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일기 #5. ‘대접’의 의미를 아는가?

갑이 바꾼 ‘대접'의 뜻

by heavenlyPD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지방 촬영을 다녀왔다.


며칠 머물며 여유롭게 촬영하면 좋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래도 바닷바람도 쐬고,

잠시나마 답답한 서울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어둑할 때 서울에서 출발해,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클라이언트가 말했다.


"저희 부모님 고기집 하시잖아요.

서울 가는 길에 들러서 식사하고 가시죠.

제가 대접할께요^^"


제작진 얼굴에 스친 당혹감.

솔직히, 진심으로, 너무 가기 싫었다.


다음 날 또 새벽부터 촬영인데

식당에 들렀다 가면,

서울 도착 시간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거절한 터라

더 이상 No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갔다.


고기 맛은 솔직히...그냥 고기 맛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클라이언트가 계산서를 내밀며,

"피디님, 얼마 나왔네요^^"라고 말했다.


분명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했는데

정작 계산은 우리가 한 것이다.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부장에게 전화를 걸더니

일 잘하는 직원처럼 보고를 하는데...


"저희 촬영 잘 마쳤고요.

부모님 식당에 제작팀 모시고 와서 대접해 드리고

이제 서울 올라가는 길입니다"


잠깐, 뭐라고...?


우리가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도

저렇게 말한다고?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건 실화다.


이번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얼굴 두께가 도대체 몇 센치인 걸까?

자기 부모님 식당 철판보다 더 두꺼운 것 같다.


이걸 갑질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인간성의 문제인가?




사전에서는 '대접'을 이렇게 정의한다.


1. 손님을 음식이나 차, 술 따위를 내어 잘 대함.

2. 예의나 정성으로 상대방을 맞이하거나 대함.


그날 우리가 받은 건 뭐였을까?

대접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머릿 속에서 같은 말만 맴돌았다.


"대접의 의미도 모르는 XX"


그동안 부서에서 존재감도 미미하고

성과도 못 내서 후배들에게 밀리던 그가

우리와 일하며 CEO 표창도 두 번이나 받고,

승진까지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이런 대접이라니.


우리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


정말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갑질'이란 말도 너무 가볍다.




"주님, 어디까지 이 클라이언트를 견뎌야 하는 걸까요?

3년이면 충분한 거 같은데...언제까지 참아야 할까요?"


돌아보면,

그날은 단순히 이 사건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부당함이

한꺼번에 터졌던 것 같다.


주님께 질문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주님, 참는 게 미덕인가요?

아니면 맞서는 게 옳은 건가요?

언제까지 이런 부당함을 보고, 견뎌야 하는 걸까요?"


아직도 그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중이고,

그 답도 여전히 찾는 중이다.


오늘도 그 클라이언트와 회의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사랑은 못해도 미워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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