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독

고독을 극복하는 법

by 새벽종 종Mu
회현역으로 향해 가는 골목길 어느 한의원 담벼락

고령자에게

고독만큼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없다.

따뜻한 애정과 마음의 유대,

그리고 즐거운 대화가

무엇보다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이케다 다이사쿠 <사계의 격려> 중 일부, <화광신문>, 2020년 10월 16일 자, 제3면에서)


옛 성현은 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감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다 해도 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는 분명 나 홀로 겪고 견딜 일이다.


이렇게 결국 혼자인 인생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노년기의 복병인 고독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고독만큼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없다."

나의 둘도 없는 혈육인 어머니에게서도, 가끔 소식을 듣는 친지 어른들에게서도, 골목길에서 인사하다 사귀게 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도 그 무서움을 듣게 된다. 참으로 이 글귀 그대로인 것이다.

옥탑방 전세를 얻으니 하늘은 덤으로ㅡ덕릉로에서


조카와 점심을 먹고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모는 공부하고 책 읽고 쓸쓸함 같은 거 느낄 새가 없겠네?"

오륙 년 만에 만난 터에 어디 내 얘기 떠벌일 시간이 있었겠나. 내가 아는 나는 공부에도 독서에도 그다지 근면한 편이 아니다. 그렇긴 하나, 조카의 짐작이 딱 맞아떨어지는 게 내심 놀라웠다. 딱이 가족이 많으면 덜 외롭고 가족이 없으면 더 외롭다는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지내는 생활임에도 전혀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 잘만 지내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방통하기 그지없다.


조카의 추측대로 더러는 책의 힘일 수도 있으나, 책 이외의 것, 이를테면 생활을 채우는 모든 것, 계절이니 햇살이니, 이웃이나 지인들, 그리고 거리 풍경... 이 모든 것이 매 순간마다 새롭고도 사랑스럽다.

오늘 하늘빛은 어제보다 깨끗하다든지, 구름 모양이 다르다든지, 앞집 할머니를 한참 동안 못 봤다든지, 내 주위의 하나하나에 관심이 가고 궁금하다.

여름에 내가 화분에 뿌린 코스모스 씨앗만 해도 그렇다. 7월에 심어 새싹이 나면서부터 거의 120일이 되어가도록 줄기도 잎도 꽃도 어제와 똑같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중 한두 포기는 꽃대궁에 진드기가 붙어, 꽃이 달린 줄기 끝만 떼어냈는데, 꿋꿋이 버티며 어떤 잎은 말라가고 어떤 잎은 아직 푸른 채이다.

오늘 본 밤하늘의 달은 또 어떤가. 추석날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느새 한 달이 지나 둥근달로 변하는 중이다.

누군가 말하길, 노년이 되어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애정과 관심의 호기심이 젊게 사는 비결이라고.

호기심이 안내하는 오솔길을 따라가는가, 아예 거절하고 모른 척 하는가, 이 선택은 마치 화면도 지지거리는 낡은 흑백TV냐 출고된지 얼마 안 되는 신형의 평면 컬러TV냐를 고르는 것과 같다. 숲은 그저 하나의 푸른 덩어리이지만, 숲속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 안에 풀꽃이며 새소리, 옹달샘과 개울물, 나를 기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TV라는 겉틀은 같거나 더 작을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다채롭게 내 주위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충실감은 소박하나 독자적이다. 아무런 허세도 필요 없다.

나는 아직도 음식절제에 서투르고 운동에 등한하니 고칠 점이 많은 사람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이러한 소박한 호기심만은 늘 왕성하다. 주위 환경의 사소한 변화를 잘 알아채는 관찰력이 있다. 그 점 하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모스 씨앗은 코스모스 꽃으로 피어났다

이것도 훈련의 결과일까?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에 내가 관찰력을 기를 수 있었던 기회가 크게 두 번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의 분부로 나는 학급의 나팔꽃 화분을 가꾸고 그 관찰일지를 쓰는 책임을 맡았다.


봄에 나팔꽃씨를 심어서 그 덩굴이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무성했을 터이니, 적어도 넉 달 이상을 매일처럼 관찰하고 기록했던 것이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이, 교실 뒤쪽 남쪽 창틀에 얹힌 너비가 그리 좁지 않은 직사각형 화분이었고, 새싹이 난 이후에는 덩굴이 뻗을 수 있게 여러 줄의 끈을 이어놓았다.


