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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얼굴 좀 보자는 전화.
시간 되니?
전화받은 시각에서 딱 1시간의 여유. 상황은 지난밤 읽던 책 나머지를 마저 읽느라 새벽 늦게 잠들어서 지금은 상쾌한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새벽녘 야참 먹은 게 아직도 더부룩하다.
그래도 그까짓 이유로 만나길 거절하면 내가 인간관계에 너무 게을러 보일 것이다.
시간 괜찮아. 부지런히 달려가지 뭐.
나는 촉박해진 마음을 달려간다고 표현했는데, 전화선 너머에선 아예, 제시간에 늦지 않게 나오라고 당부까지.
난 기다리는 게 싫다. 기다린다는 가설만으로도 짜증이 나버리는 전화 저쪽의 목소리.
휴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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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 가슴이 엄청 설렌다는 표현의 유행가 가사를 열심히 외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설렘은 미루고 약속 시간 맞추기에 온 마음을 쏟았다.
다행히 버스도 제 속도로 와 줬다.
걷는 길도 복잡하지 않다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된다.
약속 장소의 간판이 건너편에 보인다.
딱 3분 전.
안심이다.
그 순간 버려진 낡은 의자 하나가 바로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이 의자에 앉았던 이, 그의 중얼임, 의자의 서술...
한 순간이 길고 긴 실타래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서 풀리고 감겨진다. 마치 언젠가 펼쳐볼 소설 이야기처럼.
누구의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