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를 만들고 싶어?(6)

옥상지기와 돌멩이 '꾸22'

by 새벽종 종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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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이 지고 익모초가 번성하는 중이다.

정방형의 스티로폼 세계에선.

스티로폼 상자는 작년 가을, 아는 분이 김장김치 몇 포기를 부쳐줄 때 받은 것이다. 그것이 한여름 창밖의 화단이 되어, 올해의 내 야심작인 나팔꽃 싹을 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팔꽃은 생각만큼 무성하게 자라지 않았다. 흙이 너무 부족한 탓이었다. 서툰 정원사가 거름보다 흙이 먼저라는 기초적인 상식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래도 나팔꽃은 허약한 채로 가지를 뻗고 잎을 내고 꽃을 피웠고, 이제 꽃씨가 가을을 기다려 여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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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마른 삼복더위.

서툰 정원사는 그나마 물 주기만은 꾸준한 편이다. 왜냐하면 그 핑계로 옥상 위의 한 바퀴를 즐기니까.

고맙게도 넌 계속 무사하구나.

하루하루 나팔꽃 줄기가 시들어 가는 중에 천만다행이랄지, 마음의 위안이랄지, 객식구인 익모초 줄기는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다.


웬 익모초인가?

여기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에 걸맞은, 초라하고 사소하지만 묘한 우연의 겹침인, 정원사만의 이야기가 있다.


사실 정원사는 1년 4계절의 순환이 다소 겨운 체력이다. 여름 초입에 이래저래 이상하더니, 결국 스스로에게 뭐라도 찾아 먹여서 기운을 차려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찾아왔다.

혹시 익모초가 좋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다 생각난 건지, 혹은 예전에 왕래가 빈번했던 친구의 엄마가 친구에게 정성으로 달여 마시게 한 익모초 약물이 전후 논리 없이 떠오른 탓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뭐라도 특효약이 된다면, 우연하게 떠오른 풀이름도 중요할 것이다.ㅡ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경동시장까지 가서 사 와야 한다는 건 엄두가 안 났다.

기다렸다가 기운을 차린 후에 가야지.

서두르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

지상의 한 사람이 버스 타고 약초 사러 다녀올 기운도 없는 게 안타까웠을까?


정원사는 그날 익모초 포기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 잠재된 불가시적인 자애 한 줄기를 실감한다. 결론인즉,

매일 대문을 여닫고 다녀도 본 적 없었는데, 대문 안쪽 그늘진 시멘트 땅 물이끼 위로 야리야리하게 줄기를 올린 풀이 그날따라 눈에 들온 것이다. 익모초를 생각해 낸 바로 그날에!

그 옛날 효자들은 겨울 숲에서 죽순을 찾거나 꽁꽁 언 연못에서 잉어를 발견해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하는데... 이게 뭐지?


우연의 일치가 어리둥절하여 옛 책에서 본 효자이야기가 저절로 생각났지만, 스스로도 가소로울 일이다.


제 몸 제가 살리자는 건 감동의 범주에 들 수 없을 테니.


어쨌든 그제 어제는 모처럼 비가 연속 내렸다.

덕분에 밤사이 익모초가 더 싱싱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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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꾸22'에게 던지는 긍정 의문문이다.

꾸22, 발음의 편리를 위해 '꾸둘이'로 불리는 녀석은, 다름 아닌 돌멩이.

오패산 마른 개울에서 집어온 조약돌이다.


옥상지기 겸 정원사는 사실 이야기 수집꾼.

조약돌 하나에도 이야기에 대한 상상이 그득하다.

더구나 그 녀석도 옥상 위 새 식구들과 그사이 제법 친해졌을 터이니, 그 속의 이야기도 늘어나 있을 터, 슬슬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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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름이 없었다.

그 옆의 뭉툭하고 허여스름한 돌에는 처음부터 ' GI(지•아이)'란 현대판 이름을 떡 하고 붙여준 데 비해선 홀대 아닌 홀대였다.


기대를 걸수록 쉽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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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삶에,

비록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목표로 해

끼니를 해결할지언정,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일점一点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 새까만 기세!"


ㅡ길에서 만난 한 마리 새, 까마귀의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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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준 가르침을 기념하여, 이름 앞머리의 강한 음'ㄲ'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꾸2" 이라 했고 거기에 "이" 를 덧붙이니 부를만한 이름이 된 것이다.


이리하여 돌멩이는 꾸둘이가 되어, 동네 사거리를 지키는 맹수 격인 까마귀와 하나로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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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보자면,

정원사 겸 옥상지기는 까마귀와 같은 날개 달고 하늘을 오기는 것들이 실어 나르는 전설까지 수집할 생각으로 잔뜩 뜸을 들이는 중인지도?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