일지는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혼자서 그림 반 글 반의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씨앗이 심기고 싹이 트기까지 잠잠하기만 한 토양의 묘사로 시작해서,떡잎이 나면 떡잎을 그대로 그려 넣고 그 키는 몇 cm라고 일기에 적어둔다. 여러 포기 나팔꽃은 서로 질세라 자꾸자꾸 자라나서, 잎들도 꽃들도 많아지고, 내가 그림과 글로 묘사할 것은 그만큼 많아졌다. 그래서 빈 교실에 늦도록 남아있는 일도 빈번했다. 혼자 집에 가는 게 어린 맘에도 고독하였지만, 나팔꽃이 크는 걸 관찰하는 게 그 해 내가 맡은,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중요한 임무였으니, 선생님께 투정 부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일. 나름 묵묵히 열심히 진지하게, 나팔꽃의 성장을 기록해 나갔다.


그 노트를 보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가 하면 5학년 때는, 자연(과학) 과목 숙제로, 한 달간 내내 밤하늘의 달을 관찰하게 되었다.


달은 매일 떠오르는 시간도 방향도, 그리고 날마다 달의 모양도 다르다. 초승달(상현)은 저물녘 서편 하늘에 뜬다. 그 이후 달이 뜨는 방향은 점점 동으로 이동하며,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고 다시 줄어들어 그믐달(하현)이 되어간다. 그 모습을 날짜별로 공책에 그려두는 것이다.


무심코 아무렇게나 보는 것과, 지속적으로 변화를 발견하며 보는 것은 많이 다른 것이다.


열한두 살 무렵에 그 둘의 다름을 알았다. 깊이 인식한 것 아닐지라도 막연한 실감이나마 차이를 깨달을 수 있게 된 일은 내 인생 전체로 봐서 아주 중요한 수확이었다.


그 해의 나팔꽃이 그 다음 어느 핸가는 방울토마토이고, 코스모스이고, 혹은 문득 어깨를 스치는 가로수나 차창 밖의 숲이 된다.그 해의 달과 하늘이 이제는 해 달 별 구름 바람 등 하늘에 관련된 자연이며 풍경이 된다. 작은 사물 하나로 시작하여 내 관심권은 자꾸 넓혀졌다. 이것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필연적인 과정이리라. 그리고 그 성장된 마음은, 풀과 나무, 하늘의 별과 달과 우주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과 공명하며 결합되고 연결되어가는 것이다.


古朗月行

(唐)李白

小時不識月,呼作白玉盤。

又疑瑤台鏡,飛在青雲端。

仙人垂兩足,桂樹作團團。

白兔搗藥成,問言與誰餐。

蟾蜍蝕圓影,大明夜已殘。

羿昔落九烏,天人清且安。

陰精此淪惑,去去不足觀。

憂來其如何,淒怆摧心肝。


《달을 보며》

(당나라) 이백 지음


어릴 땐 저 달을 그냥

뽀얗게 빛나는 옥쟁반이라 여겼네.

신선이 보는 거울이라 하늘 위에 걸렸는가,

아니면 신선이 둥그렇게 말아놓은 계수나무던가.

달이 자꾸 작아지는데 두꺼비는 계속 삼키고,

누구 줄 약이라 옥토끼 하냥 방아를 찧고 있나.

궁금증 쌓이는 사이 동이 트곤 했다네.


그 옛날,

후예는 아홉 마리 까마귀를 쏘아

천상과 인간이 이처럼 안온한 것을.

어린 나는 그저, 달이 매일 밤 줄어듦에,

행여 없어질까,

맘 졸이길 몇 해였나.


또 하나 다행이라면, 그 당시엔 티브이도 없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밤하늘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당시의 어른들은, 서구적 과학 상식보다는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걸 즐겼다. 저 달나라엔 아름다운 항아(嫦娥)님이 살고 있다는 둥, 달나라에 계수(桂树)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옥토끼가 약을 찧고 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항아님이니 계수나무니 옥토끼를 달 속에 그려 넣었다.


그렇긴 해도 전설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에 입학하던 무렵에 이미 미국의 달 탐사선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달 탐사 사진전람회가 열리고, 달나라에 착륙하는 장면이 실린 사진엽서를 한두 장씩 나눠줬다. 내가 받은 사진은, 우주복에 맞춤한 그 금속성의 신발 바닥이 달 표면에 그대로 움푹하게 찍힌 사진이었다. 달 탐사 성공 소식은 우리를 상당히 흥분시켰던 것 같다. 다만 사진으로 본 달 표면이 너무 황량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대체 어디에 달나라 궁전이 있고 계수나무가 우뚝 서 있단 말이야?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 신화의 세계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로부터 30여 년 뒤, 중국의 청두 땅에 살면서, 달나라 항아님과 남편 후예(後羿)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게 된다.

