 먹을 때도 이런 돌판 못 봤어요. 더 구워달라면 웨이터가 다시 가져가서 구워다 주던데... ( *호텔에서 먹은 스테이크 얘기는 대학졸업 직전 사은회 때를 기억해낸 것이다. 그때는 다들 안에 핏기가 남아있는 스테이크에 놀라서 더 구워주세요,하며 웨이터 걸음을 바쁘게 했다. )
손님이 멀리서도 오시고 그러겠어요.
아주 멀리랄 것은 없지만 먹어 본 분이 소개해서 오시고 하다 보면...
멀리서 오는 손님 얘기에서 나주댁은 그리운 마음에 잠기는 듯 ㅡ
상계역 어디께에 사신다는 70을 넘기셨을까 말까 한 부부신데, 매주 수요일이나 목요일 오후 5시 쯤에 오시곤 하였어요. 두 분이 함께 여기저기 좋은 곳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그러신다는데, 맛있는 거라며 오는 길에 내 몫도 따로 샀다고 갖다 주시고, 내가 바쁘면 손수 식탁차리는 일을 거들기도 하시고... 일 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면서 꼭 들리셨지요.
그런데 가을 되고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안 오시네요.
좋은 일이나 바쁜 일로 못 오신다면야 상관없는데,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어지간하면 꼭 들리실 분들인데 전혀 소식을 모르니... 혹시 코로나19때문인가, 걱정도 되고 그러네요. 아무래도 연세도 있고 하니까...
아이, 좋은 일로 시골 농장에서 한껏 쉬다 오신다던지 뭐 그럴 수도 있지요.
......
정기적으로 들르던 노부부라서, 아무 연락도 없이 한 달이 넘도록 오질 않으니 사뭇 걱정이 넘치는 나주댁. 거기에 기름을 부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전주댁은 애써 밝은 상상을 보탠다.
혹 누가 아는가.
코로나 19에, 직장인도 아니고 서울 거리만 뱅뱅 돌 거 뭐 있냐고. 홀연 산 좋고 물 좋은 그런 전원으로 떠나서 그곳의 태양 아래 맑은 공기 호흡하면서 퇴직자다운 안일을 누리고 계실지...
그래도, 다음에 오시면 전화번호를 알아놓으셔요.
그래야겠어요.
꽃카페 앞에 내걸린 화분들, 연지공원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