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교사와 목수, 측량 기사를 하다 1845년 28살의 나이에 월든 호숫가로 간다.
청년으로서 제대로 의미를 음미할 수 없는 그런 잡다하게 덧붙여진 삶이 아닌, 참삶이 가진 진면목을 오롯이 마주해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호숫가에 혼자서 세운 오두막, 그 안에 들인 나무 침대 하나, 나무 책상 하나와 의자 세 개, 나이프, 포크, 접시 두세 개ㅡ그것으로 다인 살림살이, 나머지는 그의 철학적 사색으로 채웠다.
동대문 성벽 아래 박힌 성벽 축조에 참여한 선인(先人)들의 이름
"간소하고 간소하라!... 단순하게 살수록, 그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정신적 넉넉함, 소로가 실현한 삶은, 안타깝게도 당대의 사회 조류를 역행하는 것이었다. 소로가 보여준 삶은, 더 많은 소유를 꿈꾸며 물질문명에 환상을 갖고 집착하던 동시대인들에게 환영받기는커녕 이단으로 몰릴 정도였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철학도 없이무엇인가에 추종하고 국가의 도구가 되는 걸 당연시하기 이전에,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음을 자각하길 바랐던 소로.
"삶을 사랑하라.
황혼 빛은 부잣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집 창문도 다사로이 비춘다. 또한 초봄이면 가난한 집 앞에 쌓인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넉넉하며, 너그러이 누릴 수 있으리라."
소로가 주장하는, 우리 생명의 본원적인 고귀함은 어쩌면, 대우주를 기반으로 나 자신의 내적 우주와 대우주라는 외적 우주와의 연결과 교류를 뜻하는 것 같다. 그러니, 삶이 기쁘지 않을 수 없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축복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우주의 사실과 우리 자신을 연관 짓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정기(正气)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동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로의 사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도, 소로는 20세기 인권과 환경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그리고 한국에 " 무소유" 운동을 제창한 법정 스님 역시도 소로의 사상과 실천에 맥이 닿고 있다.
창경궁 홍화문,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본다
한 청년의 위대한 실행이었다.
소로의 위대한 사상은, 소로의 행동을 통해 창조되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어떠한 그럴듯한 사상도, 그 사상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거짓 사상이거나 지식의 허위일 뿐이다. 현대에도 우리 사회에 수많은 지식인이 있고, 그들의 문장과 육성이 크게 다가오는 바이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그들의 언어가 그 삶에 실천되어 검증된 것인가이다. 이 점에 모호하다면, 그들이 설혹 내 부모라 해도 나는 설혹 효자 효녀의 길을 가고자 해도, 그들의 주장에 무조건 따를 의무가 없다.
수백 년의 서구식 근대화란 세계 역사의 배경을 뒤에 깔은 채영국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집단. 그들의 의지로서 새롭게 독립한 아메리카합중국. 이제부터 강성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기개로, 자연을 파괴하고, 원주민을 차별하고, 노예를 짐승처럼 부리고...
이러한 역사 흐름을 한꺼번에 초월이라도 할 것처럼, 19세기 중반 신세계 북아메리카 대륙에 '미국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이 역사적 전환기에 위대한 정신의 거장들이 과거의 사슬을 끊고 미래로 웅비한다.
철학자 랄프 월도 에머슨이, 그의 제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시인 월트 휘트먼이 바로 그들이다.
(*소로와 미국 르네상스에 대하여 참고 및 인용: 변택주"간소히 살라.단순해질수록 가난하지 않다" 책"불교로 읽는 고전문학"중에서;책 "나만의 월든 ㅡ미국 르네상스에 대한 동서양의 대화"(캠브리지 출판사 번역본, 단 한국어본 아직 출간하지 않음);책"우주와 지구와 인간"
부모의 몸에서 태어난 아기, 이렇게 누군가의 아들로 보았을 때 혁신적인 사상가들 대부분은, 부모의 인생 깨달음의 수준을 일찌감치 깨부수고 한없이 멀리 앞질러간 이들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나의 자녀 혹은 손아래 친척이라 하여도, 나 나름 인생 지혜가 적지 않다 하여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 사색에서의 우월성은 절대 나이순이 아니다.즉 내가 모아둔 바가 다가 아닌 것이다.
강아지와 아기도 엄마와 함께 하는 외출이 즐겁다. 종로5가 건널목에서
그러니 나는 권하고 싶다. 자녀를 진정 성장시키고자 소망하는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에게 자신만이 모범인 듯 과장하지 말라고. 청년을 내 앞에 앉히고 훈계할 생각일랑 아예 내려놓으라고. 그럴 힘이 있으면 차라리, 청년과 함께 더 큰 스승을 찾아 떠나라고.
구하는 마음만 있다면, 책이 되었든, 실존의 현자가 되었든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이 생에서, 추구한 바에 대한 성취와 만족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노하우가 곧 삶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 연결될 수도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인간다움의 궤도, 그 길 위에서의 전진에 가치를 두어야한다는 점이다.
고귀한 존재, ㅡ즉 한 사람의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동은 결국 누가 보든 안 보든 쉴 새 없이 자신과 투쟁하여 자신에 승리하는 일점에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삶은 안주(安住)가 아니다.남녀 혹은 부자(父子), 세상 어떠한 관계도 결국
미래라는 방향으로 함께 전진하는 그 보폭 위에서 건설될 뿐, 누구도 서로 마주본 채 정지하여 여기 머물자 할 수 없다.
인생 무상( 无常) 이란 감상을 떠나 외적 우주와 내적 우주가 서로 공명하는 '생명의 운행'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우선 '쉼없는 전진'이란 대전제 위에서 조람해 나가야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