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비밀
존중받는 노년생활을
"박막례 할머니가 처음 말해주는 인생 비밀"
'대박'이란 말의 유래가 이렇게 큰 호박에서 시작된 것일까요?ㅡ동묘 부근 야채가게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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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할머니(1947년~)의 유튜브 영상이 떴다. 사실 나는 정기구독자는 아니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처음부터 이 ‘한국 할머니’(Korea Grandma)의 팬이다.
현대식 건물 옆에 오래된 건물ㅡ광화문박할머니가 유튜브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손녀딸의 창안에 의해서다. 할머니가 나이 칠십 되던 해에, 의사가 "치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손녀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릴까봐 걱정되어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갈 계획을 세우고 회사에 휴가 신청을 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 신청을 묵살했다. 손녀는 그 길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할머니와 호주로 '치매 예방'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2017년 초 '박막례 할머니의 욕 나오는 호주 케언스 여행기'란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 이후 손녀는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계속 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있다. 볼 때마다 유쾌 통쾌하다.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그녀의 영상을 다 보고 있는 덕질까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모처럼 뜬 영상제목으로 봐선 안 보면 손해일 것 같다.
한가롭게ㅡ제기동 고대 앞'인생 비밀'이라니, 박막례 할머니의 진솔함을 믿는지라 두 귀를 쫑긋하고 앉았다.
말인즉슨, 그녀는 20대 때 영어 공부가 하고 싶었고, 40대 때엔 바리스타 자격증이 따고 싶었다. 과일 장사, 떡장사, 파출부, 식당 경영까지 안 해본 일 없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정신없었던 인생이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은 맘이 솟아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마음을 억누르고 배우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된다고.
영어를 배웠다면 미국 여행 갔을 때 현지인하고 한 마디라도 영어로 대화를 나눴을 것이고, 커피 바리스타가 되었다면 그걸 내세워서 미국 카페에 취직해(미국 카페에서는 노인도 일할 수 있다.) 노인 아르바이트를 해볼 수 있었는데.. 모처럼 미국에 갔을 때,
그렇게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고 했다.
배웠으면 해 봤을 것 아니겠냐고.
그런데 다들 그거 배워서 어디다 쓰냐고 말렸다고. 처음부터 하나도 들을 소리가 아닌 걸 신경 쓴 게 잘못이었다고.
그래서 이번에 젊은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딴 사람 말 하나도 신경 쓸 거 없다. 언젠가 자신을 발휘할 날이 있음을 믿고, 해 보고 싶은 것 용기 내어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라고.
자기 자신 71살에 인생이 이렇게 꽃피었다. 이렇게 뒤집어질 줄 몰랐다. 이런 인생역전이 있을 줄 미리 알았으면, 자기가 영어공부를,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를 포기했겠냐고.
지혜의 화신 제갈량을 모신 사당, 남산 와룡묘 입구사실, 수많은 인생 강좌에서, 혹은 심리상담학자들의 저서에서, 이 박막례 할머니가 말하는 것과 똑같은 내용의 조언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너를 맞추지 마라.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
현실에 짓눌리지 마라...
그런데도 박막례 할머니의 메시지는 그 박력이 쩐다. 경험에서 걸러진 결론이므로 듣는 사람의 마음에 그대로 와 닿는다.심지어는 말 사이사이 끼어넣는 '욕'까지도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오늘 본 영상에서도 그랬다.
우리의 할머니는 옛날 일을 말하다 보니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20 대 때 영어 공부를 말린 사람들, 40 대 때 커피 바리스타 도전을 말린 사람들, 그 모두를 싸잡아서 '× 같다'고 했다. 하.하.하.
원래 욕이란 교양 없는사람이 쓰는 비속어라고 배웠던 우리이지만, 살면서 부당한 대우에, 부조리한 상황에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체험이 없을 수 없는 우리이기도 하다. 그런 우리를 대신해, 주장과 항거의 의미로서 욕을 일단 내지르고 보는 그 솔직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막례 할머니, 우리들의 '그랜마'(더 크신 어머니)한테 특별히 허여된 능력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엄연한 비속어라도, 오랜 세월 동안 너무도 신산했을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고 명랑하게 견디어온, 그러면서 자식손자들을 제대로 키워낸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서라면, 표면은 욕이지만 사실은 성실하고 정직한 웅변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이, 그녀의 말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막힌 생각을 뚫어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구글 회사의 높은 간부도,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 것 아니겠는가.