“ ‘후예사일'(後羿射日, 후예가 해를 쏘다)에 대해 들어 봤어요?”


내가 ‘샤오어'(小娥)에게 그녀의 이름 뜻을 물었을 때다. 샤오어를 낳고 깨어난 엄마 눈에, 벽에 걸린 달력이 보였는데, 마침 그때 그림이 항아님이어서, 샤오어라고 지었다고. (*小娥는 아기(어린) 항아란 의미)

“아아, 항아? 달 속에 산다는 선녀 말이죠?”

내가 아는 체했더니, 후예가 해를 쏘아 떨어뜨린 이야기는 들어봤냐고 샤오어가 물어준 것이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옛날, 하늘에 열 개나 되는 태양이 하늘에 동시에 떠올랐다.

대지는 말라가고 사람들은 뜨거워서 도저히 살 길이 막막했다.

이때 후예라는 활을 잘 쏘는 영웅이 나타나 하늘에 태양을 하나만 남기고 아홉 개를 다 쏘아 떨어뜨렸다.


하늘에 태양을 하나만 남긴 후예는, 천상과 인간 모두의 칭송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항아님과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예가 하늘나라 여왕님(王母娘娘)에게서, 신선만 먹는다는 불로불사의 약을 얻어오게 된다. 그것은 귀중한 것이라 부인인 항아에게 대신 잘 간직해달라고 맡겼다. 그런데, 항아님 혼자 집을 지킬 때 그 약을 도둑질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곧 약을 뺏기게 될 위기의 찰나, 항아님은 약을 삼키고 말았다.


그 약은 원래 먹기만 하면 신선이 되어 불로 장생하는 선단이었던지라, 약을 삼킨 항아님의 몸은 저절로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낭군과 헤어지게 된 항아님은, 하늘 높이 오르다 말고,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나라를 택해 그 궁전에서 살기로 했다. 달에서라면 그나마 부군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항아님은 달나라에 살게 된 것이다. 그 항아님이 사는 달나라 궁전의 이름이 바로 광한궁(廣寒宮)이다。


달나라에 광한궁이 있다면, 한국의 남원(南原)에는' 광한루'(廣寒樓)가 있다.

광한루는 1419년 남원으로 유배 왔던 황희 정승이 세웠다고 한다. 당시 이름은 광통루(廣通楼). 이후 세종 26년(1444), 하동부원군(河东府院君)이었던 정인지에 의해 '광한루'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아름다움이 마치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月宮) 즉 광한궁ㅡ '광한청허부'(廣寒清虛府)와 같다는 뜻에서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사랑이야기인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은 이 남원을 배경으로 이몽룡과 춘향이 등장하기에, 소설 속에서 광한루 또한 중요하게 나온다.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송나라 때 유명한 시인인 소식(蘇軾)의 시구를 딱 하나 기억하고 있는데 ”高處不勝寒(너무 높아 견딜 수 없는 냉기)”(《水調歌頭·明月几時有》)도 바로 광한궁을 묘사한 게 아니던가? <춘향전>과 달리 시 속 그려진 항아님의 달나라 광한궁은, 사랑하는 낭군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채워진 몹시도 적막한 같다. 하긴 그런 전설과 정서로하여, 옛선조들은 달을 바라보며 그리운 맘을 달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항아님 얘기로 달 얘기를 먼저 시작하였지만, 활을 잘 쏘는 영웅 후예는 개의 해가 있던 신화와 관련이 깊다.


오랜 옛날 신화 속에서 이 세상의 해는 열 개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山海經.海外東經》:“湯谷上有扶桑,十日所浴,居水中。九日居下枝,一日居上枝。”

(통해)끓어오르는 물속에 부상수가 있고, 그 부상수에 10개의 해가 깃들어 목욕을 하고 있는데, 부상수 가지 각각에 태양과 태양새가 달려 있다. 매일 9개 가지는 아래로 내려뜨려져 물에 잠기게 하고 그중 한 가지만 올려진다.


고대 고구려 벽화로 유명해진 삼족오, 즉 태양새도 이 태양 신화와 관련된다.


그런데, ‘부상扶桑’이란 나무는 대체 얼마나 거대할까? 하늘과 바다를 이을 정도라니, 상상으로 그려보기도 벅찰 것이다.

