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 이름은 덕릉로.
주소를 불러주면 열이면 열 모두 못 들어본( 이름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내가 읽어주는 주소를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덕릉로ㅡ라고 하면,
네?
덕택 할 때 '덕'에 왕릉 할 때 '릉'요.
아아, 네에.
하긴 나도 처음 들어본 '능' 이름이라, 따로 검색해 보았는데, 조선 시대 선조 임금의 부친을 모신 묘소라고, 왕족이긴 하나 본인은 왕이 아니었다고.
암튼, 덕릉로에는 이리저리 골목길이 많다. 그 한가한 오후,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걸어봤는데... 동네 안에 생각보다 카페가 많았다.
덕릉로에 이사 와서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된 카페는 "카" 뭐라고 시작하는 이름의 카페.
주택가를 낀 골목길이 상가와 이어지는 절충 지대에 있는 아 카페는 집에서 평소 걸음으로 5 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7월에 이사 오고 8월에 나름 단골처럼 그곳에서 논문 한 편 마무리했으니... 속으로 정이 들었다. 거기엔,
오늘도 '카페라테' 드실 거죠?
주문을 받기도 전에, 상대방이 나의 메뉴를 기억해주는 것에 감동받은 마음도 있었다.
내 입맛을 기억해주는 친절한 카페지기, 사실은 그가 아르바이트생인 줄만 알았다. 20대 나이의 알바생이 많아서 으레 그럴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래요오? 직접 운영하는 거라고요?
11월인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사장이라면 걱정이 많겠는데...)
부쩍 한산해진 가게 안을 둘러보며, 갑자기 책임을 나눠지는 기분이 되었던 순간.
그렇다고 따로 나눠진 짐이 있을 리 없다. 그냥, 나의 이웃인 카페지기가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며 살았으면 ㅡ하는 막연한 바람 같은 거, 내 가슴에 맴돌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름 한 고비를 넘기곤 특별히 집중할 작업도 없어서 카페를 향한 내 발걸음은 오히려 뜸해졌다. 그러니, 카페지기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과거의 단골이었을 뿐이다. 가으내 나는 오다가다 그저 안부인사를 묻는 동네 어른이었을 것이다.
불이 켜진 유리벽 안으로 카페지기가 보이면, 내 귀에 들리는 소리.
저는 여전히 잘 지냅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코로나 시국에 12월이라고 영업이 호전세로 돌 리 없었지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왠지 대견했다.
덕릉로에서 처음 단골을 자처했던 가게라선가. 이렇게 스치듯이나마 불빛으로 마음이 기뻐지곤 했다.
나도 안다. 나이가 젊은 카페지기는 내 이런 마음 이해 못할 것임을. 혈연도 무엇도 아니면서 내가 그에게 가지는 이런 식의 관심에 무심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안다. 굳이 설명하자면 나이 든 사람에게 있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저절로 생기는 정 같은 것이다. 보아하니 카페가 청년의 첫 창업 같았기에ㅡ 그 첫 발걸음에 어떻게든 배움과 보람이 생기길 응원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이제 휴업해요? 지나다가 보았는데 가게에 불이 꺼져 있네요?
지난주에는 저녁 일찍 불이 꺼진 카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아, 네에. 집에 일이 생겨서요...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골목 어귀에 항상 제 시간에 불을 켜고 끄던 카페지기였던 걸 생각하면...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아, 곧 연말인데...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서,
그렇군요. 문 열면 연락 줘요.
정말 연락이 왔다.
오늘 문 열어요.
문을 연다는 소식 자체가 정말 반가웠다.
그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주어야 할까,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미미하여서, 카페지기 또래의 후배를 특별히 부르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 카페에 데려가 주겠노라고.
후배 둘이 바쁘다면서도 달려와줬다.
일부러 청년 후배를 불렀던 이유라면, 같은 청년으로서 지구적 전염병 사태에 지구 경제까지 얼어붙은 이 시국에 이심전심일 것 같아서, 그저 눈빛만 교환해도 힘이 나지 않을까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보는 사이에, 카페지기와 두 손님 청년이 무슨 얘길 나눌 것인가...어색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21세기 개인주의적 사회분위기 속에 성장한 세대들이, 테이크아웃만 되는 연말의 방역 상황 아래서 말이다.
내 오지랖이 충동적으로 그려놓은 '격려'라는 큰 그림은 이런 현실적 제약을 어찌 극복할지?... 청년을 부르고 카페에 불빛을 확인하는 일련의 소소한 과정이 조심스럽기도 했다.
이분은 고시생, 이분은 연극인.
아아, 네에ㅡ.
마스크를 쓴 채 눈만으로 인사하는 안면 트기가 다였지만, 사실, 오늘 카페에 와 준 청년 하나는 고시촌에서 고시공부 중이라서 왕복 3시간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극무대에 선 배우이지만 예술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큰 주제를 고민하면서 직장에 다니니 점심시간을 이용한 외출시간이었다.
이런 사실을 다 알았다면 좀 더 허심탄회해졌을까? 모를 일이다.
나는 원래 내 손님들에게 미국산 수입품인 사과주스 한 병씩 권하고 싶었는데, 겨울이라선지 둘 다 따뜻한 음료를 원했다. 그래서 나까지도 따뜻한 음료를 시켜서, 종이컵 하나씩 받아 들고 카페를 나왔다.
바람이 찬 날, 걸으면서 먹는 바닐라맛 카페라테는 살짝 쓴맛을 내는 깊은 단맛으로 은근 괜찮았다. 맛있는데요!
청년들과 헤어지기 전 초록불을 기다리며, 눈앞의 가로수를 올려다보았다. 활엽수인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담아 시원스럽다. 커피 한 잔으로 먼 길을 다녀가는 청년들 뒷모습도 어찌 보면 시원스럽다.
모두 내일의 하늘로 힘차게 솟아올라라 ㅡ내 방에 돌아와 두 손 모아 기원하는 나.
해가 지고 등불이 밝은 카페 안, 카페지기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손님이 하나씩 들어와 그를 바쁘게 하고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카페 부근 큰길 횡단보도에서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날씨가 추우면 추운대로 견디고 있는 나무에게 한 수 배우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