욕을 뭐 그렇게까지는 수긍할 건 아니라해도 할머니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신선함, 그 원인 중 몇 퍼센트는 단언컨데, 박막례 할머니만의 직설적인, 1도 주저 없이 욕설을 섞는 그 아무말 잔치에서 빚어져 나온 기운이다. 그리고 아닌 말로, 자신의 좁고 얕은 생각으로 할머니의 향상심을 막았던 사람들, 욕 먹어도 싼 거 아닌가.
어디선가 인터뷰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희망했다.
고령이어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기분을, (지금의 자기처럼) 다른 노인들도 더 많이 맛보게 되면 좋겠다고. 그 방법으로 유튜브를 예로 들었지만,꼭 유튜브를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 경우엔, 유튜브가, 정깊은 손녀의 아이디어가 하늘로 오르는 '잭의 콩나무'였던 셈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능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각기 자신의 손에 닿는 자기만의 콩줄기를 찾아야 하리라. 굳이 화려한 것일 필요도, 먼 데서 힘든 것을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꼭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추석에 만난 조카의 아이들금년 추석 아침, 우연찮게 조카손주들과 놀아줄 기회가 있었다. 십 분이나 십오 분? 아주 잠깐이었는데, 나는 거북선을 그려주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최고 할머니가 되었다. 색연필 그림 한 장으로 녀석들은 나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헤어질 때는 그놈들이 이 할머니를 얼마나 아쉬워 하던지....그날 손주들의 환대와 재롱을 생각하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고.
이렇게 작든 크든, 나에겐 나만의 대박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지구력 있게 노년생활을 즐기자는 자세로,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살아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절대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제 세상은 100세 시대이니 잘하면 120세 수명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때에, 어떤 할머니는 65세에 고산(高山)암벽 등정에 도전 중이고, 어떤 할아버지는 98세에 석사 학위를 따고, 이웃나라 일본의 106세 할아버지는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한국어 라틴어까지 한 해 한 해 새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중국어는 95세에 익히기 시작했다던가?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어ㅡ대학로에서모두가 이렇게까지 도전하고 이렇게까지 텔런트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106세가 된 시점에서 그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는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지요.라고 자신의 생활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마음속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 끝까지 도전을 쉬지 않는 그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곧 늙고 쇠잔해간다.ㅡ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의 말이다.
배움을 시작하는 데에, 젊은 나이 늙은 나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에 덧붙여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세 시대'란, 노년에 대한 선입관을 노령자 스스로가 먼저 바꿔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려면 의식혁명이 기본이지만, 입밖으로 내뱉는 말만 우선 바꿔가도, 좋을 것이다.
한 마디 말에서부터, 자신이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
그저 이렇게 살다 죽으면 끝나는 거지.ㅡ그 '이렇게 살다' 의 시간 길이가 달라졌다는 걸 부정하는 마인드로는 백세시대를 온전히 누리기 힘들다. 우선적으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음을, 자신도 생각보다 오래 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전의 셈법으로 7 ,80의 노인이 죽음을 예견할 때 1,2년? 길어야 4,5년이 최장의 유예 기간이었다면, 지금은 20,30년,적게 잡아도 끝에 0 하나가 붙여진다.
그러니, 당신에게 노년이 허락되었다면, 그것은 멋진 배움의 시기로 입문한 것으로 가정하는 게 최선이다.
배움이라 하면 무조건 기존의 학교를 떠올리고, 글과 책, 규율, 시험 성적 등을 떠올리는데, 노년의 배움이란 무엇보다도 자율적이다. 획일적일 필요가 하나도 없다.
글을 몰라도, 목소리가 안 나와도,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침침해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도,도대체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는, 스스로 정하는 맞춤식 배움이다. 자유자재의 다양한 도전이 가능한 것이다.
눈길 닿는 그곳에 누군가의 손길 닿아 있다ㅡ회현역 근처우선 당신은 당신이 배울거리를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고르면 된다.
당신이 배우고 싶은 게, 공던지기든, 허리 운동법이든, 보기 좋게 웃는 표정 짓기든, 자녀들과 친구처럼 대화하는 법이든, 휴대폰 카톡 기능 익히기든 뭐든 다 좋다.( 내 하나뿐인 엄마는, 이번 달에 휴대폰에 골몰하는 중이다. 휴대폰을 갖게 된지 20 일만에 처음으로 손수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통화가 성공했을 때 아마도 속으로,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환호했을 것이다. )
이렇게 혼자서 스스로 향상시켜 보고 싶은 바를 즐겁게 배워 익히는 것이다. 틀림없이 고령이라 신경이 둔해진 면도 있겠지만, 그 대신 분주했던 젊은 날에 비하면 연습할 시간이 몇 배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해 볼만 한 것이다.
