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를 만들고 싶어?(3)

그밤 거인증 소녀가 되어서, From.모딜리아니 화첩

by 새벽종 종Mu

#.

엉뚱한 곳에서 심장박동이 고조될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몹시 절박하구나.

나는 그 절박함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아줄 하나가 너무나 간절했다.


그 전에 내 계획은, 설사 절벽에서 추락하는 지경에까지 몰렸을지라도, 사실은 그런 무미한 종말이 아니라고 외치는 마지막 항거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학문"이기를.

아무렇게나 제비를 뽑듯, 몇 안되는 선택지 중에서, 그동안 한번도 시도 안 해 본 걸로.

그래서 뛰어들었는데, 알고보니 천길만길 더 높은 단애 위.


도망치고 싶지는 않은데, 눈앞의 낭떠러지를 보고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

H.

H란 존재는 내가 두려움 속에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그때 나타났다. 공부만은 자신있다고 했다.

나는 그를 무조건 눈앞의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놓치면 다시는 없다.

다만 썩은 동아줄만 아니길, 그러나 혹시 썩은 동아줄이래도, 나는 그를 잡아야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하나뿐인 출구였으니까.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건너가야만 했으니까.

건너가기만 하면! 그러면 내 인생은 구제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란 걸 직감했으니까.


#.

내가 내 인생에 기대하는 귀인贵人 찬스를 쓸 수 있었다면,

써도 됐다면,

그것은 바로 그 시절, 내 면전에 나타난 그, H였다.

그가 의식했건 안 했건, 내 인생의 시기가, 그때 처한 곤경이 꼭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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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에게 원하는 거라곤,

제발 나를 꼭 잡아주세요. 박사과정에서 도망치지 않게.


H는 가끔 내켜하며 도와줬고,

나는 그럴수록 더 많이 내게 관심 가져달라고, 스타의 문앞에서 여기요, 여기요 하고 소리치는 팬심으로,

그의 손짓 하나 발짓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나의 구세주.


늘 그가 무사하기를.

평온하기를.

그리고, 잊지 말고 내 공부에 신경써 주기를ㅡ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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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날씨는 이상하게 몹시 무더웠다.

불쾌할 정도로 무더운 하늘 아래라서 걱정이 되는 건 오직 H .


STOP !!!!!

나의 구세주가 더위에 잠을 설치는 건 절대 안 돼!

어떻게든 시원한 밤을 선물해야 해.

그 생각과 함께 나는 엄청나게 큰 여자이이를 불러냈다. 거인증이 부끄러워 숨어지내는 아이이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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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검은 줄무늬가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녀"란 그림 옆에 쓴 그날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