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를 만들고 싶어?(2)
나무 위의 잉닝과 "꿈에" 붙임
#.
잉닝은 꽃을 좋아하고 몹시 잘 웃는 새댁.
하루는 꽃을 꺾어 머리에 두르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동네 졸부 사내가 길을 가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까르르 웃고 있는 잉닝에게 맘이 끌렸다.
사내의 얕은 생각엔,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것이 여자도 맘이 있는 게 틀림없지 싶어서, 잉닝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도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는 신호라고 믿었다.
그래서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나무둥치를 기쁘게 기어올랐는데, 그 끝에 뱀이 있었다.
여자 곁으로 올라가 함께 놀 생각에만 빠져 있던 사내는 뱀 대가리를 보자 너무 놀라서 땅에 떨어져서 다쳤다.
사내는 그 일로 크게 앙심을 품고, 관청에 고발하길 잉닝이 '요녀'(*과거에 이런 이름의 부류는, 요사스러운 여자라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인식됨)라고 했다.
마침 관청의 우두머리가 잉닝의 신랑이 미더운 성품으로 교양 있는 서생임을 알고 있었기에, 잉닝에 대해서도 크게 의심을 안 한 터였고, 신랑이 다친 사내를 찾아가 정중히 사죄를 하기까지 하자, 결국 고발은 없던 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시댁 사람들은 이번 일로 식겁하여서, 잉닝을 단속하길, 모든 게 네가 헤프게 웃어서 벌어진 일이니 앞으론 웃지 말라 했는데, 그 이후로 잉닝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포송령의 <요재지이聊斋志异>의 단편이다. 수많은 신기한 이야기들 중에서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이 "잉닝" 편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내게 생각거리를 남겼는데ㅡ
인간 세상에 얼마나 무수한 잉닝들이 탁한 오해 속에 밝은 웃음을 잃어갈까.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
한밤에 조덕배의 <꿈에>를 몇 번이고 들었다.
... 나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 봐 난 눈 못 뜨고 그대를 보~네...물거품처럼 깨져버린 내 사랑아...
너무 아련하지 않은가. 이 노래.
#.
노래 탓이런가, 사방이 조용한데, 문득 구석에 처박아둔 옛 수첩을 꺼내어 펼쳐본다.
"어느 날인가, 내가 죽으면, 나와 성향이 많이 다른 나의 아들은 엄마의 무엇을 기념품으로 남기겠다 할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들고 왔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 첫 장. 날짜가 없는 걸 보아, 그날의 사건과 무관하게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사념思念이 떠올라 끄적인 메모였던 듯.
#.
좋은 날을 위하여, 넓은 마음을.
힘든 날을 위하여, 굳센 신념을.
궂은날을 위하여, 밝은 기분을.
들뜬 날을 위하여, 머언 여정을.
마지막 날을 위하여, 초심初心을.
내가 이런 시적인 다짐을 써놓은 시간은 "2013년 9월 28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
수첩 갈피에서 니온 종이 쪽지 위에는 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왕릉 속의 석관이 열리고, 그 안에 누워 있던 미라의 붕대가 풀어지면서 2천 년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ㅡ라고 쓰여 있다.
뭔가 흥미진진한 서두.
책의 서두를 베껴 쓴 것인가?
아님 뭐지?
분명 내 손글씨임에도 이 메모의 유래에 대해선 아무 기억이 안 난다.
혼자서 혹시 "마왕퇴" 발굴 기록인가, 했다가 붕대라는 낱말에 고개를 저었다. 마왕퇴의 귀부인은 비단옷을 겹겹이 입은 채 발견되었으니, 붕대와 상관없지 않은가.
#.
사실은, 맘이 쓰이는 김에 잉닝에게 부캐 하나 붙여주고 싶었다. 그럼 그렇게 웃음 자체를 다 지우고 살지 않아도 될 터.
꿈에,를 부르는 가수에게는, 혹은 그 꿈속의 여인에게 꿈캐라도(꿈속 캐릭터)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너무 아릿아릿, 슬프고 안타까운 기분.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굳이 이름만 안 붙였을 뿐, 내 맘이 쓰이는 것에마다 그들몫이 될 부캐의 윤곽을 그렸던 듯. 다만 바람결에 금세 지워지도록 놔 두었을 뿐이다.
또, 나는 나 자신에게도 곧잘 적당한 캐릭터를 붙여줬다 떼어냈다를 반복한 것도 같다.
이 점은, 방금, 써 놓은 지 8년이 다 되어가는 수첩 한두 장을 넘기다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다음 번에는 하나쯤 진하게 지워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