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편지를 쓴다

마음 그 자체가 '문화'

by 새벽종 종Mu

아들과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 들렀을 때는 작년 2월.

겨울 날씨지만 햇살도 밝고 대기도 쾌청했다.

태평양으로 이어진 해변도시여서 그런가...

허난설헌은 바다 내음을 맡으며 자랐겠구나. 그녀의 시세계(诗世界)가 어딘지 막힌 데 없고 광활한 느낌을 주는 건, 소녓적 바다를 품고 살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타자기

그곳 솔밭 가운데에서 한지공예가를 만났다. 공예작품들을 한옥 건물의 자그만 방안에 전시하는 중이었는데,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등롱이며 반닫이며 전통 색감이 입혀진 하나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시장이라지만 이른 시간이라 우리 모자 외에

관람객이 없었던 터, 경탄을 못 참은 나는 공예가를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공예가도 하냥 친절하여, 묻고 답하는 자리가 마치 잡지사에서 인터뷰라도 마련한 것처럼 내용이 알찼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녀가 어떻게 종이공예가가 되었나란 내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간추리자면, 처음에 평범한 주부로서 종이공예란 것에 우연히 끌려서 취미 삼아 배우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파고든 것이 어느덧 한 사람의 작가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은 이렇게 모두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 그 아름다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스스로 창조자가 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경험담까지 들었던 그날의 오전, 나는 난생처음 서양식 브런치라는 걸 먹게 되었다. 아들이 모처럼 엄마와의 여행을 기념하고자, 해변에 있는 멋진 레스토랑을 찾아 주문해 준 것이다.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브런치란 말이지?

아들의 얇은 지갑에서 나가는 싼 음식값이 내심 애석하였지만, 이국의 음식문화에 반가워라, 하며 포크 먼저 들고 보았다.


좋구나.

집에서 지난 저녁 남은 반찬으로 대충 때우는 내 식 '아점'(아침 겸 점심)과는 많이 다른, 어딘가의 저택에 사는 귀부인이 늦은 아침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아한 자태로 앉아 누리는 상큼한 식탁, ㅡ푸른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강릉 여행길에 누렸던 잠시의 사치였다.


그렇게 행복했던 '브런치'가, '브런치'매거진이란 앱으로, 이렇게 SNS를 통한 언어의 식탁으로 나의 가을에 찾아왔다. 처음엔 뭐지, 하는 호기심이다가 점점 기대보다 풍성하다는 사실에 놀라는 요즘.


어렵게 만난 것도, 화폐를 지불하는 것도 아닌데, 늦가을 무렵 내가 누리는 이 조용한 호사(好事)는 웬 일?


처음에 이 "브런치"매거진에 손을 내민 이유라면, 10월 어느날 본 공모 때문이다. 한 주제로 10편 이상의 작품으로 심사에 통과하면 성탄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발간해 줄 수도 있다. ㅡ뭐 내 눈에 이런 식으로 읽히던 원고 공모였다.


만약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두 달 안에 집필에서 출간까지 다 되는 것 아냐?


나 같은 '염불보다 잿밥'인 사람은 이런 가설을 절대 그냥 못 지나친다. 0.0001의 준비조차 안 된 상태라 해도 그 유혹적인 행운의 결과에 우선 덤비고 본다. 10월 말 당시로 보아 12월 연말까지 최단기간에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모른 척 지나간단 말인가.


그래서 너는 어찌했느냐고?

마감까지 작품 수 10편을 채우지 못했다. 지원 자격에 미달이었다. 마감 직전에 포기한 셈이다. 외에 마감에 임박하며 절감한 현실적 취약점도 있었다. 나는 응모자가 되기엔 SNS 친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혹시 막판에 10편을 채울지 몰라 사전에 몇몇 지인에게 좋아요를 눌러달라 했는데, 그 몇몇마저도 거의 무반응이었으니...


그러고 나서 어찌 되었냐고?

당연한 얘기지만, 연말 단행본 출간 프로젝트에서 일단 제외되었다. 그러면 며칠 써놓은 거 내 문서 파일로 옮겨 저장해두는 게 나을까, 고민이 되어 물어보니 출간작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지면을 채워갈 수 있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따로 파일을 만드는 수고를 생략하고 , 이렇게 브런치에 한 편 두 편 글을 올리면서, 종이를 떠난 면에 글쓰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어제까지 대략 20여 일.

중간 결산하자면, 산문이 스무 편을 넘겼으니 하루 한 편 꼴, 글 친구는 아직...