그냥 시작하자.
쉬운 공부는 하루 이틀에 마스터할 것이고 좀 벅찬 것은 한 십 년쯤 잡자. 중국의 오랜 속담에, '十年磨一剑'ㅡ십 년 동안 검(칼) 하나를 간다는 말이 있듯, 꾸준히 조금씩만 노력해도 10년 뒤면 나름 굉장한 진보를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가 피어난다ㅡ중랑천길 아래 사는 지인의 마을에서그럼 나는?
나라면, 앞으로 10년 무엇을 도전하고 싶은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열거하자면 많겠지만, 좀더 사회적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하나 골라야 한다면, '이야기 할머니'가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에 대해서라면 흥미가 사라질 리 없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가지를 뻗으며 자라나고 있는, 역사 이야기, 문화 이야기, 우주와 종교 신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도 말할 게 수북하니 말이다.
(*여기서 이야기란 박물관 같은 곳에서 채용된, 이야기 할머니가 전수받은, 정해진 해설대본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은 막연하지만 문화라는 보다 광범하고 자유자재한 의미로서,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그런 내용들을 말한다.)
하지만, 보통의 이야기꾼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구수한 입담이 부족하다. 기억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내 전문 분야의 인맥이 상당하지도, 유머나 재치 등, 개인적 매력으로 청중 흡인력이 굉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어떤 일도 그걸 이루는 방법에 있어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 내게 적합한 모색과 준비, 그리고 방법적 선택이 있다. 이를테면,글로서 만날 수도 있다.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책을 펴놓고, 필요하다면 인터넷 영상을 옆에 켜 두고, 나보다 젊거나 어린 친구들을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해 줄 수 있다.
낙관주의를 유지하자.
내 열정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로 하여,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서로의 상상 공간이 확대되는 걸 실감하는 순간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되면, 나는 보람과 기쁨을 느낄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대로 늘어놓는 바이지만,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이것들은, 지금으로선 그야말로 '희망 사항'들이다.
어쨌든 나는 이야기를 생활에 들이는 걸 즐기는 성향이 있다.
며칠 전에는 아들과 통화하면서,
"(상상이지만) 커다란 새가 창틀에 앉아서 말을 걸어왔어."라고 말했다.
소중한 너ㅡ남산 '기억의 터'그랬더니, 아들이 흥미로워했다.
그렇다고, 그 새가 무슨 말을 했냐, 그런 걸 꼬치꼬치 캐물어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우리 모자의 통화는 보통 밤 10 시가 넘어서 이루어진다. 나는 서울의 집에서지만, 아들은 홍콩에 있는 대학의 연구동 실험실에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아파트로 귀가하기 직전에 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하여, 통화가 길어지는 것을 서로 삼가하고 있다.
"엄마가 커다란 새라고 하니, 갑자기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장자의 '붕'이라는 새가 생각나네요."
그러면 내가 그 말을 받아,
"아아, 그 붕새 말이지?"
이런 식이다.
제복의 여고 시절을 것이다.
국어 책 수필이었던가, '대붕'(大鵬)이란 새 이름이 나왔다. '날개의 길이가 삼천 리이며, 날개를 한 번 치면 구만 리를 날아간다고 하는 상상의 새'라는 해설.
정말 이렇게 웅장한 새가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신비한 곳인가 싶었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새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새의 등 넓이도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새가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붕새는 태풍으로 바다가 일렁이면 남쪽 바다 천지(天池)로 날아간다.(<장자莊子· 소요유逍遥游>에서)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준비동작으로 수면을 치면서 삼천리를 가다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상공으로 솟아 올라서 6월의 큰바람을 타고서 날아간다.(고대 신화집 <제해齊諧>에서)
구만 리니 삼천 리니, 새 한 마리의 거대함을, 또 그 새가 유유히 날아오름을 눈앞에 그려보노라면,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교실에 갇혀 대학 입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인간계의 답답함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아들도 그랬을까?
그래서 '대붕'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까진 물어볼 시간이 없다.
엄마인 나도 아들인 너도, 밤 10 시가 지나 긴 통화는 부담이다. 그리고 그 사정은,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뒤쯤 자타가 인정하는 할머니 이야기꾼이 되면 한껏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무대도 생기겠지. 그때까지, 현실의 제약이나 정해진 시간의 틀을 벗어나 우리의 시공간을 확대하는 길고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 두는 거야. 물론 그냥 꿈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러한 미래가 있다 없다는 각각 50퍼센트씩의 확률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꿈꾸어도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세상 어디에도 드문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되면, 그건 진짜 대박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