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콘텐츠를 기획했던 경험이 있다. 포털사이트 스포츠 담당자와 함께 진행한 해당 프로젝트는 일주일의 국내 프로야구 이슈를 풀어내는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업무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오디오 콘텐츠를 소비했고, 이용자의 니즈(needs)를 맞춰 서비스를 운영, 개선하며 프로젝트를 끝맺음했다. 개인적으로는 ‘듣는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확실한 수요층이 존재하는 마켓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팟캐스트 '라디오볼' 녹음 현장
레거시 미디어로 대표되는 TV가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있다.그럼에도 영상 콘텐츠 자체가 쇠퇴하지는 않았다.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OTT 서비스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자연스레 소비자가 이동했다. 디지털 미디어렙 ‘나스미디어’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의 온라인 동영상 하루 평균 시청 시간은 1시간 38분이었다. 또한, 조사 대상의 51.3%가 OTT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고, 유튜브 이용률은 90%를 훌쩍 넘었다.
단편적으로 본다면 듣는 콘텐츠에 주목해야 할 뚜렷한 이유는 없다. 콘텐츠 시장의 흐름이 바뀔 만한 요소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534’ 세대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엿본다면, 오디오 콘텐츠 마켓을 고민해볼 가치가 생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젊은 소비자는 한정된 시간에 다양한 취미를 즐기려는 노력을 한다. 또한, 이들은 멀티태스킹(다중작업)에 능한 세대다. 영상 콘텐츠를 온전히 소비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듣는 용도로 활용하며 다른 활동을 병행한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 ‘먹방 ASMR’과 스트리밍 플랫폼에 게재되는 ‘O시간 공부하는 영상’이 주요한 콘텐츠 사례이다. 화면에 집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를 틀어놓고 함께 밥을 먹거나 공부한다. 형식은 분명하게 영상 콘텐츠이지만, 소비의 방식이 다르다. 이 같은 콘텐츠는 러닝타임이 길다는 공통점도 있다. 창작자는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가 라디오처럼 소비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에, 소비자가 선택이라는 추가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기획한다. 만약 호흡이 짧은 영상이라면, 소비자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기 위한 작업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공부하는 모습을 담는 일상 디지털 콘텐츠
듣는 콘텐츠만을 담는 플랫폼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팟빵’과 ‘스푼라디오’가 대표적이다. 팟빵은 정치와 사회 분야로 특화돼 서비스가 시작했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담는 그릇이 됐다. 스푼라디오는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아프리카TV’와 ‘트위치’의 라디오 버전이다. 현재 스푼라디오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베트남,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3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도 오디오 서비스 ‘나우’를 론칭하여, 듣는 콘텐츠 마켓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적인 출판 업계도 듣는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판 업계가 디지털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주저하는 이유는 판매부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있다. 출간 도서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전자책, 오디오북)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도서 판매부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도서 구입 소비층과 디지털 콘텐츠 이용자의 성격이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역행해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출판 업계는 부자연스러운 기계음을 활용하여 제작하는 TTS(문자음성자동변환기술) 방식이 아닌 인플루언서나 전문 성우가 직접 녹음하는 오디오북을 만들고 있다. 조금씩 출판 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브런치’도 멜론과 협업하여 플랫폼을 통해 출간된 도서의 작가가 직접 녹음한 ‘브런치 라디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듣는 콘텐츠 시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어떻게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이다. 콘텐츠 마켓이 돈을 버는 핵심 방법은 바로 광고이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오디오 광고보다 영상 광고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디어렙 ‘인크로스’는 스마트 스피커 음성 광고에 대한 이용자 반응을 조사해 발표했다. 스마트 스피커 소유자 43%는 다른 형식(TV·인쇄·온라인·소셜) 광고보다 음성 광고가 덜 거슬리고, 42%는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결과를 전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앞선 조사가 듣는 콘텐츠 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