많은 작가들이 몇 십도 아닌 몇 백 몇 천의 구독자를 가진 건 어마어마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마음 상냥한 조카가 있어 구독자 0을 면한 것만도 감사하다. 0은 무, 1은 유(有),0에는 무슨 수를 곱해도 0이지만, 1에서는 어떤 수도 곱해져 나올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나는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이십 여일 동안 느낀 소감을 다섯 가지 정도로 적어두고자 한다.


하나, 이번 산문의 주제인 "100세 시대"와 관련하여서 발견한 점: 먼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 쓰였던 나의 모친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소한 관심이 반복되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긍정적 변화가 일어난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생활조건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노령자는 심리적으로 보다 쉽게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여기에 타자의 관심은 물론 스스로의 일상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


둘, 이번 글쓰기의 개인적 목표로 명시한 바, 글을 통한 " 연결"에 대하여: 브런치 앱 안에서 누군가와 뚜렷한 연결고리를 맺었다고 얘기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그날그날 라이킷의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가정 혹은 직장의 경험이나 구직이나 퇴직 이후, 혹은 인생의 절망이나 성취 전후에 대한 진솔한 토로도 좋고, 다른 나라의 고적지에서 연구자로 일하는 상세한 기록물도 좋고, 귀를 열고 들으면, 이야기는 역시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성장시킨다는 깨달음; 또, 개인적으로 가장 뚜렷하게 하나 밝히자면, 내 글의 제1의 구독자를 자처해준 조카와 새롭게 생성한 연대감, 조카는 이후 지금의 교류를 근거로 스스로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런 확장이 좋다.


셋, 내 경우엔 11월 어느 날부턴가부터 마음 턱 놓고 브런치에게 임무를 하나 맡겼다고 할 수 있는데, 브런치에게 부탁한 임무란 다름 아닌 1일 1편 글쓰기를 감독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쓰고 내가 감독하는 것이지만, 브런치에 내 지면이 있다는 것으로 브런치는 감독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내 모종의 필요에 의한 일방적인 신뢰로 시작했다지만, 브런치는 실제로 믿음직하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나는 브런치에 이렇게나마 감사를 꼭 남겨둬야 할 것 같다. )


넷,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백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굳이 바꾸어 말하면 백수의 시대란, 진정한 문화 향유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엔 지식인, 문화예술인과 일반인과의 경계가 불필요하다. 즉 모두가 옛 귀족처럼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브런치가 굳이 기존의 심사과정을 통과한 등단작가나 학벌을 근거로 한 전문가를 취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시대 추세와 관계가 깊다고 본다.


가장 평화로운 사회는, 구성원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전문가로서 보편적인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서로를 존경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때문에 문화는 인류의 삶의 내용이자 그 향방(向方)인 것이다.


이렇게 지구 사회가 급하게 문화로 눈을 돌리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과거에 살며, 나는 생계활동에 바쁜 사람이니 뭐니 구실을 대며 문화의 사각지대 안에 머무르고자 고집하는 이들에게, 나는 '지금의 시대흐름을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부탁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변화의 바람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특히,

고령자들 대다수가 경제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나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바쁘다, 여유 없다는 거짓 핑계를 대며, 바로 손 닿는 곳에 마음을 기쁘게 하는 문화와 예술이 있어도 굳이 못 본 척 지나치는 건, 본인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재고할 일이라고 꼭 권하고 싶다.


다섯, 위의 네 번째 의견과 연결하여, 문화 예술에 대한 오해를 갖고, 문화 일체를 자신과 전혀 관계없다고 밀쳐두는 사람들에게 오늘 읽은 시를 전하고 싶다.


"진정한 문화란

생활 속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싶다.

웃음이 번지게 하고 싶다.

희망을 보내고 싶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 진심이야말로

평화를 구축하는

'문화의 혼'이다."

(*세계 계관시인 이케다 다이사쿠"마음을 잇는 예술의 힘", "화광신문"2020년 11월 20일 자에서)


왜 브런치에 대한 소감이 문화론으로까지 번지나, 비약이 심하다 싶겠지만, 사실 내가 사람과 사람의 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는 상상으로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임에ㅡ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편지와도 같은 것이기에, 마음과 문화를 별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나름 설명을 보탠 것이다.


그래서,'오늘도 나는 편지를 쓰나니'...(*유치환 시"행복" 의 한 구절. )


인간 세상에 '편지'처럼 마음에 와닿는 사물이 또 있을까. 기쁜 우연처럼,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뉴스에서 시인 황동규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젊은 날 그의 "즐거운 편지"를 읽으며 우리 마음 얼마나 설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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