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새로운 방식의 출판 제작과 유통 방식이 공개돼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밀리의 서재는 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 인사>를 디지털 공간에서 먼저 공개를 한 뒤, 오리지널 신간을 한정판 종이책으로 제작하여 정기구독을 하고 있는 회원에게 유통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이는 출판사와 작가가 종이책 신간을 독자에게 유통시키는 과거의 프로세스를 탈피하는 방식이었다.
밀리의 서재는 구독 경제 모델을 출판 콘텐츠 사업에 결합한 조직이다. 보유하고 있는 수만 권의 전자책을 월정액을 결제한 회원에게 무제한 제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기획을 벤치마킹하여 출판 산업에 접목시킨 게 앞서 언급한 김영하 작가와의 제휴였다. 향후 밀리의 서재는 유명 문인, 출판사와 지속적인 협업으로 참신한 출판 유통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예고했다.
출판사 문학동네도 지난 3월부터 신선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주간 문학동네’라는 소설, 산문 연재 전문 웹진을 운영 중에 있다. 국내 유명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들의 작품은 평일 오후마다 웹에 게재되며, 연재가 끝맺음하면 문학동네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시스템이다. 최근의 콘텐츠 유통 트렌드에 발맞춰 순수 문학을 독자에게 디지털 공간에서 제공하는 모양새다.
국내 총 도서 발행 부수는 2009년 이래로 꾸준하게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억 621만 4701부를 기록했고, 하향 곡선을 그리며 2018년 1억 173만 7114부로 떨어졌다. 이에 반하여 디지털 도서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디어랩사인 인크로스의 인사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주요 도서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는 전년 대비 평균 10.2% 증가했다. 도서 유통 형식의 무게추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울고 있다. 이 같은 통계적 변화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많은 조직이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 초~2000년대 초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통계청은 이들이 전체 인구의 33.7%를 차지하며 내수를 담당하는 핵심층인 ‘2030’이 위주라고 전했다. MZ세대를 핵심 소비층으로 끌어오는 부단한 노력이 조직의 존폐를 의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MZ세대는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전통적인 방식의 매체가 아닌 PC와 모바일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다양한 취향이 혼재하기 때문에 MZ세대 모두를 만족시키는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이들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아 하루가 다르게 관심사도 바뀐다.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로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방식은 고비용이다. 기획한 콘텐츠가 대중의 외면을 받아 실패했을 때 미디어 업체가 감당해야 하는 피해가 상당하다. 전통적인 콘텐츠 유통 방식으로 MZ세대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내 대형 출판사, 신문, 방송사가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에 띄는 변화도 감지된다. 웹 예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에스비에스의 <문명특급>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8년부터 <문명특급>은 ‘글로벌 신문물 전파 프로젝트’란 슬로건으로 소비자를 찾아가고 있다. 세대별 관심사를 웹 형식에 맞춰 풀어낸 콘텐츠이며, 유튜브 구독자는 2020년 11월 현재 1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미 흥행이 검증된 웹 예능을 에스비에스는 지난 한가위 특집 편성하여 TV로 송출했다. 시청률은 2.3%였으며, 다수의 언론은 성공적인 안착이라고 평가했다. <문명특급>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폭넓은 콘텐츠 발굴이 용이했고, 이를 기반으로 MZ세대를 공략하여 레거시 미디어의 진출로 연결됐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가 OSMU의 형태로 디지털 플랫폼에 활용되는 사례는 많았지만, <문명특급>처럼 역 과정으로 콘텐츠가 유통된 일은 찾기 쉽지 않았다.
신문도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10월 말, 한겨레신문은 ‘2020 한겨레 디지털 전환 제안서’를 공개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지면 위주로 움직이고 있는 조직의 행태를 ‘100% 디지털’이라는 목표 아래 변화시키자는 뜻이다. 제안서에는 “종이신문으로 돌아갈 잔도를 모두 태워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도 담겼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신문 제작 파트를 따로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디지털 뉴스 중 가치 있는 콘텐츠를 선별하여 종이신문에 담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의 다수 언론은 지면 기사와 디지털 공간에 게재하는 뉴스를 분리하여 제작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뉴스 콘텐츠와 지면 배치 기사의 분명한 우선순위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아직도 많은 언론 매체는 지면 위주로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구독하여 보는 인구가 줄고 있음에도 말이다. 현장을 누비는 기자에게는 이중고이며, 신문을 읽지 않는 많은 독자는 품이 많이 들어간 기사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된다.
매거진 매체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국내의 모든 매체가 디지털 공간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음을 체감한다. 월마다 유통되는 매거진 기획·제작 프로세스가 안정화에 접어들자 조직은 잡지 자체의 개선을 후순위로 미뤘고, 타 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눈길을 돌렸다. 포털사이트와 프로야구단이 주요한 협업 대상이었다. 하지만 잡지 콘텐츠의 질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외부 제작물을 지면에 활용하여 독자에게 전달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공간의 선순환이었다.
향후 콘텐츠 기획과 유통의 과정이 바뀔 수 있다. 상대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식은 저비용이다. 이 때문에 창조적인 실험이 이뤄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되고, 레거시 미디어가 과거의 매체라고 느끼는 MZ세대의 인식을 바꿔놓을 콘텐츠 생태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