부상이 있어, 사람들의 해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동방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중국의 고대인들은, (중국의) 동해(즉 발해)에 신선의 섬인 ‘봉래’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부상수가 서 있는 곳도 동쪽 바다 어딘가이니, 혹은 일본이 부상의 나라일 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雜詩

李白

白日與明月,晝夜尚不閑。

況爾悠悠人,安得久世間。

傳聞海水上,乃有蓬萊山。

玉樹生綠葉,靈仙每登攀。

一食駐玄發,再食留紅顔。

吾欲從此去,去之無時還。

잡시

이백 지음

해와 달은 낮과 밤을 부지런히

유유한 시간 속에 쉴 새 없으니,

하물며 인간이 어찌 안온한 영원을 바랄까.

그런데 저 멀리 바다 가운데

봉래산이 있다지.

옥으로 된 나무에 푸른 잎 신선과(神仙果),

신선들만 거길 오른다지.

하나 먹으면 검은 머리 그대로고

두 개 먹으면 젊은 얼굴 영원하다네.

나는 정녕 그곳으로 가고 싶어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해가 솟는 동쪽 방향에 대한 동경은, 중국 동해에 있다는 봉래(蓬莱), 방장(方丈), 영주(瀛洲) 등의 신비한 섬 이름이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전해질 정도이다.


재밌는 것은, 이 신선의 섬 이름 중 '영주'(瀛洲)라는 이름이 한반도 제주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옛 이름이 바로 영주이기도 하고, 현재로선 제주 영주산(瀛洲山)이란 산명이 남아있다.


또 불로장생의 신선과 관련해서 기억할 또 하나의 전설은, 제주 해변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이다. 서귀포는 진나라 때의 서복의 항해(서복 동도徐福东渡)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의 일이다. 황제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해오라고 도사 서복을 책임자로 하여 큰 배를 동해바다로 출항시켰는데, 그 배가 제주섬에서 약초를 채취해 본국인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제주의 서귀포(西歸浦市)란 지명이,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가다(西歸)’의 뜻으로서, 일설에는, 원래 처음엔 서복이 돌아가다(徐歸)로 썼다가 서쪽으로 돌아가다(西歸)로 바뀌어진 것이라고도 전한다.


그런데 서복은 약을 구하지 못해 돌아가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고, 아예 동으로 뱃길을 돌려 일본에 갔다는 말도 있다.


전설이야기는 역사를 품고 생겨났다. 그것이 어른들에서 아이들에게로 계속 전해가며 오늘날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온 것이다.


그 전승 자체가 인류의 진짜 면모일지도 모른다. 평화를 사랑하고 세상 모든 것의 행복을 소망하는.


나는 그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장래 어느 날인가, 어린 손주 또래도 좋고, 동네 가까운 교육센터도 좋고, 옛것에 관심 있는 어른들 동아리여도 좋고, 내가 그들과 함께 인류문화가 남긴 이야기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날이 올까. 바라는 바가 있는 한, 우리의 시간은 미래로 열려 있을 것이다.


사실 지구의 역사로 보면, 태양은 지구의 미래이고 희망이었다. 과거로부터 지금 현재까지 지상의 생명 있는 것치고 태양빛에 힘 입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점은 미래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태양의 자광(慈光)은 필요불가결이다.


그 태양이 내일부터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러나, 우리는 믿고 있다.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

지상의 일체 생명을 양육하는 태양, 매일 부활하는 아침은, 태양의 분투이다.

지구상의 일체 생명을 키우는 햇빛

우리들의 선조인 고대인들은 그러한 태양을 경모하고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태양빛을 받아 우리도 분투하자.

우리의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가꾸어 가자.

태양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 그런 마음이 모여 창조되어진 부상수 신화인 것이다.


“옛날 옛날 동해 바다 가장 동쪽인 어디쯤에, 하늘까지 솟은 아주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었대요. 그 나무 이름이 ‘부상'이었어요. 나무가 가지를 쳐들면 그대로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았어요. 이 부상수에 열 개의 태양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부상 나무의 한 가지를 올리면 그 가지 위의 태양새를 따라 가지 끝에 달린 해님이 하늘길을 따라가고 이 세상을 환해지고, 저녁이 되면 하늘을 날았던 가지는 물에 잠겨 쉰다는 거지요. 하루에 해님 한 분만 세상을 비추면 되니까 아홉 해님들은 대기조가 되어서 쉬는 셈인데, 그것이 바닷물에 들어가 목욕을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바다는 항상 뜨겁게 끓고 있다지요. 아홉이나 되는 해님들이 물속에 있으니, 얼마나 뜨거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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